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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진TM 강상열 대표이사
업계에서 ‘강상열’하면 뚝심의 사업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아들인 강해운 씨(현 상진TM 부장)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트루스코사에서 근무한 것이 알려지며 ‘역시 강 사장다운 선견지명’이라는 평을 들었다. 강해운 부장은 당시 일본서 보고 배운 것을 기록했는데, 이때 양사를 비교하며 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버지는 창업당시부터 한국최고의 영업사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셨다. 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일하셨고 단시간에 한국기계공구업계의 최고매출을 자랑하는 회사로 성장시키셨다. ...(중략).. 아버지는 한국 기계공구업에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이 업계에서 장사를 한 덕분에 저와 가족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또 산업에서 이 공구의 역할이 중요해 보람도 많이 느끼신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자부심과 강 대표의 직업에 대한 신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당시 일본 공구계의 모습과 아버지 회사인 상진을 비교하며 과제를 몇 개 제시했는데, 이미 4년여 전임에도 전동공구 이익률을 첫째 과제로 언급한 점이다.
“상진TM에게는 많은 과제가 산재해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문제가 낮은 이익률이다. 특히 매출 가운데 높은 점유율을 지닌 전동 공구의 경우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에 이익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제조사의 리베이트가 있어 2~3%의 이익을 보전한다손 치더라도 실제 관리비를 생각하면 이익이라 볼 수 없어 이 부분에 대한 점검이 요구된다.”
강상열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 “문제가 있으면 변해야 된다”는 말로 사업에 변화를 준 이유를 짧고 강하게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터뷰 당시 독일 쾰른전시회 기간이었다) 이번 독일전시회엔 가지 않으셨나?
“직원들을 보냈다. 내가 가는 것보다 직원들이 하나라도 더 보는 게 낫지 않겠나.”
현재 직원수는 어느 정도인가?
“현재 줄었다. 50명에서 35명 정도로.”
사업을 줄이신 건가?
“업의 형태를 바꾼 것이다.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많지만 특히 전동서 이익이 없는 구조로 가니까 요즘 난리들 아닌가. 다른 부분에서 남겨서 이쪽으로 보태야 하니 머리가 아프다.”
상진은 어떤 대책을 쓰고 있나?
“전동공구를 영 취급 안할 수는 없다. 작년초부터 중순까지 고민하다 전동공구 취급을 3분의 2 줄여 기존대비 3분의 1만 취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당장 매출에서 연간 100억 가까이 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떡하겠나. 매출만 크다고 좋은 회사는 아니다. 현재의 이익률로는 취급율을 안 줄이면 살 수가 없다.”
몸집 불리기로는 미래 없다 … 다른 성장정책 필요
비즈니스에서 어느 정도 몸집을 갖추는 게 중요한데 어려운 결정이셨겠다.
“바로 그런 생각들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 이익이 없더라도 당장 몸집부터 불려놓고 보는 게 우리업계의 풍토였다. 우리회사의 경우 예전엔 매출의 25%까지도 전동공구 판매에 의지 했었다. 하지만 이익 없이 계속 가다간 위험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앞으로는 비즈니스의 형태가 달라질 거라 본다. 크기보다 다른 것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본다. 특화며 전문화가 이뤄지면 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게 뭔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한다.”
업계에서도 요즘 전동공구 이익률 하락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근본적인 원인은 뭐라 보시나.
“첫째는 우리 내부적인 것이다. 업계에 묘한 풍토가 있다. 일단 팔고보자는 것, 몸집부터 불리고 보자는 묘한 풍토가 과당경쟁을 불러와 가격 내리기를 가져왔다. 나는 이 풍토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둘째는 제조사다. 판매사가 죽든 말든 자기네 성장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2008년경 대기업이 공구유통에 진출하자 우리업계가 위기를 느끼게 됐는데 이때부터 판매경쟁이 더 강화된 것 같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없는가 뒤돌아봐야 한다.”
