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경영 칼럼
우리는 보통 자신의 믿음과 쉽게 사랑에 빠진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배격하는 것은 나를 오류에 빠뜨리는 행위와 같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근의 공식’을 달달 외웠던 걸 기억할 것이다. 아마 지금 근의 공식을 써보라고 말하면 제대로 쓸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른다. 이렇게 잊어버릴 걸 왜 외워야 했을까? 고등학교 때 배운 근의 공식은 2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공식인데, 3차 방정식과 4차 방정식에도 각각 근의 공식이 있다. 하지만 5차 방정식, 즉 x의 5제곱이 들어간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올로 루피니(Paolo Ruffini)라는 이탈리아의 수학자가 바로 5차 방정식을 풀 수 있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 사람이다. (여기서 잠깐, 사실 그의 증명엔 오류가 있었다. 나중에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아벨이 5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음을 ‘옳게’ 증명해 낸다).
루피니는 책으로 2권 분량이나 되는 증명을 책으로 출판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라그랑주에게도 세 차례에 걸쳐 책을 보내 검증하거나 인정해주기를 바랐지만, 라그랑주는 아무런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웬일인지 사람들은 그의 증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증명이 너무나 복잡하고 길었기 때문이다. 책으로 2권이나 되는 그의 증명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따져보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어려웠다. 복잡하고 긴 증명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기에는 다른 중요한 문제가 더 많기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부정적인 결과(‘5차 방정식엔 근의 공식이 없다’)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학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3차 방정식과 4차 방정식에서 근의 공식을 규명해냈기 때문에 5차 방정식에서도 당연히 근의 공식이 존재하리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여기서 두 번째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증명을 누군가가 제시했을 때 자동적으로 그것을 반대하려는 심리를 작동시킨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잠정적으로 믿어왔고 ‘입증’하려고 애써온 가설이 틀렸다, 즉 5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살펴볼 마음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콧방귀를 뀌며 거부했던 것이다. 루피니는 죽기 1년 전인 1821년에야 위대한 수학자인 코시(Cauchy)로부터 5차 방정식 연구에 대해 찬사를 받았지만 코시도 루피니의 증명을 검증해본 것 같지는 않다. 루피니는 수학자가 아니라 발진티푸스를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로 살다가 1822년에 삶을 마감한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믿음과 쉽게 사랑에 빠진다.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믿음이 명백하게 오류임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70%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고 한다. 자신이 옳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눈에 들어오고 그걸 부정하는 근거는 무시하고 마는 것이다. 위대한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 역시 이런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뉴욕 시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직류’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류’ 방식을 내세운 니콜라 테슬라와 대립했다. 그는 교류 방식이 써야 전기를 멀리 보낼 수 있고 전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을 알면서도 이를 부정했다. 문제는 부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에디슨은 교류가 직류보다 안전하지 않다는 걸 홍보하려고 산 채로 개와 고양이를 교류 전기로 태워 죽이는 실험을 서슴지 않았다. 교류를 사용하는 전기 의자까지 발명하기도 했다. 결국 교류 시스템의 승리로 끝을 맺었는데, ‘내가 발명한 직류 방식이 교류 방식보다 우수하다’는 믿음에 취해서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악의적으로 배격한 에디슨의 행태는 그의 업적을 더럽히는 오점이 됐다.
누군가가 당신의 믿음에 반하는 주장을 할 때 마음속에 그 주장을 거부하려는 본능이 작동할 것이다. 그럴 때 그 본능을 잠시 누르고 그의 말에 집중해 보라. 반대되는 주장을 수용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의 말을 경청해야 그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옳게’ 판단할 수 있을 테고 그에 따라 나의 주장의 타당성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 ‘내 의견과 반대된다’고 해서 무조건 귀를 닫지 말자.
글 _ 유정식 / 진행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