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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업계진단] 현장의 소리를 듣다

현장의 소리를 듣다
 
전동공구 출혈경쟁과 리베이트 문제


공구 중에서도 전동공구 이익률 하락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불황이나 시장변화로 인한 이익률 하락도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제조사의 목표할당식 대리점 관리, 여기에 따른 판매장려금 명목의 리베이트가 결국엔 전동공구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공구상들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유혹이었던 리베이트로 인해 과다출혈경쟁이 생기고 가격질서가 무너졌으며, 결국 상도는 고사하고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산업공구상의 현실을 들어본다. 판매상들의 자체적인 문제진단과 제조사 등 외부적 요인, 현재 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짚어본다.
 



청계천에서 효성기기상사라는 명칭은 ‘전동공구 이효용’의 다른 말이다. 1983년부터 이 상호를 쓰기 시작해 수표다리 건너 장사기계공구상가 입구에서 작지만 강한, 그래서 마치 청계천의 심장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업계에 쓴소리를 마다않고 있다. 이유는 2년여 전부터 업계 문제로 지적됐던 전동공구 이익률 하락이 더 이상은 견딜 여력이 없는 마지막 선으로 치닿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제조사의 과도한 강매 정책. 이슈가 됐던 남양유업 사태처럼 제조사가 무리하게 대리점에게 제품을 떠안기는 판매방식 때문이다. 둘째는 공구상들이 자체적인 가격경쟁으로 서로 제살 갉아먹기 식으로 가격을 내린다는 점이다. 이제는 20~30만원짜리 전동드릴 팔아 2천원 남기는 시대에 도달했다. 이 남은 2천원으로는 인건비는 고작이고 그날의 매장 전기세도 안나온다. 심지어 아예 밑지고 팔아 나중에 나오는 리베이트금으로 겨우 메우거나 일단 물건 돌린다는 식이다.
그러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속 모르는 남들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는 것이나 일하는 것이나 한번 그 버스에 올라타면 내리기가 쉽지 않다. 자기도 모르게 계속 바퀴를 굴리도록 만드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고 돈의 마력이다. 밑져도 팔아야 하는 전동공구 시장의 작금의 현실을 이효용 한국산업용재협회 부회장을 통해 들어봤다. 이 부회장은 유통질서심의위원회 부위원장직도 맡고 있다. “전동공구 제조사의 대리점 계약조건, 리베이트 유혹 때문에 업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며 “판매자인 우리 스스로도 자정능력이 의심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동공구 판매정책으로 중소공구상 다 죽는다”

이효용 한국산업용재협회 부회장의 공구업 유감

 

청춘 바쳐 국내 전동공구 시장 일궈놓으니 이익 없는 시대로 응답
 
전문성 없는 다품종 시대로 변모 …

공구상이 담뱃가게로 변하는 현실 마음 아파




허리 무너진 공구업계 … 전문성이 사라졌다



Q) 요즘 청계천이나 공구업계 경기가 어떤가?

“한마디로 공구상 중산층이 무너졌다. 일등만 있고 그 다음은 없다. 예전보다 삭막해졌다. 예전엔 열심히만 하면 도와주고 끌어주던 시대였는데, 지금은 남 볼 틈이 없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서로 믿지도 않는 것 같다.”



Q) 그렇게 된 이유가 뭔가?

“이익과 성과만을 추구하다 보니 일단 먼저 선점을 해야 해 출혈경쟁을 하게 됐다. 결국 전문성이 없어지고 다품종 시대로 왔다. 여기에 제조사들의 전횡도 더 심해졌고, 파는 사람들끼리 이전투구도 날로 더해졌다. 가슴 아프다.”



Q) 문제가 된 제조사 리베이트는 언제부터 생겨난 건가?

“IMF 이후였다. 외국 브랜드들에게는 IMF가 국내시장에 침투하기 좋은 기회였다. 금융실명제 직후였는데, 그 외국제조사에서 2000년대 들어 종이어음 대신 현금결제 방식을 하자 했다. 그러면서 수시결제와 리베이트가 도입됐다. 처음엔 외국 제조사에서만 했지만, 나중엔 유통쪽에서도 따라하게 됐다.”



Q) 호시절은 없었나?

“2000년대초가 좋았다. 리베이트를 받으면 성과금 같았다 할까. 하지만 지금은 가격이 너무 떨어져 제로마진이니 리베이트로 메워도 이득이 없다.”



Q) 
솔직히 한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어렵다는 걸로 제조사를 설득하거나 시장질서 운운하기가 좀 그렇지 않나.