전동공구에서만 과당경쟁이나 이익률 하락이 심한 이유가 뭔가?
“아무래도 전동공구는 단일품목 중에서 금액이 크고 현금회전율도 빨라서 그런 현상이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전동공구 제조사들도 특히나 공격적인 영업을 한다.”
35여년 업계에 몸담은 선배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 조언을 하신다면?
“나 또한 책임이 없는 게 아닌데 무슨 말을 하겠나. 하지만 공급자도 성장하고 판매자도 성장해야 하는 게 맞다. 베아링협회가 있는데 거기는 잘하는 것 같다. 공급자와 판매자 간의 상호간 대화를 통해 시장조절을 꽤 잘 하고 있다. 우리 판매자도 서로 단결해서 같이 성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길을 찾으면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제조사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들이라 그들만의 전략이 다 있다. 판매자는 이런 전략도 없이 그냥 따라간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같은 모습이 된 건데, 판매자 이익 없이 가다가는 언젠가 공급자에게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동반성장의 길을 찾아야 한다.”
장사꾼 마인드 벗고 기업가 정신 가져야
유통사(판매자)들이 단결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
“그렇다. 다들 자기 살기도 쉽지 않은데, 뭔가 양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공산주의도 아니니 강요는 힘들다. 그런데 장사꾼으로 머무를지 기업가가 될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 못 먹던 시절에는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장사꾼 마인드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장사꾼에서 벗어나 기업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부 과거 사람이 되어 모두 장사꾼 으로만 살면 안 된다. 나도 과거의 사람이다. 이제까지도 그냥 장사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후회되는 면도 많다.”
상진은 기업으로서 성장하지 않았나?
“글쎄....처음 시작할 때는 그런 꿈이 있었다. 최고가 되자! 저기 (대표이사실 벽면)에 붙어 있는 액자 보이나? 예신지공(禮信知公). 예를 갖추고, 믿음을 지니고, 평생을 배우고, 더불어 사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회사이름 상진(相進)도 그런 뜻이다. ‘더불어 나아가자’는 뜻이다. 늘 가슴 가운데 두고 실천하려 노력했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최선의 노력은 했다.”
상진의 직원들은 ‘사장님께서 직원들에게 잘해주신다’고 귀띔했다. 크지 않은 업체라 업무는 많을 수 있지만 아이를 낳을 때마다 출산장려금을 따로 주는 등 직원들이 직장과 삶을 병행하도록 최대한의 애정을 쏟는다는 것. 상진은 1979년 부산 범일동에서 ‘상진상사’라는 상호로 출발했다. 강상열 대표가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공구회사에서 부산지사를 철수시켰는데, 이 지사를 자신의 독립회사로 인수하면서 공구유통업을 하게 됐다. 당시 그 회사에는 나이 든 직원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그 회사 사장은 입사 1년차의 26세 강상열에게 인수를 제안했다. 장차 사장감으로 보였는지 가진 돈도 없는 그에게 도움의 길도 생겨났다. 이후 주로 수공구를 중심으로 해서 사업을 키워갔다. 사업초기를 떠올려 강 대표는 “그때는 열심히만 하면 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국가의 덕을 봤다며 공구인
이 국가사회 발전과 무관하지 않는 이유라 했다.
그간 상진이 커올 수 있었던 비법이 있다면?
“80~90년대는 국가가 산업을 발전시키려고 중점적으로 정책을 낼 때라서 그 덕을 많이 봤다. 공구는 산업과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 아닌가. 또 하나는 당시 전국을 다닐 기회가 많았는데 많은 정보를 가지고 거래처에 정보를 주는 등 도움을 줬다. 그게 내 사업에 원동력이 됐다.”
세상사 새옹지마 …
힘든 게 당연하지 않나
중간에 위기는 없었나? 사업이 힘들 때는 어떻게 넘기셨나?
