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 6천억 슈퍼마켓에서 배운다
홈플러스를 이긴 중소마트 서원유통 탑마트 생존전략 8가지
1997년 문을 연 진주 하대동의 탑마트. 10년 뒤, 매장으로부터 1km도 떨어지지 않은 근방에 홈플러스 진주점이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진주 탑마트는 곧 문을 닫을 거다’고 예측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탑마트는 번창했다. 오히려 홈플러스가 탑마트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에 홈플러스 본사인 영국의 테스코 고위 임원이 직접 진주 하대동을 찾았다. 마트를 둘러보고, 직원들에게 경쟁력을 배우라 지시했다. 탑마트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홈플러스 직원들이 대거 매장을 방문한 것이다.
탑마트는 대형마트와 일반 슈퍼마켓 중간 크기의 SSM(기업형 슈퍼마켓)으로 분류된다. 1981년, 부산의 작은 슈퍼마켓 매장 3곳으로 시작해 현재 경상도 지역 76개의 직영점 및 양산시 농수산물 종합유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창업 30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작은 동네 마트가 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와 같은 대형매장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소형 마트의 성장과정을 탐구해보면, 중소형 공구상의 생존전략이 보인다. 공구상이 벤치마킹할 서원유통 탑마트의 생존비법. 총 8가지로 분석해볼 수 있다.
1. 중저가 시장 공략
서원유통 탑마트는 식품 및 생활용품 약 12,000~15,000개 품목을 유통하고 있다. 품목 수는 일반적인 공구상 규모와도 비슷하다. 상품가격은 대부분 중저가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현지 바이어가 직접 특산물을 물색해 구매하거나 물류 단계를 줄이는 등 효율적으로 유통했다. 과일, 채소, 생선과 같은 신선식품은 산지에서 바로 배송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했다. 매장과 가까운 물류센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진주와 경주 등 지역 권역별로 나눠 집배송장을 마련했다. 2002년 경남
김해시에 56,809제곱미터(약 17,000평) 규모로 설립한 김해물류센터에는 단층으로 넓은 농·수산물과 공산품 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창고 바로 옆에는 2000년 업계최초로 문을 열었던 축산물 가공센터를 부산 학장동에서 이전해왔다. 도축해온 생고기를 직접 부위별로 잘라 가공해 소비자에게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외부 여러 단계의 가공 과정을 직접 가공으로 줄이고 단가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2.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
남들 다 잘하는 것을 따르다보면 우리가게의 ‘진짜 경쟁력’은 간과하기 마련이다. 서원유통은 그 강점을 미리 파악했다. 바로 신선식품이다. 주부들은 매일 ‘오늘 밥 뭐 먹을까?’ ‘내일 아침은 가족들한테 뭐 해먹이지?’라는 고민으로 가득하다. 매일 식탁에 올라가는 먹거리는 주민들이 동네 마트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다. 매일 장을 봐야 한다. 그래서 서원유통 이원길 회장은 식품을 신선하고 안전하게 공급하는 것이 마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는 “결국 신선식품이 좋아야 한다. 옷가지나 일반 생필품은 필요할 때만 가끔 사면되지만 밥은 매일 먹어야 한다”며 “신선한 재료를 잘 공급하는 것이 서원유통의 경쟁력, 대형마트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틈새시장”이라고 판단했다.
서원유통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빠른 배송을 자랑한다. 예로 부산 어시장에서 경매해 들어온 생선은 가까운 김해물류센터에 집하해 새벽6시에 105대의 택배차량이 순서대로 각 매장별 운송을 한다. 상품의 도착시간은 산지로부터 늦어도
36시간을 넘기지 않아 신선한 맛을 보장한다. 대기업 대형마트의 경우 천안 등 물류창고에 모였다가 다시 배송되기 때문에 운반시간이 오래 걸려 신선도가 떨어지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경상도 지방의 빠른 유통망을 잘 활용한 예다.
그렇다고 잘하는 것만 도전한 것은 아니다. 탑마트의 성장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도 찾아왔다. 지점을 넓혀가던 중 대형마트 부지를 싸게 인수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2003년 11월
대구에 대형마트로 오픈을 시도해봤다. 그러나 생활용품, 신선식품, 가공식품 등 주력상품 외에 기존 대형마트처럼 의류, 가전, 스포츠용품 등 주력 품목이 아닌 상품들로 판매영역을 확장하려다보니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품목을 급격히 늘리면서 잘 모르는 분야까지 손을 벌리는 건 무리였다. 못하는 걸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품목의 관리도 어렵고 해야 할 사업은 아닌 것 같아 2년 만에 까르푸에 매각을 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홈플러스가 들어섰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의 공세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SSM만의 특성을 잘 살린 영업 때문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전략이 여기서 나왔다. 신선식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데 주력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실패를 디딤돌 삼아 올해는 서원유통의 특성을 살려 대구 중구에 대구점과 진주 평거동에 평거점을 출점할 예정이다. 규모는 대형마트처럼 크지만, 내부는 탑마트답게 운영할 계획이다. 신선식품 코너를 늘리더라도 동일품목에 진열 개수만 늘리는 게 아니라 사과면 안동사과, 문경사과, 거창사과 등 산지별로 구분해 놓는다. 수입과일도 바나나만 두었다면 망고도 추가하는 식이다. 가전제품, 식기, 의류 등 우리에게 어려운 건 전문 업체에게 임대로 맡긴다. 이런 식으로 탑마트다운 대형마트가 탄생될 예정이다.