“리베이트는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이라는 합법적 마케팅이라 하라, 하지마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걸 노예계약서라 부른다. 왜냐? 그 외국 브랜드가 국내에 심어지기까지 같이 고생하고 시장을 만들었다. 그 모임이 있다. 다들 이름만 대면 알 것이다. 한때는 그 모임 멤버라는 게 자부심의 상징이었고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았다. 그 대리점이라는 것, 잠시는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는 아니다.”

리베이트는 물건을 판매하고 받은 돈 중 몇 %를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판매방식으로 주로 제약회사와 의학계에 사용되는 시장개척 방식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얼마를 팔아라는 할당이 내려오고 이것을 다 팔기도 전에 다시 신제품이 밀려내려 온다는 것이다. 또 이 신제품의 리베이트는 더 크게 해서 내려오는 수도 있다. 매장 내 자금을 돌리려면 어떻게든 재고를 안고서라도 다시 받은 제품을 제로마진이나 밑지고라도 팔아야 된다. 이런 방식으로 제조사는 판매 목표를 채우게 되고, 판매자는 출혈을 안고서 대리점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리베이트는 노예계약 … 목소리 모아 협상카드 제시 필요



Q) 제조사에게는 판매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판매자가 얼마든지 말할 통로가 있을 텐데.

“첫째는 우리 자체적으로 먼저 나부터 살고보자는 식이 되니까 아무리 우리끼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2012년 초에 산업용재협회에서 유통질서심의위원회가 열렸는데, 그때 크레텍 책임의 최영수 회장이 그 제조사 대표 앞에서 과감한 제안을 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조정이 안되면 불매운동이라도 불사하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기회였다. 그 전동공구 제조사 대표가 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는데, 그때 분위기를 몰아서 판매자측이 하나로 모여 협상카드를 만들었어야 했다. 나름 최회장 입장에서는 쉽지 않는 말이었는데, 당시 뒤에서 받쳐주는 우리의 하나된 목소리가 부족했다.”


Q) 즉 판매자 집단이나 제조사나 양측 다 ‘양심’ 외에는 어떠한 제재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강제성이 없는데 어떤 해법이 있겠나.

“우리의 입장들을 모아서 협상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내 돈 들여서 창고에 물건 잔뜩 쌓아놓고, 판매자끼리 상처내는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또 어디 있겠나. 제조사는 일정목표 세워서 본국에 좋은 성과 냈다고 보고가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대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거기에 매달려 이렇게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꼴이다. 모두들 자기 자신은 희생할 각오는 없고 남이 업계질서를 위해 뭔가를 해주길 바란다. 그러니 뭐가 바뀌겠나. 앞서 말했지만 타이밍을 좀 놓친 감이 있긴 해도 지금이라도 모여서 하나로 목소리를 만들어 협상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다 죽는다.”

이효용 부회장이 전동공구만을 본격적으로 취급한 것은 1977년경부터다. 1969년 충남 예산에서 올라온 그는 잠시 점원생활을 하다 군대를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청계천 사람이 되었다. ‘젊으니까 사람부터 알아야겠다’ 싶어 장사를 배웠는데, 그러다보니 성실과 뚝심을 인정받으며 생면부지 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 부회장은 ‘쇳덩이만 구르던 청계천에도 알고 보면 사람 정이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부지불식간에 온 변화바람 … 희망있는 일터 위해 이기심 버리자



Q) 69년 청계천의 모습 기억나시나?

“70년에 분신한 전태일은 노동계가 만든 모습이기도 하고 자기 아픔이기도 했다. 당시는 먹여주고 재워주면 일했고, 빈대가 뚝뚝 떨어지는 방에서 잤다. 빈대에 물려 팔뚝이 퉁퉁 붓기도 했는데, 그건 자랑할 것도 아니고 후회할 일도 아니다. 그땐 다 그랬으니 속상할 일도 없었다. 상대적 박탈감도 없었고, 단지 하나 분명한 것은 열심히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이 생기던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방법이 안나온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유가 뭐겠나. 바로 이 업계 시스템 때문이다. 대리점 죽든 말든 물건 채우고 판매목표 채우고, 판매자는 일단 나부터 팔고보자 싶어 뒤로 손해보고 나중엔 제로도 아닌 마이너스 판매를 하게 된다. 그러니 무조건 열심히 판다고 될 일이 아니다.”



Q) 품목 변화로 불황탈출을 해보면 어떨까?

“내가 왜 그 생각을 예전에 하지 않았나 후회된다. 전동공구를 시작할 땐 그게 돈이 된다 확신하고 아주 힘차게 일했다. 그런데 어느 새 전문성 필요 없고 다품목을 취급해야 하는 시대가 내 문턱까지 왔다. 그 변화를 빨리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다품목으로 변해갈 때 나만 전동공구 전문으로 한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도 묻고 싶다. 전동공구 제품만 보면 이게 언제 어디서 나온지 단박에 안다. A/S? 그것도 안에 뜯어보면 전문가 수준으로 안다. 하나를 깊이 알면 그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자부심이 강했다.”



