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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 칼럼

 

꿈은 이루어진다

 

‘이렇게 많은 공구를 어떻게 관리하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5년경이었다. 공구의 종류와 품목이 많아서 나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전산도 없던 시절, 서울에서 공구종합상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했다. 
당시 나는 열 평 남짓 점포를 가졌다가 자동차 전시장으로 쓰던 건물 60여 평을 임대했다. 매장이 넓어지니 상품을 분류할 수 있었다. 작업공구, 절삭 측정공구, 전동에어공구, 용접, 안전용품 및 기계 1 2 3 4 5 6 7 8, 번호를 붙였다. 공구를 분류하니 조금씩 체계가 잡혀 비로소 통제와 관리가 가능했다. 그 다음 숙제는 재고관리였다. 동시에 제품과 관리에 대한 모든 것을 나만 아는 것이 아니고 직원 모두가 알도록 표준화 숙제까지 풀어야했다. ISO9001도 받았다. 장사가 아닌 경영 단계로의 진입이었다. 이렇듯 매번 나는 어디서 배울 데 없나 싶을 정도로 절실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소설 같은 꿈 ‘종합공구상사’


공구상에서 직원으로 배운 경력은 내게 없다. 조양철공소에서 3년간 선반기술을 배웠고 이후 노점과 행상을 했으며, 해군에 입대해 기관병과에서 비로소 전문적인 공구기술을 배웠다. 이런 경험의 내가 종합공구상을 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계기는 누구로부터 배우거나 어디서 본 것도 아니었다. 황당할지 모르지만 일본 소설 속 한 인물의 성장기를 통해서였다.
‘대물(大物)’이라는 화등광(化燈筐)이라는 작가가 지은 입지(立志)소설로 한국에는 1972년에 10권짜리로 나왔다가 현재는 절판된 걸로 알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0년대 일본최대의 오사카 도매상가인 이찌다보리의 한 철물도매점에 견습점원으로 취직한 야마시다 모오조가 주인공이다. 그는 공구상에 첫발을 디딘 후 가시밭길을 헤쳐간다. 19세에 독립사장이 되어 비범한 발상으로 판로를 확장하고,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결국 종합공구상사로 키워간다. 이 소설은 패전한 일본사회가 어떻게 재기하는지, 또 일본 상인사회의 기질과 인간관계의 묘수까지 담고 있다. 후일 들은 바로는 일본 Y사의 실제 얘기라 했다. 지금도 나는 전권 중 8권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 ‘대물’을 읽으며 나는 소년 견습점원의 성장과 분투에 푹 빠졌다. 마치 내가 모오조가 된 듯 그 이야기를 한국이라는 무대에 옮겨오는 상상을 했다. 
‘나도 내 가게를 큰 종합상사로 키워야지!’
최근 뇌과학에서는 ‘상상하면 이뤄지는 것이 맞다’고 발표했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리면 뇌가 우리의 행동과 판단을 거기에 맞춰서 지시를 내리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일본 카탈로그 보며 종합상사로의 꿈에 한발짝


나를 꿈꾸게 한 또다른 책 하나는 일본공구협회에서 나온 ‘전일본기계공구’라는 카탈로그였다. 당시로서는 900페이지 분량의 일본기계공구만큼 할 수 없어 조금씩 따라가다보니 오늘날까지 오게 됐다. 공구종합상사를 만들려면 필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카탈로그와 전산이었다. 카탈로그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공구업의 체계를 설계하지 못했고, 전산이 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같은 종합서비스 회사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로 종합공구상사로 키워가보니, 이 모든 일은 나만 잘한다고 될 것이 아니었다. 바로 시대적 환경이 되어야 가능한데, 마침 우리나라가 산업성장기에 있어서 변화의 바람을 탔다고 본다. 미국이나 일본은 공구분야에서 대형유통회사가 나오고, 동남아나 중국에는 그런 유통회사가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중국보며 국경없는 제조현장 실감


며칠 전 중국 광저우전시회를 직원 40여명과 다녀왔다. 공구제조에서는 중국이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30년전 새장처럼 차려놓았던 부스모습은 과거일 뿐 지금은 스무 배 이상 성장했고 품질과 기술 모두가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어쩌면 환율을 제외하면 중국의 경제규모는 미국과 대등한 수준 가까이 왔구나, 하는 전율마저 느껴졌다. 그만큼 중국의 발전은 놀라웠다. 특히 제조에서는 국경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브랜드에는 국적이 있지만 제조에서는 국경이 무의미한 현실이 공구업에 펼쳐지고 있었다.

 

제조라는 꿈… 세신버팔로


2016년 세신버팔로라는 공구회사를 인수하였다. 이 또한 나의 꿈이었다. 세신버팔로는 1965년 설립돼 공구를 직접 제조하는 아주 큰 회사였다. 그러나 90년대 노조와의 갈등으로 종합공구회사로의 성장기회를 놓쳐버렸다. 이후 세계는 전문화 추세로 접어들었다. 60년대부터 독일, 영국 중심에서 이후 미국, 일본, 80년대에 한국과 대만으로 공구제조 기술이 이전됐다. 이제는 한 공장에서 모두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전세계 어디든 그 제품을 가장 잘 만드는 공장을 찾아내기만 하면 비용은 절감하되 고품질의 제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온라인시대가 되면서 변화는 더 빨라진다. 제조는 만들되 유통은 이 모든 것을 모아서 관리하는 형태로 가고 있다. 이제 품질과 브랜드를 관리하는 것으로 전략을 잡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가다보니 꿈이 이뤄졌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

 

지난 4월 14일~19일 중국 광저우전시회에서 부스 방문 모습.


불황 탓보다 자신에게 주도권을… 꿈에 도전하라!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모든 경계가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무한경쟁 시대가 됐다. 세상변화에 잘 맞추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50년간 변화와 곤란을 겪으며 ‘산업공구종합상사’라는 꿈을 그리고 있었기에 그 험난한 파도를 넘을 수 있었다. 꿈이 없으면 역경을 이기지 못한다. 소설 ‘대물’의 서문을 옮긴다. 무엇이 오든 세상을 탓하기보다 자신부터 강해야 한다는 말이 담겨있다.
“불황 때문에 망했다느니, 불황을 몹시 탄다는 말은 장사의 주도권을 자신이 아닌 주변환경으로 돌리는 듯하다. 슬기있는 사람들은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깊게 생각한다. 따라서 그 모색의 체험과 견문을 토대로 역경에 대항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행동력을 가져야 한다.
꿈을 가졌던 1930년대 야마시다 모오조처럼, 혹은 가까이 최영수처럼, 그대들의 꿈에 도전할 생각은 없는가 묻고 싶다. 하면 되고, 꾸면 이뤄지는 게 꿈이다. 한 번 더 꿈에 도전하는 그대들이 되시길 빈다.

 

 _ 최영수 크레텍 대표이사, 발행인, 명예 경영학·공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