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 있는 경청이 내 사람을 만든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이 누군가 대화를 나눌 때 말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단 7%만을 상대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나머지 93%의 메시지는 목소리와 어조, 표정, 제스처 등이 서로 어울려 통합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일을 하면서 ‘듣고 있으니 말해’라고 말하는 건 10%도 안 되는 말만 듣게 된다는 의미다. 말을 잘 들으면 상황 판단력이 빨라진다. 특히 ‘말귀 잘 알아먹고’ 일처리 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선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어쩌면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잘 듣지 않는 사람들의 함정
어느 날 저녁 신문을 보던 남편이 아내를 불렀다고 한다. “여보, 신문 좀 봐. 여자들이 남자보다 2배나 말을 많이 한대! 남자는 하루 평균 1만 5천 단어를 말하는데, 여자들은 3만 단어를 말한다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아내가 말했다. “남자들이 워낙 안 들으니까, 여자들은 늘 똑같은 말을 두 번씩 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두 배인 거예요.” 그런데 약 3초 후에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고 한다. “뭐라고?”
남자들이 잘 듣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머다. 과정을 설명하기에 익숙한 여자들의 말을 길게 들어주지 못하고 결론만 재촉하거나, 자기가 액션을 취하는데 필요한 말만 골라듣느라 행간을 읽지 못해, 상대의 마음을 읽는 데까지는 실패하는 것이 남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의 약점이다. TV를 보면서 배우자의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심지어 말을 하려고 하면 “좀 조용히 해봐” “있다가 얘기해!” 하는 식으로 가로막기까지 하는 경우를 가리켜 ‘배우자 경청’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인 걸 보면,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말을 의외로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 기사의 제목만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클릭했는데, 정작 내용은 그 제목과는 별개이거나 때로 그 반대의 내용을 담은 것이라 실망했던 기억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읽는 독자는 실망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연예인을 포함한 세상에 알려진 공인들은 앞뒤 맥락을 거두절미한 자신의 말 한마디가 기사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대중이나 팬들이 오해하고 비난해서 상처 받는다.
말의 앞뒤를 살피지 않고 필요한 말만 골라듣거나 결론만 챙기는 경청은 사람의 마음까지 배려하지 못한다. 필요한 것을 팔고 사며 정확한 계약서가 오가는 비즈니스 세계이지만 그 모든 과정의 일은 사람이 한다. 잘 듣고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게 되면 비즈니스는 안 될 것도 되게 하고 될 것도 틀어지게 만든다. 잘 듣는 일은 원만하고 수월한 커뮤니케이션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여자의 말로 훈련하기
어느 날 힘든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일곱 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내가 “요즘 애가 너무 말을 안 들어 힘들고 지쳐”라며 다짜고짜 하소연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 같은지 생각해보자.
“그래? 그럼 따끔하게 혼을 내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회초리라도 들어. 남자애들은 좀 맞으면서 커도 돼.” 이건 야구로 말하면 직구 스타일이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어쩌겠어. 당신이 참아야지”라거나 “애들이 힘들게 하면 그건 다 부모 탓이야. 당신이 뭐 잘못하는 건 없고?”이런 식의 대답은 분노를 부르는 완전한 데드볼이다. “당신 많이 힘들겠다. 미운 일곱 살이라더니 이제 아빠하고 대화 좀 해야겠네. 남자끼리 엄마 안 힘들게 하고 좀 아껴주자고 말이야.” 아내에게 이 정도 변화구를 날릴 수 있으면 당신은 이미 사랑 받는 남편일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있는 그대로 말을 알아듣고 실행하면 실수할 위험이 있는 사회다. 서양인에게 요리법을 알려주면서 소금을 ‘조금’ 넣으라고 하면 서구인들은 보통 “몇 스푼이요?” 하거나 더 심한 사람은 “몇 그램(g)이요?” 할 것이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솔직하고 정확하며 직설적인 서구인의 의사소통 방식이 우리에겐 무례하게 느껴지거나 저럴 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데, 우리 사회가 ‘고맥락의 문화’를 가진 특수성 때문이다.
우리는 상세하게 만들어진 업무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앞뒤 상황과 맥락을 따져 일 처리하는 것이 몸에 뱄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말귀’를 알아먹어야 하는 사회다. 그 때문에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행동하기보다 말의 이면에 깔려 있는 상대방의 의도나 감정, 욕구까지 헤아려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앞서 아들 때문에 힘든 아내의 일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남편은 아내의 하소연을 ‘힘드니까 해결책 좀 찾아달라’로 들었지만, 아내는 ‘힘든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 달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여성은 앞뒤 상황과 맥락을 생각하는 경청 태도를 훈련하기에 좋은 대화 상대다. 남자들의 표현은 직접적이고 직설적이지만, 여성의 표현은 간접적이며 우회적이기 때문에 그 이면에 깔린 말귀를 알아듣는 훈련을 하기가 좋다. 아내나 여동생, 여직원, 여자친구 등과의 대화를 통한 맥락적 경청은 비즈니스 상대가 누구든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잘 들어주기의 효과
“바쁜데 뭐 하러 오냐?”는 거래처 사장의 말은 오지 말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그런 줄 알고 안 갔다가는 언제 어느 때 거래를 끊을지 모른다. 거래처에 인사 좀 하고 오라는 상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인사만 꾸벅 하고 온다면 상사가 눈치 없고 둔한 부하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김 대리,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면서?”라고 묻는다면, “왜요 사장님? 요즘 뭐 어려운 점 있으세요?”하고 묻는 게 센스다. 컨설팅회사에서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잘 나갔는지 말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이 분이 왜 지금 내가 컨설팅 했던 경력에 관심을 가질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맥락으로 파악하는 것이 빠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살피는 경청이 가능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 먼저 말하는 사람에게 주의 집중을 해야 한다. 즉 잘 듣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 알게끔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급한 성격이 있다면 잠시 지긋이 잡아두어야 한다. 섣부른 판단과 예단은 자제하고 끝까지 잘 듣고 말해도 늦지 않다. 정말 끝까지 듣고 나야만 정말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내 생각을 전할 수 있게 된다. 그냥 다 듣고 내가 상대의 말을 잘 이해했는지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해 확인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적절한 질문을 하고 다시 잘 듣는다.
이렇게 들어주면 상대방은 내가 특별히 어떤 해결책을 주지 않다 해도 “속에 있는 말을 다 해서 시원하다” “말하면서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걸 새롭게 알았다” “말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고 정리가 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