Q) 제조사, 판매상, 협회 등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협회는 회원을 위한 협회가 되어야 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회원을 위한 일을 진정으로 할 때 회비를 갖다 바치는 거 아닌가. 판매상에게는 ‘나만 살고보자’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모여 있을 때만 ‘단결하자’ 말하고, 각자 생업터전으로 돌아가면 싹 잊어버린다. 그럼 우리업계에 미래는 없는 거다. 자멸이다. 또 크레텍책임같은 1위 기업도 리딩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제조사를 상대로 협상카드를 주도해야 한다. 아무리 지금 잘 나가도 우리같은 중소도매상이 없으면 나중엔 어떻게 되나. 누가 팔아줄 건가 말이다. 제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꾸만 강매하고 목표만 채우다 우리같은 중소상인 다 죽고 난 후 그땐 뭘 할 건가. 시장이 다 죽었는데. 이때까지 만들어 놓은 시장을 하루아침에 죽일 순 없다.”

외골수, 한길 스타일, 이효용 그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 만큼 그의, 혹은 그와 같은 공구인의 40여년 세월이 지금의 대한민국 전동공구 시장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너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거나, 혹은 본국에 실적보고를 잘 올려 좋은 성적을 가져가야 하는 전문경영인이 있는 전동공구 제조사를 향해 협상카드를 내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상도 이전에 생존권이라는 카드는 다른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는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인을 민주화의 개념에 넣기보다 시장질서와 공정한 경쟁 원리에서부터 봐달라’는 이효용 부회장의 지적이 결코 가볍지 않다.




전동공구시장의 문제는 원인과 현상만 있고 해결책은 없는 듯 보인다. 자유경쟁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제조사나 판매자 누구에게도 어떤 강제조치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해법이 없는 것일까. 먼저 다른 업계의 예를 찾아봤다.

작년초 대한의사협회는 ‘의약품 리베이트 단절선언’을 했다. 리베이트는 의약업계에서 가장 성행한 시장확대 방식이었지만, 이 선언으로 ‘이제는 받지 않겠으니 주지도 말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어 이 선언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 의약품에 대한 임상적 데이터 공개를 시도하며, ‘국내약품이나 약효가 떨어지는 약에는 리베이트가 있다’는 공식을 깨려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모 제약사에서 리베이트 근절을 경영방침으로 내걸었는데, 이 회사는 처음엔 고전을 했지만 점차 의료계의 신뢰를 받게 돼 시장에서 뿌리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들어 국내 의료계에서 신규약품 채택비, 병원발전기금 형식의 리베이트 등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의사라는 사회 특수층의 자부심과 도덕성이 이 리베이트 근절운동에 가장 큰 정신적 근거가 됐다. 일본은 아예 의약품 거래에 대한 경제이익과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이런 것만 봐도 자체적인 자정운동과 노력으로도 강제조항 입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혹자는 “교통질서만 봐도 처음에는 교통경찰 뒷돈 주는 걸로 무마했지만 위법기준을 정하고 사회질서를 강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가니 달라졌다”며 “공구업계 시장질서 또한 시간과 도덕개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경대 물류학과 오영택 교수는 업계발전 방향을 명확히 할 것을 제안했다. “시장질서에는 크게 업계 중심과 소비자 중심이 있는데, 이는 정부의 정책이 정부중심이냐 국민중심이냐는 논란과 같은 것”이라며 “시장(사용자, 수요자) 중심으로 갈 것이면 지금의 이 고비를 넘어야 하고, 업계(제조사) 중심이라면 글로벌화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짚었다. 단, 공구업계가 시장중심으로 발전한다면 현재의 이익률 하락과 무리한 가격경쟁은 당장은 답이 없는 것이며, 업계 외부에서 볼 때 이런 문제는 ‘시장재편의 과정’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레 짚었다.
또한 “산업화 초기에는 시장조절 키를 생산자가 가졌지만 산업이 발달할수록 유통이 파워를 가진다. 그런데 전동공구만은 아직도 제조사가 시장 조절 키를 가지고 있어서 문제가 불거지는데 이 역시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누가 힘을 가지는 게 옳다 그르다를 떠나 현재 전동공구업계의 문제는 유통사들이 입장을 모아 제조사와 협상할 수 있는 자체 집결력이 중요해 보인다. 협회 차원의 제재조치가 먹혀들 수 있도록 협회 파워도 있어야 하고, 제조사 자체적인 변화노력도 필요하다. 당장의 근시안적 효과만 보지 말고 한국시장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동반자적 시각’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당장 기댈 법 조항이 없다면 동반성장과 약자보호, 공정거래라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