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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 칼럼

 

천사를 만나다

 

배명순 아타나시아 수녀

 

 

우리는 우간다로 간다


지난 9월 5일부터 7박 9일간 아프리카 우간다로 새마을해외협력사업을 다녀왔다. 2년 전인 2023년 12월에 가고 두 번째다. 이전엔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등을 지원해왔으며, 그 진행방법은 나라만 다를 뿐 거의 비슷했다. 새마을중앙회에서 국가와 마을을 지정하면, 대구새마을회에서 대구시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아서 현지 계획안을 검토한 후 송금한다. 이후 현장확인과 교류를 위해 현지를 방문하고 개선 및 보강하는 순서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내 경험과 가치관을 흔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남수단에서 우간다로 온 칠순의 수녀님


아타나시아 수녀, 1954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일흔둘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광양군 공무원으로 7년여 일했지만 결국 수녀가 되기로 서원했다. 떠나기 하루 전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같이 죽자며 세상이 끝날 듯 절망하셨다. 그럼에도 가족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맹세했으며, 이후 35년간 어렵고 힘든 곳을 찾아 수녀로 일했다. 남수단에서 활동하다 내전을 피해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한국은 이제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났다. 2018년, 자신을 더욱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남수단 접경이자 우간다 북부인 오모로(Omoro) 지역으로 왔다. 수녀님과의 만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3년 대구새마을회는 우간다 남쪽 부비(Buvvi)마을을 협력지로 지정받아 엔테베 공항에 도착했다. 수녀님은 당시 공항에서 우리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결국 호텔까지 찾아와 기다리고 계셨다.

 


수녀님이 새마을 운동을 하신다고?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다소 당황스런 요청인데다 초면이어서 나는 물론 우리일행 모두 즉답을 피하기만 했다. 도와달라는 호소를 그저 ‘우간다 전체가 어렵구나’ 정도로만 들었다. 급기야 주우간다 한국대사님은 수녀님과 대구새마을 회장이던 나를 관저로 초대하셨다. 가장 먼저 이 말부터 물었다.
“수녀님께서 어떻게 새마을운동을 하세요?”
답은 다음과 같았다. 
“광양군 공무원으로 일할 때 새마을과에 있었어요. 그때 새마을운동의 효과를 아주 똑똑히 봤기 때문에 이곳 우간다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도 새마을운동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생각이 바뀌고 자립하는 마을이 되어야 주민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나는 무릎을 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새마을 시범마을이 우간다의 다른 곳으로 지정돼 있어 도울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보자는 말만 하고 돌아와야 했다. 


방법을 찾아라!… 35시간 날아가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새마을회 사무국과 방법을 의논했다. 대구시에서는 지원금을 이전보다 더 낮추는 상황까지 겹쳤다.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 대구새마을회는 용기를 냈다.
“수녀님 마을을 돕는 첫해 비용을 제가 좀 내겠습니다.” 했더니 회원단체장들이 뜻을 더했다. 이렇게 해서 2024년 봄부터 우간다 오모로 지역과 대구새마을은 연결됐고, 이듬해 협력지로 지정할 수 있었다. 
올해는 우간다의 수녀님 마을을 실제로 가보기로 했다. 사실 많은 회원들이 망설였다. 2년 전 탈수와 마비증세로 고생했던 부녀회원이 있어 모두들 손을 저었다. 그래도 15명이 동참했다. 특히 부족한 지원금은 곳곳에서 메워졌다. 서한건설 김을영 회장이 1,000만원을 지원해주셨고, 김수현 협의회장의 지인들도 동참했다. 달성군 정연욱 회장은 올해 달성군의 해외사업 예산전체를 대구시 해외사업에 보태기도 했다. 대구에서 출발해 우간다까지 가는 데는 비행시간만 17시간, 대기와 환승, 현지 버스이동까지 합치면 총 35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우간다 엔테베공항에 내려서도 아프리카의 작고 낡은, 최대시속 60km의 버스를 타고 수녀님이 계시는 우간다 북부까지 10시간을 가야 했다. 

 

오토바이 타고 흙길 달리는 수녀님


2년여 만에 수녀님을 만났다. 활발한 모습 그대로셨다. 수녀님은 마을청년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우간다의 붉은 길을 달리며 일하셨다.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삶에 나는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늘 사업만 하던 내게 새롭게 접하는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수녀님은 우물공사를 한 곳부터 보여주셨다. 이곳 오모로 지역의 자연 웅덩이는 동물과 사람이 구분 없이 함께 먹는 비위생적인 식수였는데, 우리는 우선 아홉 개의 웅덩이를 정수물이 나오는 우물로 공사했다. 우물공사는 펌프로 하는 것보다, 물 수원지를 찾아서 돌과 흙을 쌓는 자연식 정수를 거쳐 빼내는 공법으로 했다. 일 년 내내 물이 흐를 수 있는 데다 이제는 주민들이 맑은 물을 마시며 수인성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2025년 대구새마을회 해외협력사업으로 시행된 우간다 북부 오모로 지역 봉사 모습. 지난 9월5일부터 7박9일간 총 15명의 지도자들이 현지를 방문해 우물공사, 마을 커뮤니티센터 건립, 새마을금고 운영 등을 돌아봤다. 이 사업은 우간다 현지 배명순 아타나시아 수녀님의 요청을 받아 성사되었지만, 일행 모두에게 더 많이 배우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방앗간, 구판장 갖추며 협동하는 마을로


