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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의 역사
우리와 가장 가까우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존재인 불. 열기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똑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야 했던 소화기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B.C. 200년경 발명가이자 수학자였던 크테시비우스(Ctesibius)가 최초의 소화장비 ‘스쿼트(Squirt)’를 발명했다. 스쿼트는 현대식 주사기와 비슷한 형태로 손잡이를 당겨 약 1리터의 물을 채우고 분사하는 도구였다. 단순한 구조였지만, 뜨거운 불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어 1666년 런던 대화재 당시에도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1600년대에는 화재 진압용 가죽 양동이가 상용화되었는데, 양동이에 직접 물을 받아 뿌리는 아주 단순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양동이로는 먼 곳까지 물을 뿌릴 수 없었기에 화재 현장 근처까지 몸을 위험하게 기울여야 했고, 집 외에는 양동이를 쉽게 구하거나 비치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1715년 독일의 은세공인 자카리아스 그레일(Zacharias Greyl)이 폭탄형 소화기를 발명했다. 그의 소화기는 나무통에 약 20리터의 물이 들어간 형태로 내부에는 화약이 연결되어 있었다. 화재 발생 시 물통을 불 속으로 굴리면 심지에 불이 붙어 그대로 폭발하며 물이 터져 나오는 방식이었다. 분명 효과는 있었지만,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레일의 폭탄 소화기가 훗날 스프링클러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오늘날 소화기의 초기 버전 ‘익스팅튜어(Extincteur)’는 1818년 영국인 조지 윌리엄 맨비(George William Manby)에 의해 발명되었다. 고층 건물의 불을 끄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관을 위해 탄생한 익스팅튜어는 소화약제로 물을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소화기였다. 익스팅튜어에는 탄산칼륨과 공기가 압축되어 들어갔는데, 이 압력에 의해 분사 마개가 열리면 소화약제가 먼 곳까지 분사되었다. 덕분에 작동 시간이 빨랐고, 휴대하기 용이했으며,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1900년대 초 자동차 보급이 증가하고 가솔린 엔진이 사용되면서 휘발유 화재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1911년, 영국의 화재장비 제조사 ‘리드 앤 캠벨(Read & Campbell)’이 이산화탄소 카트리지를 사용한 소화기 ‘페트롤렉스(Petrolex)’를 개발하였다. 페트롤렉스는 왕립 자동차 클럽, 메트로폴리탄 전력 공급 회사 등 전문적인 기관에서 엄격한 검증을 거쳐 그 기능을 증명했고 큰 신뢰를 얻었다. 이후 영국 왕궁과 대영 박물관, 중앙 우체국, 왕실 차량 등에 설치되며 이름을 알렸다고 전해진다.
델라웨어주 피렌 제조 회사(Pyrene Manufacturing Company)는 1910년 사염화탄소를 사용한 화재 진압 방법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사염화탄소는 산소를 차단하는 짙은 연기 막을 생성하여 화학 연쇄 반응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졌다. 피렌의 소화기는 이전 소화기와 달리 용기 내부에 압력을 가하지 않았기에 일회성으로 버려지지 않고 재사용이 가능했다. 1911년에는 소형 휴대용 소화기의 특허까지 취득하며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러 소화기 중에서도 소화수류탄은 단연 독특한 모습을 뽐냈다. 소화수류탄은 소화약제가 담긴 작은 유리병 모양으로 실제 수류탄처럼 던져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초기 소화수류탄은 소금물을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사염화탄소로 채워지며 화재 현장에서 효과적인 진압을 보였다. 1950년대까지 자동차에도 보급되었으나, 고농도 사염화탄소의 독성 위험이 밝혀지며 사용이 중단되었다.
최초의 CO2(이산화탄소) 소화기는 1924년 월터 키드(Walter Kidde) 사에서 발명하였다. 키드의 소화기는 CO2가 담긴 긴 금속 실린더와 밸브, 면으로 덮인 호스, 뿔 모양의 노즐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소화기와 매우 유사한 형태였다. 성능이 뛰어난 CO2소화기는 오늘날 화재 현장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글 _ 권재영 / 출처 _ Wikipedia, 한국소방안전원, Koorsen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