“왜 위기가 없고 힘들 때가 없었겠나. 그러나 일이란 안될 때
도 있는 게 당연하다. 성인도 다 자기마음대로 못했는데, 하물며 인간의 일이 안 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힘들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 할 일이다. 그래서 안 풀릴 땐 당연하다 생각하고 당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인 위기는 94년도에 몸이 좀 아파 힘들었다. 그 일로 사업도, 가정도 돌아보게 됐다. 진짜 소중한 걸 생각하게 됐다.”
중간에 제조업을 하시기도 했다.
“86년도에 공장을 하나 인수해서 제조를 시작했다. 처음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보니 전부 외산공구 일색이었다. 국산공구가 나와줘야겠다 싶어 아예 직접 만들자 생각했다. 파이프렌치, 클램프, 자동차 부품 등을 만들었다.”
성격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으시니 제조에 잘 어울리신다.
“그런가(웃음). 하지만 90년대 중국개방 영향 등 여러 가지 이유로 2000년도에 접었다. 14년을 하다 접었다. 정말 잘 하고 싶었는데 ... 하지만 많이 배웠다. 그때를 기회비용이라 생각한다. 안될 때는 방향전환을 하는 게 맞다. 그때도 그랬고, 이번에 전동 공구 역시도 안될 때는 방향전환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출혈경쟁 시장서 방향을 틀어라 …
전문화 글로벌화 등으로 특화전략
앞으로 상진의 발전 방향은?
“규모에 집착하지 않고 알차고 따뜻한 회사! 내 가족, 내 직원이 행복한 회사가 목표다. 그러기 위해 성장일변도 보다 특화, 전문화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다. 현재 그 방법을 구상
중이다.”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크기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요즘 지방에 가보면 알차고 좋은 공구상들 많다. 그들의 특징은 사업성격을 특화하고 전문화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대기업이 들어오고 시장상황이 치열해져도 저는 그들이 잘 할 것이라 본다. 과거 우리 때는 성장만이 중요했다. 지금은 성장도 중요하지만 뭔가 성장 이외의 관점이 필요하다. 성장일변도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회사가 오래갈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오래 가려면 어떤 점을 짚어야 할까?
“사람이 태어나면 삶의 목적이 있고 수단이 있다. 일은 하나의 수단인데, 일터인 기업을 통해 삶의 목적에 부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삶의 목적이 별 것 있겠나, 행복이지. 일을 하면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게 어쩌면 현실적으로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면 일과 삶을 어느 정도 조화시킬 수 있다. 일을 통해 보람도 얻고 인생 설계도면을 가져야 한다. 이런 직원들의 고민과 꿈을 회사도 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대표님 인생에서 공구업이란?
“(한참을 생각하다) 내게 공구업은 ‘천직’이다. 천직으로 삼으면 남보다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다. 만약 청춘이 다시 온대도 이 공구업을 할 것이다. 산업에 꼭 필요한 실과 바늘이기 때문에 보람도 크다. 앞으로는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이 업계도 살아가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하기 나름일 것이다. 뭐든 최선을 다하면 비전 있는 일터가 될 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성공모델이 우리업계에 나와주기를 …
끝으로 업계에 하실 말씀은?
“우리가 서로 왜 이렇게 됐나, 생각해보자 말하고 싶다. 성장일변도에 따른 후유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 문화를 바꿔야 한다. 사실 우리업계에서 모두가 하나같이 크레텍책임의 성장방식을 따라하려고 벤치마킹을 한다. 하지만 그건 많은 성공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모두가 그렇게 닮아가려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품목 전문화, 글로벌화, 특화서비스 등의 방식으로 시장에서 다양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결국 동반성장을 말씀하시는 걸로 이해된다.
“거래처와의 동반성장이다. 단순히 물건만 팔고 사고 해서 될 게 아니고 미래가 있는 기업이랑 거래를 해야 한다. 돈만 생각하는 기업은 의미가 없다. 제조사든 판매사든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업계가 됐으면 한다.”
글 _ 서상희 사진 _ 변한섭(마젠타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