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LIFE & CULTURE

TOOL & TOY

 

 

공구로 동심 수리하는 제페토 할아버지들


키니스장난감병원

 

2011년 국내 최초의 무료 장난감 병원으로 문 열어 최근 유퀴즈 방송 출연 등으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는 키니스장난감병원. 금속공학과 교수였던 김종일 이사장을 비롯해 화려한 경력을 지닌 장난감 박사님들이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준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고장 난 장난감을 수리하며 어린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위이잉, 꽝꽝, 삐용삐용”
공학 교수, 연구원 경력 박사님들의 장난감 진료


인천 미추홀구의 주안시민지하도상가. 어린이집처럼 귀여운 간판을 단 ‘키니스장난감병원’에 들어서면 따뜻한 분위기와 함께 장난감과 공구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는 특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은 벽면 대기실에 길게 늘어서 각각의 병명이 적힌 진료카드를 부착하고 있다. 수리대에 앉은 어르신들은 차례대로 장난감을 수술대에 눕혀 공구로 수술을 진행한다. 이 장난감들의 주치의는 평균나이 78세, 병원장인 김종일 이사장과 함께 봉사하는 12명의 장난감 박사님들이다. 인하공대 금속공학과 교수였던 김종일 이사장은 은퇴 후 자신이 가진 기술과 지식으로 다음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2011년 장난감병원을 설립해 15년째 장난감 무상 수리 봉사를 하고 있다. 이곳 장난감 박사님들은 은퇴 전 조선공학과 교수, 전자업체 연구원, 전기과 교사, TV 제조, 페인트 제조 등 화려한 전문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병원이름 ‘키니스(Kinis)’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르신을 뜻하는 ‘실버(Silver)’의 합성어로, 어르신과 아이가 장난감을 매개로 세대 간에 공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뭉친 이들은 매일 고장 난 장난감을 들고 찾아오는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아이를 사랑하고 봉사하려는 마음이죠. 장난감은 아이가 갖는 최초의 자기 물건이잖아요. 또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아니까요. 왜 장난감이 필요하고, 수리가 필요한지를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장난감 나눔공간 아나바다 본부

 

치료비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후원금으로 운영, 복지시설에 장난감 기부도


실제 병원처럼 고장 난 장난감 환자는 네이버카페로 ‘진료예약’ 후, 입원 가능하다는(치료 확률 70% 이상) 댓글이 달리면 자녀 나이와 장난감 증상 등을 기록한 ‘입원치료 의뢰서’와 함께 택배 또는 방문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다. 파손·접합 수리는 외과, 내부 회로 수리는 내과의 역할을 한다. 모든 진료는 실명제로, 장난감 치료가 완료되면 담당 박사가 직접 소견서에 사인한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은 택배와 방문 모두 가능한 미추홀구점을 비롯해 방문수리만 받는 인천 서구점과 수원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구점과 수원점은 김종일 이사장과 함께 봉사하던 박사님들이 각자 독립해 문을 연 곳이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은 최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면서, 전국에서 오는 장난감 수리 택배들이 더 많아졌다. 이 날만 해도 문 앞에 50여개의 박스가 쌓여있었다. 카페 가입자 수도 한 달간 4천명 늘어 현재 총 가입자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공중파 방송, 인쇄매체 등 다양한 언론에 노출되어오며 기업 및 개인들의 후원금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김 이사장은 장난감병원이 별도의 후원 없이 자원봉사만으로는 운영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3월 5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김종일, 원덕희 박사

 

유퀴즈 영상 보기


“무상 수리 해드리기 때문에 장난감을 고치기 위한 공구나 부품은 사비로 사요. 대신 박사님들의 점심값은 여기서 지원하고 있어요. 점심값을 인당 만원이라고 치면 연간 천만 원이 넘어가거든요. 감사하게도 이런 후원금 덕분에 운영이 가능한 거죠.”


후원금 외에 장난감 기증도 많이 들어오면서 병원 맞은편에는 아나바다 본부를 두고 장난감을 교환해가거나 무료 나눔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증된 장난감이 많이 모이면 장난감을 가져 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장애인복지관, 미혼모시설, 종교단체, 병원 등에 직접 전달도 하고 있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은 소외된 가정에 장난감 기부도 해오고 있다. 사진은 인천 중구 장난감 2,500개 기증식.


“장난감을 고쳐줘서 감사하다고 올라오는 게시글, 장난감 받은 아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볼 때 제일 좋죠. 그 뿐이에요.”

