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공구상탐방

흥하라 태풍철물 1화

 

흥하라! 태풍철물

 

청년 대표의 좌충우돌 공구상 운영기

 

① 나는 ‘쌩 초보’ 공구상 사장

 

IT회사를 다니다 퇴사 후 현재 경상북도의 한 공단지역에서 공구상을 운영 중인 30대 ‘김철물’ 대표. 매장 오픈 뒤부터 꼼꼼하게 기록해 온 그의 공구상 운영기를 에 연재한다. 매장 이름도 비밀, 대표 이름도 익명이지만 분명히 알아둘 건 이것은 진짜 이야기라는 사실.

 

 

객관적 정보가 깜깜하기만 했던 철물점 인수


​나는 ‘쌩 초보’ 공구상 사장이다. 공구도 잘 모르고 장사는 더더욱 모른다. 그런 내가 어떻게 공구상 대표가 됐냐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IT회사에서 근무하던 나는 어느 날 직장생활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책상 앞의 샐러리맨보다 더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일이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즈음, 아버지 건물에 있던 철물점이 가게를 내놓는다 했고 아버지는 나에게 한 번 맡아서 해보지 않겠냐 물으셨다. 이건 분명 내 인생을 바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을 맡기로 결심하고 퇴사한지 한 달도 안 돼 전 사장님으로부터의 인수인계가 시작됐다. 매장 안의 공구들을 설명해 주시는데 나는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공구쪽 일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으니까. 그리고 깜깜이 분양을 하는 아파트처럼 객관적인 정보가 오픈되지 않은 철물점의 인수. ‘월 매출은 얼마라 카더라’ ‘얼마는 남는다 카더라’… 무엇하나 검증된 것 하나 없는 주장 속에서 ‘내가 괜한 결심을 한 건가?’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러나 낙장불입! 이미 퇴사를 질러버린 마당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던 인수인계


사장님이 하도 돈이 급하다기에 당초 계약과 달리 잔금을 빨리 치러줬다. 그랬더니 웬걸, 얼굴을 싹 바꾸고 인수인계 기간을 3달에서 1달로 줄이잔다. 처음엔 삼촌처럼 오랫동안 차근차근 인수인계 해준다더니 입금 받은 뒤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날아본 적도 없는 아기새를 벼랑 끝으로 떠미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치도 않은 소리. 인수인계 기간을 줄일 순 없었다. 공구도 장사도 모르는 나에게 인수인계 기간마저 짧게 퉁쳐버리면 정말 나가리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인수인계 과정은 나에게 있어 이미 실컷 맞은 눈탱이를 계란으로 문지르며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방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얼른 빠져나가려는 사장과 사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장사의 엑기스를 뽑아내야 하는 나. 우리 사이엔 인수인계 기간 내내 불편한 공기가 흘렀다. 얼른 이 살얼음판 같은 인수인계를 매듭짓고 스스로 일어서고 싶었다.

 

처음 봤을 땐 텅텅 비어있는 것처럼만 보였던 진열장.

 

‘사장님, 어딜가세요’ 전 대표와의 불편한 동거


대출이자 때문에 빨리 인수인계 끝내고 돈 벌러 가야한다는 전 철물점 사장. ​그야말로 불편한 동거다. 보통 사업체를 넘긴다면 사업의 인프라 일체를 양도하는 게 일반적인 일 아닌가? 자기가 쓰던 컴퓨터는 가져간다는데 하는 말이, 컴퓨터에 개인정보가 많고 철물점의 품목을 얼른 익히려면 모든 품목들을 스스로 입력해봐야 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사장님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개인정보 이야기는 아무래도 장사의 구린 구석을 감추려는 의도 같은데, 그래도 품목을 익히는데 도움될 거라는 논리에는 나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품목 전체를 입력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매장을 둘러보았다. 앵글다이로 10평, 철망진열대 30평 정도의 공간. 좁은 편은 아니지만 사장님의 말대로 오랫동안 재고를 채우지 않아 선반대가 텅텅 비어있고 간혹 있더라도 달랑 하나씩 있는 품목이 허다했다. 얼추 이틀 빡세게 입력하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이게 다 뭐야?’ 산더미 같은 품목들


