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SPECIAL

[2016트렌드] 7. 공구계도 가모장(家母長) 시대?




단순히 남편의 사업을 거들던 사모님이 아니라 실세 오너로 경영 일선에 나선 여자사장들이 늘고 있다. 타 업종에 비해 보수적이라 여겼던 공구산업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공구계도 ‘가모장’ 시대?



눈에 띄는 여성 공구인의 등장

공구업계 여성 공구인들을 살펴보면 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2세 경영인이거나, 사모가 주축이 되어 가족끼리 운영하는 공구상이거나, 공구업종 근무 경력으로 독립을 하거나, 스스로 창업한 공구인 등이 있다. 더불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생활 속에서도 공구를 접하게 되면서 공구업이 친근해졌다. 공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DIY족의 출현, 인테리어 공구의 판매 증가, 공구다루는 연예인이 등장해 일명 ‘집방’으로 불리는 TV 프로그램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지난 공구사랑 4월호에서는 ‘가모장 시대를 여는 공구상 여사장들’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가모장’은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님과함께>에서 유래된 말로, 개그우먼 김숙이 “어딜 감히 남자가!”라며 가부장 사회를 비틀어 성별을 여성 중심으로 바꿔 표현한 데서 일컬어졌다.
 
소통과 멀티태스킹 능력이 강점

아직까지는 여성에 대한 기존 세대로부터의 편견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꿋꿋이, 또 멋지게 해내는 여성 사장들이 눈에 띈다. 공구 사업에 여성이라는 점은 장점도 단점도 있다. 이들의 특징은 누구보다 공구를 좋아하고 항상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쓰는 것, 사업에 대한 구체적이고 꼼꼼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다양한 일의 멀티플레이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공구업종에 종사하다보면 성격이 바뀌거나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공구업계 20여년 경력의 한 배테랑 여사장은 “이 업계는 남성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들의 문화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투도 습관적으로 ‘~하세요’ 대신 ‘~습니까’ 등 남성적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때론 고충도 있다.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도 사람 관계에서 오는 남모를 스트레스가 많기에 적절히 쌓였던 아픔을 식혀주는 것도 필요했다. 실내에 화초를 기르거나,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정화시키고, 등산 후 술 한 잔 하며 화를 다스리기도 했다.
요즘 여성 공구인들은 본인의 사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 다니던 직장에서 독립해 공구매장을 열게 된 한 여성 공구인을 만나봤다.



배울수록 재밌는 공구 여성이 유리한 점 많아

위(We)하우스 박서현 대표

공구 및 자재 매장으로 개업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새내기 여사장. 10년가량 남들의 배로 노력한 공구업 경력으로 자립할 수 있었던 박서현 대표의 독특한 창업 스토리를 들어봤다.



-창업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10년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건설 공구와 자재를 다루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업무와 근무시간이 괜찮은 것 같아 일을 시작했는데, 일하다보니 저랑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공구를 배우고 판매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공구는 품목도 많고, 배우는 게 끝이 없어요. 몇 년간 경력이 쌓이면서 혼자서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마침 주변에서 창업 도전해보라고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전 직장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매장 안에서 판매와 매입을 했죠. 손님이 필요한 물품을 얘기하면 찾아서 거래명세표 작성해주고 물건 챙겨주는 역할을 했어요. 물건이 가게에 없으면 어디서 판매하는지 알아보고 매입해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고요. 주로 건축업자, 설비업자 등 업자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그 업무가 창업에 많은 도움이 됐겠네요.
그렇죠. 어떻게 하면 매입을 잘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고 품질 좋고 싸게 살 수 있는 곳들을 스스로 많이 찾아봤어요. 다른 사람이 못 구하는 것도 제가 아는 사람들 통해서 물어보고, 인터넷에 찾아보기도 하면서 노하우를 배워왔죠. 손님들이 못 구하는 제품도 찾아주고 잘 해드리면 ‘신경써줘서 고맙다’, ‘감사하다’고 표현해주셨는데, 그럴 때 진짜 기분이 좋거든요. 항상 배워가면서 일하고, 사람들이 필요한 제품을 제공해줄 수 있으니까 이 일이 참 재미있어요.
-‘위(We)하우스자재모여’라는 이름을 짓게 된 계기는?
요즘은 일반인들의 공구 소매가 많아지잖아요. DIY가 유행을 하다 보니 ‘우리 집을 어떻게 꾸밀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 분들을 타깃으로 판매망을 넓히는 것이 딱 괜찮겠다 싶었어요. 그 때 ‘위(We)하우스’라는 이름이 떠올랐어요. 우리 집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공구, 자재는 다 있는 곳이라는 의미예요.
-현재는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있나요?
지금은 전부터 공구 일을 하며 알게 된 업자 분들이 많이 오세요.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매장 둘러보고 사 가시는 일반 소비자 분들도 있어요. 앞으로는 이들을 위한 인터넷판매도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에요.
-주로 취급하는 공구는 무엇인가요?
인테리어에 사용되는 모든 것이요. 전동제품이나 목수들이 쓰는 공구 등이에요. 일반 생활용품으로 조명, 전기, 청소용품과 문풍지, 단열에어캡, 히터 등 계절상품도 취급하고 있어요