 

따르릉~ 따르릉~
급한 부모마음 안심시키는 푸근한 처방


인터뷰 도중 장난감병원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전화벨소리는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호다. 마치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응급상황처럼 전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병명은 아기 모빌이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장난감 소음 현상’. 모빌 없이는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엄마를 위해 얼른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이종균 박사가 오실로스코프로 산타 인형의 전기신호를 파악하고 있다. 환자의 심박수를 측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열어보면 작은 모터 돌아가는 게 나와요. 거기다가 문에 소리 나면 뿌리는 방청제 있지? WD-40 같은 거. 마트 가면 방청제라고 팔거든. 그걸 뿌리면 윤활 작용을 해서 소음이 좀 줄어들 거예요. 그냥 물 뿌리면 큰일 나고. 일단 그런 응급처치를 한 번 해보세요. 해보시고 안 되면 다시 연락하든가 보내주셔. 허허, 그래요.”


할아버지 박사님의 푸근한 진료는 금세 아기 엄마를 안심시켰다. 장난감 종류는 아이 연령대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그중 모빌은 생후 6~8개월까지의 누워 지내는 아기가 쓰는 만큼 사용수명이 짧고, 잠시라도 고장 나면 보호자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고쳐주려고 한다. 매년 1만 건의 장난감 수리를 해오면서 얻은 병원만의 노하우다.

 

수리 공구로 가득한 장난감박사님의 책상

 

중국산 장난감은 부품 구하기 어려워…
가볍고 힘 좋은 전동드라이버 개발됐으면


장난감은 고장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까지 제법 많은 기술이 요구된다. 장난감 몸속에는 작은 부품들이 서로 맞물려있으며, 하나의 제품에도 움직이고 소리 나고 불이 들어오는 등 다양한 기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용되는 공구도 다양하다. 정교한 작업을 위한 크기별 드라이버부터 전동드릴, 펜치, 니퍼, 렌치, 스패너, 망치, 확대경, 전류가 제대로 흐르는지 확인하는 멀티미터, 납땜을 위한 인두기, 글루건, 튀어나온 부분을 갈아내는 연마기, 천공할 때 쓰는 드릴머신까지 갖춰두고 있다. 수술대는 박사님별로 전문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공구가 비치돼 있다. 공구뿐만 아니라 스피커, 모터, 스위치 등이 망가졌을 때 교체하기 위해 필요한 부품들은 세운상가와 구로기계공구상가에서 많이 구입해온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국내에 없는 부품을 쓰는 중국산 장난감이 많아 고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수리해달라고 오는 장난감은 대부분 형제자매, 지인에게 물려받거나 중고거래를 하면서 몇 번의 손을 거치고 오래 쓰다 보니 부품이 녹슬거나 망가져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또 거의 중국산이라 장난감 제조사들이 단가 낮추려고 제대로 된 재료를 덜 쓰다 보니 맞는 부품이 없어서 고치는 데 애먹죠.”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보면 던지고, 밟고, 물에 빠뜨리면서 부러지거나 불이 안 들어오거나 소리가 안 나는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수리할 때는 아이들이 여린 손으로 만지고, 입에 물기 때문에 다치지 않도록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 수많은 장난감들을 정교하면서도 빠르게 치료하기 위해서는 공구의 성능도 중요하다. 어려운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자업체 연구원 출신 이종균 박사는 빠른 수술을 위해 더 가벼우면서도 힘 좋은 전동드라이버가 개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술에 몰두하고 있는 천정용 박사


“드라이버가 적어도 분당 800회 돌아가야 답답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만큼 힘이 좋은 제품들은 오래 들고 있기 무거워요. 늙은이들은 팔 힘이 부족하거든. 그래서 가벼운 대신 분당 350회 회전밖에 안 되는 제품을 쓰고 있어요. 빠르고 가벼운 전동드라이버를 개발해줬으면 좋겠어요.”

 

벽면을 채운 아이들의 장난감 사연

 

“꼭 고쳐주고 싶은데 어쩌지”
장난감으로 소외되는 아이 없어지길


한쪽 수술대에서는 소형장난감 전공의 천정용 박사의 손길이 분주하기 시작했다. 일본 한정판 가면라이더 변신아이템의 세밀한 소리 교정이 필요한 것. 장난감 소리에 예민한 열여덟 살 지능장애 아들을 둔 엄마의 간절한 사연이었다. 대구에서 온 택배상자 속 두 페이지 빼곡하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듯 모든 장난감에는 저마다의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 온다. 장난감을 고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추억을 고치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그 장난감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함께 자라고 추억을 쌓은 친구이기 때문에 수리하는 순간 아이의 마음도 함께 치유된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의 한 가지 바람은 소외되는 이 없이 모든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김종일 이사장은 장난감병원을 열고 싶은 이가 있다면 모든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키니스장난감병원 김종일 이사장


“지역 곳곳에서 쉽게 방문하고 장난감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전국에 장난감병원들이 생기는 게 제 꿈이에요. 모든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하게 크면 좋겠어요.”

 

글·사진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