3. 잘 팔리는 배치… 계절·특가상품은 앞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디스플레이 비법은 무엇일까. 탑마트는 크기에 따라 A, B, C급 점포로 나누어 디스플레이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우선 과일과 신선식품 등 주력상품은 매장 제일 앞부분에 배치한다. 그 다음은 식품 위주로 농산, 수산, 축산 순으로 배열된다. 980평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탑마트 신평점을 찾아가봤다. 윤병연 부장(지점장)은 “매일아침 판매수량, 행사품목, 계절성 등에 따라 상품진열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봄은 딸기, 여름엔 수박과 참외 등 앞쪽에 계절상품부터 진열을 해서 계절감을 빨리 느끼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성주 참외, 담양 메론, 나주 배 등 각 유명산지에서 구매한 상품들이다. 또 일별로는 세일하는 특가상품이 생기면 통로를 지나가는 고객들이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엔드진열(진열선 끝 곤도라에 상품을 쌓아 진열) 방식으로 배치를 한다. 질 좋고 값 싼 물건이 들어오면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을 한다. 강한 진열, 분산 진열, 약식 진열 등 진열법도 다양하다. 코너별 제품의 색감도 중요하다. 오렌지를 배열할 경우 옆에는 밀감, 그 옆에는 한라봉 등 비슷한 색감과 품목을 비치해 진열하면 고객의 눈에 쉽게 띌 수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탑마트 전 매장은 진열을 바꾸느라 분주해진다.
4. 탁 트인 매장으로 고객 끌어라
탑마트는 거의 모든 매장이 탁 트인 1층 단층구조다. 300~500평 규모지만 한 층에 모든 품목을 코너별로 진열해두기 때문에 대형마트처럼 내부가 넓어 보인다. 천장을 높이고 조명을 촘촘히 달아두어 매장이 더 밝고, 상품도 깨끗하게 돋보인다. 매장에 들어서면 사방이 다 보여 물건을 찾기 쉽다. 일반 마트처럼 카트를 끌고 다니며 상품을 담고 계산대에서 결제하는 방식이다. 모든 매장에는 20~3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언제든 부담 없이 무거운 짐을 싣고 갈 수 있도록 고객편의를 부여했다. 지하나 에스컬레이터타고 2층으로 오를 일 없이 1층만으로 넓은 매장은 탑마트의 쉽고 편리한 특성과 딱 맞다. 지역 주민들이 대형마트보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또 한 가지, 고객이 집에서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매장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5. 지역친화 전략
탑마트는 점포를 열 때부터 지역별 인구 특성을 고려해 취급하는 품목의 종류와 진열 방식을 바꾼다. 신세대 층이 많은 신도시 매장에는 기저귀 등 유아용품을 늘리고, 노년층이 많은 지역에는 신선한 먹거리와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소량식품에 집중하는 식이다.
특히 탑마트는 각 지점별 유통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현지 바이어가 특산물을 발굴, 효율적으로 유통한다. 대형마트는 모든 지점에 같은 상품이 공급되지만, 탑마트는 지점별로 특색이 있다. 김해물류센터에 상품을 보관하지 않고 가까운 곳은 직접 조달한다. 포항, 경주, 영천, 현풍 등 경북지역 지점에 특산품을 공급할 경우 물건을 김해까지 내려와 집하시켰다가 다시 매장이 있는 지역으로 올라가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진주, 경주에 농수산물 집배송장을 세웠다. 각 지점장에게는 로컬푸드에 대한 권한을 줘 문경사과, 상주곶감 등 지역 특산품은 현지에서 공급받아 쓸 수 있도록 하고 남은 상품은 물류센터로 보내는 방식을 활용한다. 물류비도 절감되고, 고객은 좋은 상품을 빨리 맛볼 수 있어 좋다.
6. 세일하는 날 지정해 홍보… 프로모션 팍팍!