 
-본인처럼 최근 여성 공구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네. 제 주변에도 많아요. 철물점 운영하는 사모님이 있는데 남자보다도 더 장사 잘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파이프 전문 판매점을 잘 운영하는 여사장님도 있고, 철강회사서 영업하는 여자 과장님도 있어요. 그 과장님은 성격도 좋고 일도 똑 부러지게 잘 해요. 친해져서 개업식 때도 찾아와 화환도 주셨어요. 
-그 동안 공구업을 하며 여성으로서 느꼈던 어려운 점은?
회사 내 남자 직원들과의 관계 유지가 어려웠어요. 이전 직장에서 일을 내 일처럼 하다 보니 윗분들이 저한테 일을 맡겨주셨는데, 남직원들의 시기와 질투를 좀 받았어요. 피치 못한 사정이 생겨 이사님이 봐주는 경우에도 아래 직원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안 좋게 보더라고요. 일하다 잘못된 게 있어 지적해주면 ‘당신이 뭔데?’하는 눈초리를 주기도 했고요.
-그 외에 손님에게 차별받는다 생각된 적은 있으셨나요?
무조건 남자 직원을 찾는 경우가 있어요. 저만큼 공구 잘 아는 남자 직원들이 없었는데도 모르는 분들은 전화해서 다짜고짜 남자 직원을 바꿔달라고 해요. 그럼 전 아무 말 않고 바꿔줘요. 무시하니 ‘한 번 답답해봐라’ 싶은 거죠(웃음).
-여성 공구인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확실히 꼼꼼하고 일을 잘 하는 것 같아요. 매출거래처에 대해서도 그렇고 개개인의 성향을 다 기억하는 것 같아요. 어떤 물건을 쓰는지 바로 생각해내고요. 주변에서도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남자직원들보다도 세세하게 잘 기억하는 것 같다고요. 또 여자들이 대체로 두세 가지 일을 한 번에 빨리 처리하면서도 실수 확률이 적어요. 그런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왜 월급은 남자보다 적게 줄까요? (웃음) 
-반대로 여성 공구인의 약점은 무엇인 것 같나요?
무거운 물건 들기 힘든 거요. 그래도 제가 물건 옮기다 잘 안 되면 손님들이 도와주세요.
-본인의 장점은?
저는 초긍정적이에요.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한다고 할까요? 제가 목소리 톤도 좀 높잖아요. 상대방을 밝고 편하게 대하는 편이에요. 오늘 아침에도 한 손님이 왔는데 이전 과장 직함을 계속 불러서 ‘무슨 과장이야, 그냥 편하게 불러’ 했더니 ’누나, 누나‘하는 거 있죠. 저는 장사하면서 작은 것 하나 팔아도 손님에게 잘해드리려 노력해요. 다음에 다시 방문할 수도 있고,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올 수도 있잖아요. 
-새로 시작하는 여성 공구인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공구 일은 여자들이 해도 괜찮은 업종인 것 같아요. 자기가 재밌고 관심 있는 일이면 공부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공구에 대해 잘 알고, 손님한테만 잘 하면 공구업은 그렇게 실패할 확률은 없을 거라고 봐요.


 
-창업하게 된 소감은? 
이전과 같은 일이다보니 이상하게도 크게 설레는 감정은 없는데요. 창업하면서 도움 주신 분들이 많아서 너무 고마워요. 이 큰 선반도 거래처 사장님이 선물해주셨고, 이전 직장 동료와 알게 된 많은 분들이 다 찾아와서 진열도 해주고 도움을 정말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준비한 지 보름밖에 안 됐는데 매장이 빨리 정리 된 것 같아요. 혼자 매장 여는데 누가 이렇게 챙겨주겠어요. 제가 그 동안 헛되이 살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용기 낼 수 있었던 제일 큰 힘은 아버지예요. 예순 넘으셔서 운전면허증, 지게차면허도 따셨고 항상 긍정적으로 웃음을 잃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그 피를 물려받았나 봐요. 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언제나 제 마음속에는 아버지께서 편히 계셨으면 해요.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 아버지처럼 살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포부는?
앞으로 재미있게 일하고 싶어요.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오겠죠. 나중에 직원이 생겨도 같이 즐기면서 직원도 가게도 잘 되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여성 공구인들의 말말말

여성 공구인 모임 만들어질 날 기대해



여자여서 좋은 점이 많아요. 우선 꼼꼼함이죠. 거래처가 말한 것은 세부적인 것도 메모해두고 잘 챙기거든요. 그리고 대체로 소통능력이 좋으니까 얘기를 잘 들어주고 전화응대도 잘 하는 편이죠. 우리 회사가 여자 직원이 많은 이유기도 하고요. 이런 세심함이나 소통능력을 잘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자보다도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공구업계에 여자가 많아져서 여성 공구인 모임도 생기면 좋겠어요.


당장 힘들어도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



예전에 속 썩이는 남직원들 여러 명을 함께 이끌고 가야했던 게 많이 힘들었어요. 밖으로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죠. 진상 손님들도 있었고요. 그래도 처음엔 공구의 공자도 몰랐는데 한 가지에 계속 파고들다보니까 결국 해내게 되더라고요. 제가 겪었던 일이 젊은 여사장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해요. 전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 얘기해요. 당장은 힘들어도 이 순간만 보고 있으면 안 돼요. 세상은 넓잖아요. 내가 여자이기만을 원하면 이 공구계에서는 살 수가 없어요. 동등한 사업가가 되어야 해요.
 
 
“사장님 바꿔” “전데요”


 
지금은 워낙 몸에 배서 편하게 대응하는데 전화 받으면 “사장님 바꿔” 그러는 사람이 많았어요. 접니다, 하면 그래도 “아 사장님 바꾸라니까?” 이런다니까요. 공구 사러 오면 남자 여자 따지기보단 물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맞지 않겠어요? 여자라고 남자보다 공구에 대해서 모른다? 그런 건 아니거든요. 가끔 여자라고 얕잡아보거나 거칠게 말하는 손님에게는 저도 똑같이 대해요. ‘안 사셔도 되니까 그냥 나가세요’ 그래버려요. 오는 고객에게 친절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닌 사람에게까지 굳이 과잉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