본격적으로 품목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같은 종류의 공구라도 생각보다 규격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브랜드는 왜 그렇게나 다양한지. 쉽지 않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하루 종일 재고 품목을 입력했는데도 꼬박 4일이 걸렸다. 고생하는 내가 짠해보였는지 사장님이 도와준다 하셨다. 사장님이 자기 컴퓨터에 등록된 품목정보를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어주면 나는 그걸 듣고 타이핑을 하는 식으로 작업속도를 끌어올렸다. IT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던 나는 타이핑 속도가 빨라 괜찮지만, 입으로 불러주는 거 이거 보통일이 아닐 텐데… 며칠째 몇 시간씩 불러주는 전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너무 나쁜 사람으로만 봤던 건가 미안하기도 했다.

 

 

공구상 운영의 시작, 명함 돌리기


매장 인수 한 달 전에 주문했던 명함이 나왔다. 철물점 감성의 로고를 넣어서 그럴듯한 회사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뭔가 유치한 느낌이다. 나의 직함은 대리로 했다. 처음부터 직급을 사장으로 하면 거래처에서 일을 시키기 불편해한다는 전 철물점 사장님의 의견 때문이었다.​
전 사장님이 거래처, 매입처들을 돌면서 인사를 드리자고 한다. 긴장된 마음으로 내 이름이 인쇄된 명함을 바리바리 챙겨서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저기 소개될 때면 괜히 떨떠름해서 눈을 질끈 감으며 무작정 ‘감사합니다’ 라고만 외치고 다녔더랬다.

전 철 물점 대표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내 대신 철물점을 할 친군데….
거래처   네? 그럼 사장님이 안하시는 거예요?
전 대표  아니요~ 평소처럼 똑같이 해주시고 사업자만 이 친구로 바꿔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 친구 옆에서 몇 개월 간 하는 거 봐줄 겁니다.
​거래처  아, 네. 그럼 똑같이 하면 되는 거죠?
전 대표  네, 맞습니다. 제가 옆에서 봐줄 테니까요…. 김철물 대리, 명함.
​나  아, 여기 있습니다. (명함을 건네며)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참 애매한 순간이다.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가 나에게는 첫 인사가 된다는 것이. ​마음 같아선 뭐든 다 해줄 듯한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주제에 그런 오버액션을 한다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라 생각해 그냥 잠자코 있었다. 다음날 전 사장님은 나에게 납품 심부름을 시켰다. 납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에게 물었다.

나   만약에 납품하고 거래명세서에 사인을 받으려는데 현장에 담당자가 없으면 그냥 물건만 두고 오나요?
전 대표  그래도 되기는 한데 웬만하면 그러지 마. 너는 지금 네 얼굴을 알려야 하는 입장이다. 가능하면 물건을 직접 건네주면서 네 얼굴을 익히게 만들어라. 너도 업체사람 얼굴을 익히고. 그렇게 친해지면서 영업이 시작되는 거다.

흠…. 속이 시꺼먼 양반이라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경험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김철물 대표(가명)

경상북도의 한 지역에서 공구상을 운영하고 있는 35세의 젊은 대표. 3년 전, 매장을 인수한 운영 초기부터 블로그에 공구상 운영기를 업로드하는 중이다. 연재 기사로 공구상 초보 대표들에게는 운영의 도움을, 베테랑 대표님들께는 과거를 되새겨 볼 기회를 전하려 한다.

 

(2화로 이어집니다.)

 

글·사진 _ 태풍철물 김철물 대표(가명) / 정리 _ 이대훈 / 일러스트 _ 구글 Gem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