행사는 방문하는 고객에게 재미를 준다. 탑마트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은 ‘수목돌풍’과 ‘막 퍼준데이’다. 매주 수요일, 목요일은 ‘수목돌풍’ 할인행사가 열려 매장이 고객들로 북적인다. 이 날은 200~300개 품목을 최대 30% 싸게 판매한다. 대형마트는 주말행사가 많지만, 탑마트는 주말을 피해 주중 중간인 수, 목을 잡았다. 2005년부터 전 매장에 실시된 수목돌풍은 매장의 핵심 프로모션으로 자리 잡았다. 가게 간판 옆, 매장 안은 수목돌풍 현수막으로 가득하다. 판촉과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판촉실 임광석 차장은 “일종의 ‘데이(day)마케팅’이다. 전단지를 돌리고 홍보하지 않아도 고객들은 ‘수요일, 목요일은 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수, 목이 일주일 매출의 30~4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1년에 딱 두 번, ‘막 퍼준데이’라는 행사도 열린다. 명절이 끝난 뒤 팍팍한 살림살이 도움 되라고 5일간 매장 내 전 품목을 5~20% 싸게 판매한다. 수목돌풍과 겹치는 날은 중복 할인돼 방문하는 이들로 주차장 인근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이 외에 각 매장별로 금·토·일
3일장 등 프로모션 품목을 정해 할인행사를 펼친다. 날을 정해 주기적으로 행사를 하고, 그 외에는 잦은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는다. 일시적 경품행사와 같은 것들을 자주 하다보면 고객의 신뢰도가 오히려 떨어진다. 방문하는 사람들은 반짝 고객일 뿐이다. 모두에게 행운이 돌아가지 않으면 소수의 불만도 쌓인다. 그래서 탑마트는 기타 프로모션 비용을 덜어 ‘막 퍼준데이’와 같은 행사에 확실하게 투자한다.
7. 침체기에 빠졌다면 사업목표 분명하게
2010년 매출 1조를 달성했던 서원유통도 잠깐의 정체기가 있었다. 2005년 매장확장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이 때 5년 후 사업목표가 큰 역할을 했다. ‘비전 2010’ 목표를 세워 매출 1조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당시 매출은 5천3백억으로 사업목표의 반 밖에 되지 않은 상황. 직원들은 “어떻게 1조나 달성할 수 있냐”며 안 된다는 비관이 많았다. 그런데 목표를 세우자 전 직원은 움직여야만 했다. 5년 만에 점포를 30곳 가량 늘리고, 매출 1조를 달성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작년 매출은 1조6천억을 달성했다. 목표가 없으면 성장 없이 정체된다. 서원유통은 이것을 보여줬다.
이제 또 다른 도약이다. 지난 1월 창립 35주년을 맞은 서원유통은
‘5년내 매출 3조원 달성’이라는 ‘비전 2020’을 선포했다. 올해 6개
점포를 더 늘리고 진주와 대구 대형마트 지점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물론 고민도 있다. 서원유통 측은 “사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장확장이 중요하다. 그런데 유통법이 적용돼 회사가 대기업으로 분류되면서 재래시장 1km 반경 이내에는 출점하지 못하고, 주변 재래시장과 슈퍼마켓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출점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고 사업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도시, 기존 매장 인수 등 틈새시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목표가 있다면 위기가 생겨도 출구를 찾게 만든다”는 게 서원유통의 생각이다.

8.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신뢰 우선
서원유통 탑마트가 오래도록 한 자리에서 고객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방법을 물어봤다. 만나는 직원마다 ‘신뢰’라 답했다. 상품이 좋고 직원을 믿을 수 있다면 한 번 만났던 손님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임광석 차장은 “신뢰는 고객과의 정이다. 먼저 고객을 알아줘야 한다. 무얼 원하는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서비스 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래처와의 신뢰도 중요하다. 이원길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매입은 외상, 판매는 현금 지불 방식이었기 때문에 재고관리가 충실하게 이뤄지지 않거나 신용이 없으면 사업 유지가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서원유통은 거래처의 대금결제를 단 하루라도 늦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도 서원유통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당시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재기한 탓에 부산지역 슈퍼마켓에서는 식료품 등을 찾기 어려웠지만, 서원유통은 납품업자들에게 신용을 잘 지켜온 덕분에 제품 공급을 적극 지원받을 수 있었다.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문화 또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직원숙소, 학자금 마련, 직원교육 투자로 다른 유통업체보다 한 발 앞서가기 위해 노력한다. 유통업계의 힘든 노동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직원들 간의 끈끈한 정이 한 몫 한다. 특히 김기민 사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동네 수박아저씨’로 통한다. 매년 더운 여름이면 직원들 힘내라고, 수박 들고 전 매장을 돌아다니며 화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직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다 외우고, 정이 있는 모습은 친근한 이웃 아저씨를 보는 듯하다.
서민에게 딱 맞는 마케팅과 친근함, 신뢰로 오랜 기간 영남 지역 유통을 이끌어가고 있는 서원유통. 대형 유통상들의 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고객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는 것, 그리고 사업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있었다. 남들이 잘하는 것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면, 위기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글·사진_장여진·사진자료_서원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