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공구인 에세이
내 인생에 기절을 하는 날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더라. 새카맣게 다 타버려 건질 것 하나 남아있지 않은 물류창고를 마주하곤 그 자리에서 까무러쳐 버렸다. 공구 인생 30년이 쌓인 물류창고가 그렇게 전소됐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질 않았다. “사모님 놀라지 마세요. 다 타버렸을 겁니다.” 전화로 동네 분이 하는 말에도 설마 설마 했는데 설마에 그만 잡혀버렸다. 산불이 왜 그렇게나 크게 났던 건지. 산불이 났다 해도 그냥 흘려듣고 장사하느라 바빴지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여기까지 올 줄이야. 그날 낮 3시 경에도 사실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여러 차례 긴급문자가 오긴 했어도 우리 물류창고는 그래도 산이랑은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주변에는 다 콘크리트 바닥이라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이 이 산 꼭대기에서 저 산 꼭대기로 방방 날아서 번졌다고 한다. 그런 걸 ‘비화(飛火)’라고 한다며. 언덕배기 위에서 우리 물류창고를 내려다보던 친한 농공단지 분이 그래, “달덩이만한 불덩어리가 물류창고로 떨어지더라”고. 아무래도 미친 불이었던 모양이다. 1킬로미터는 더 멀리서 솟아오른 불기둥이 탁탁탁 하고 우리 물류창고 지붕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우리 물류창고는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물류창고를 지은 건 지난 2011년이었다. 우리 가게는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 아무래도 큰 물건들은 보관이 힘들어 차로 15분 정도 거리 한적한 곳에 300평 면적으로 물류창고를 지었다. 포장된 콘크리트 바닥 한가운데 물류창고가 있으니 불붙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 뭐 불덩어리가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니 말해 무엇할까. 그 물류창고에 고가 제품들이 다 들어 있었다. 건축에 쓰는 천만원이 넘는 진동로라가 세 대, 하나에 몇백만원 씩 하는 대형 발전기가 서른 대. 4~500만원 하는 콘크리트 라이더가 여덟 대. 다 임대하는 공구들. 그리고 그런 무거운 공구들을 트럭에 싣기 위한 지게차까지 물류창고에 있었다. 화재가 다 진압된 후 내가 했다가는 또 무슨 일이든 날 것 같아 우리 직원 전과장한테 탄 게 얼마나 되는지 추산해보라 하니까 큰 덩어리만 따져도 23억 5천만원이래. 내가 손이 너무 컸던 건지 바보였던 건지, 공장에서 팔레트로 가져온 대량 물건들까지 따지면 타버린 물건 값이 25억 원은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졸도했을 수밖에.
전소된 물류창고를 보고 화가 났던 건 바로 4미터 앞에 소화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류창고에 불덩이가 떨어지는 걸 본 농공단지 직원분이 놀라 소방서에 전화했을 때 소방서에서 소화전 위치만 알려줬더라면, 사용 방법만 알려줬더라면 그렇게까지 다 타버렸을까? 아마도 지켜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물류창고 바로 옆 주택도 멀쩡하니.
이번 화재로 내가 느낀 것은 이거다. ‘내 것은 내가 지켜야 한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겠지 하는 생각에 앞서 내 집, 내 가게는 내가 지킨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재난문자만 보고 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버티고 정 안되겠다면 소중한 물건은 꼭 챙긴 채로 대피해야 한다. 화재로 여기 안동 지역에서만 1488가구가 전소됐는데 우리 가게에 시골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와서는 금속탐지기를 찾았다. 왜 그걸 찾느냐 물었더니 전소된 자기 집에 애 돌반지며 금목걸이를 두고 나왔는데 찾을 수가 없어 혹시나 해서 금속탐지기로 찾아보려 한다고 그러대. 가게에 있던 금속탐지기가 동이 났다. 공구상도 마찬가지다. 재난문자만 믿지 말고 내 것은 내가 지켜라. 화재 보험은 꼭 들어라. 물류창고엔 스프링클러도 반드시 설치해라. 지금 우리 매장 입구에 소화기와 마스크, 라이트를 뒀다. 또 찾아올지 모를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서.
화재 이후 나는 정신과에 다니며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지금도 약을 먹지 않으면 흥분돼 잠을 못 잔다. 당신 같으면 그렇지 않을까? 말마따나 생으로 있던 25억 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건데.
그래도 이번 화재로 얻은 것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공구장사 30년 넘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화재 소식을 듣고도 전화 한 통 없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외상금액 안 줄까 돈 달라 닦달하는 집도 있었다. 반면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의 호의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호스 회사 홍일산업에 350만원 어치 구입하면서 계산서를 달랬더니 “그냥 돈 안 받아도 됩니다”그러는 거였다. 또 서울사다리 회장님께서는 타버린 사다리 수백만 원 어치를 전부 무상으로 보내주셨다. 우리가 많이 팔아주지도 못하는 크레텍 영업사원이 봉투를 가져왔고 또 보안업체에서도 지원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거래처 대아건업에서는 화재 얘기를 듣곤 직원 두 명이랑 같이 다 타버린 전선릴을 포크레인으로 파내 릴선 속 동을 팔아입금해 주기도 했다. 그것도 동 값 제일 비싸게 받는 집을 알아봐 천원 단위까지 그대로.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돌아가는 거구나!’
그런데 나는 공구상 매장이라도 남아 있지, 화재 피해를 입은 곳 중엔 정말 비참한 사람들이 많더라. 내가 화재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정말 옷 한 장 없이 바닥까지 내려앉아 버린 삶들을 보자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솔직히 전까지는 사람을 ‘물건 구입해 가는 분’
정도로만 대했던 내 생각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요즘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 중 30% 정도가 다 화재를 겪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는 영양군에서 한 분이 왔는데 보니까 눈이 풀려 있길래 물으니까 자기 집에 불이 붙어 친구들 네 명이 같이 불을 끄다가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죽고 또 두 명은 이틀 간격으로 자살해 버리고 그렇게 자기만 살아남았대. 구입하려는 물건이 70만 원이었는데 보니까 원가가 50만 원이길래 내가 그냥 원가만 달라고 하면서 그랬어 “사장님 너무 힘드시죠? 그래도 엉뚱한 생각 하지 마세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28명이라 한다. 우리 딸이 불 났다는 소식 듣고 서울에서 내려와서는 나에게 그러더라, 엄마는 그래도 살지 않았느냐고.
올해로 결혼생활 43년째다. 원래 공무원 일 하던 남편은 참 순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인데 자기도 물류창고 다 타버린 걸 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자기 아픔을 챙기기보다는 나를 달래주는 걸 보니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또 절대 공구상 물려받지 않는다던 아들은 일본 IT기업 입사 최종 면접만 남긴 상황에서 화재 소식에 입국해서는 내 모습을 보더니 그냥 다 포기하고 공구상에서 일한다는 거였다. 엄마인 내가 얼마나 힘들어 보였으면 그랬을까. 공구상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도 싫다 하던 아들은, 지금 3개월째 매장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다.
이번 산불로 물류창고는 불타 버렸지만 그래도 내가 손해만 본 건 아닌 것 같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겉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우리 아들도 가게로 왔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껏 일개미처럼 죽자사자 일만 해 온 내 인생이 과연 현명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요즘 많이 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잠시 일을 내려두고 한 번쯤 자신의 주변과 자신의 삶을 둘러볼 시간을 가져보라. 나처럼 큰일을 겪기 전에 말이다.
정리·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