오모로 지역 중 왕로보 마을이라는 곳에도 갔다. 주민들이 성대하게 환영행사를 했다. 수녀님은 우리의 후원금으로 이 일대 땅을 매입해, 과일과 곡식을 판매할 수 있는 로컬마켓(작은 시장), 곡식을 찧을 수 있는 방앗간, 곡식저장소, 또 주민들이 모여 의논하고 협력할 수 있는 주민센터와 생필품을 판매하는 구판장 등을 지어놓으셨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더위에 우리일행은 힘들었지만 그들과 기쁨을 같이 했기에 모든 것이 드라마처럼 신기했다.

 

마을금고까지 운영… 삶을 변화시켜라


또 다른 마을에서는 눈을 의심할 일을 목도했다. ‘경제’라는 개념조차 없던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장부를 작성하는 소위 ‘새마을금고’를 만든 것이다. 종이장부에 과일과 곡식을 팔아 모은 돈을 적어서 맡기고 불리며 다시 목돈을 만드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족어를 쓰며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테데B 마을이라는 곳에는 마을문고와 도서를 지원했다. 수녀님이 계시는 까리타스 수녀회 건물에는 재봉틀 교실을 열어 30명 가까운 여성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1950년대 한국도 그랬다. 기독교 계열인 계성학교 신명학교, 천주교 계열 효성학원 등이 들어오며 우리도 깨어났다. 나는 마치 한국의 1950년대를 보는 듯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우간다에 뼈를 묻겠습니다!


숙박은 수녀님 마을로부터 40여분 거리에 있는 마을호텔에 묵었다. 공항까지 길이 너무 멀어 중간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호텔에도 묵었다. 물과 전기가 부족해 우리일행을 맞이하기에 힘든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주었다. 타산이 나오지 않았지만 천주교 관리 하에 잘 운영되고 있어 이 또한 감동이었다.

 


마지막 날이 되어가자 수녀님과 나는 서로를 오빠 동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세상에 빛이 되는 일에 오누이가 되어 해 준다니 이 또한 하나님의 선물일 것이다. 수녀님은 “저는 이 우간다에 뼈를 묻을 겁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해야지요” 했다. 성경 속에 있는 천사가 실제 내 눈앞에 있다고 할까. 인간으로서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고 편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이다. 그런데 아타나시아 수녀님 같은 분이 그런 일을 하시기에 우리는 사업도 하며 봉사라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5-16)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

 

우리가 받았던 도움, 이제는 해외로


이번 우간다 새마을운동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데다 내 나이도 있어 사실 망설이기도 했다. 주변 우려도 많았지만 좋은 일에 하나님이 끌어주실 것이라 믿고 했다. 사실 나는 대구새마을 회장을 2012년부터 6년간 한 임기 동안 하고 이번이 두 번째 임기이다. 그만 쉬자고 생각했으면 재임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감동의 순간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적지 않은 연세에도 우간다 마을을 위해 헌신하는 수녀님을 보며 사랑과 봉사에는 나이도 없음을 실감했다. 총 50여 개의 자연웅덩이가 있다 했으니 될 수만 있다면 순차적으로 맑은 물로 만들어주고 싶다. 나아가 배우고 일하고 자립하는 ‘발전하는 삶’으로 바꿔주고 싶다. 나 역시 도움을 받으며 이날까지 왔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돌려주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우간다 해외협력사업에서 느꼈다.

 

 

수녀님의 헌신에 존경을… 또 만나요


우간다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나라이다. 지난 4년간 연평균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최근엔 유전도 발견돼 산유국으로 다가서고 있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약 60년의 격차가 난다. 이런 격차를 줄여주고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새마을 정신일 것이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우리가 했던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이 우간다에 심어지길 바란다. 그 일선에 배명순 아타나시아 수녀의 열정이 있음을 꼭 알리고 싶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하던 수녀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멀리서나마 건강을 기원하며 우리 또 만나자는 말을 하고 싶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우리는 이어질 것이니, 아버지께 간곡히 기도드리는 바이다.

 

 _ 최영수 크레텍 대표이사, 발행인, 명예 경영학·공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