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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와이어 아티스트 이찬호


‘실례합니다~앙’ <서울 뚝배기> 탤런트 김애경

와이어 아티스트 이찬호 알콩달콩 황혼 로맨스


와이어 아트 학원에서 만나
이찬호의 구애로 시작된 연애에서 결혼까지


 
작업공구 소음 때문에 이유 있는 두집 살림
 
지금부터 10년 전, 우리나라 연예계에는 시끌시끌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탤런트이자 70년대 한국 연극계의 프리마돈나였던 김애경의 결혼 소식. 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법 한데 남편 이야기에 뉴스는 더 후끈했다. 유명 배우도 아닌, 그렇다고 돈 많은 재벌도 아닌 ‘와이어 아티스트’라는 낯선 직업을 가진 김애경의 남편. 게다가 다섯 살 연하의 남편이란다. 궁금했다. 나이 중년에 이르도록 연극 무대와 TV브라운관에서 연기 활동에 전념했던 김애경의 마음을 훔쳐 결혼에 골인한 그의 매력은 대체 뭘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강화도에 있는 둘의 전원주택으로 찾아갔다. 아쉽게도 그 날 김애경은 집에 없었다.
“우리는 일반 부부들과는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다릅니다. 말하자면 각자 사는 거예요. 집사람이나 나나 하고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생활하는 시간도 다르고, 또 제가 하는 일이 공구를 사용하는 일이라서 때때로 큰 소음도 나고 작업장이나 자재창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 생활은 불가능하지. 애경씨도 배우이다 보니까 밖에서 연기하다가 새벽에 들어오면 나는 깰까봐 조심스럽게 다녀야 하고…. 솔직히 결혼하고 처음 같이 살 때는 많이 불편했습니다. 만약 우리 둘이 같이 생활을 한다면 집이 수백 평은 돼야 할 걸요? 그러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이렇게 따로 사는 거예요. 저희의 이런 생활 패턴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는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사실 적지 않습니다. 하하.”
그야말로 틀을 허문 ‘파격’적인 생활방식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 묶인 사람들이 각각 따로,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을 한다니. 직업만 낯선 것이 아니라 그런 생활도 낯설기만 하다.
그렇게 사뭇 특별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는 과거 이찬호가 운영하던 와이어 아트 학원에서였다. 우리나라 와이어 아트(Wire art) 1세대이자 유명 와이어 아티스트인 그는 과거 꽤 인기 있는 예술가였다. 각종 유명 백화점에서 들어오는 요청에 전국 투어 전시도 하고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TV프로그램인 EBS <보니하니>를 비롯해 각종 방송 매체와 잡지사에서 출연 및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니 그의 인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의 학원 역시도 수강생들로 문전성시였다. 그 수강생 중 한 명이 바로 김애경이었던 것. 매스컴에서 와이어 아트와 이찬호를 접한 김애경이 학원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쉽지 않은 와이어 아트… 손이 아닌 머리로 하는 것
 
와이어 아트란 말 그대로 공예용 철사(Wire)를 구부리고 자르고 꺾어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의 말로는 보기엔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예술이 바로 와이어 아트다. 이찬호가 그 어렵다는 와이어 아트를 시작한 계기는 실로 우연찮은 것이었다. IMF 무렵 다니던 회사를 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님을 찾아갔다는 그. 목사님 집 옆에 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연구하던 도중, 심심풀이로 그저 철사를 구부려 만든 모형을 본 목사님이 말한 ‘예사 물건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와이어 아트의 시작이었다. KBS차장직도 맡고 있던 엔지니어 출신의 목사는 이찬호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꿰뚫어 본 것이다.
“다들 만만하게 보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에요. 어려워도 너무 어려워. 일반 사람들한테 종이랑 펜 주고 그림그려보세요 하면 저는 그림 못 그립니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와이어 주면서 만들어 보세요 하면 막 만들려고 하는데 제대로 만드는 사람이 없어요.”
손재주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고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꼭 필요한 와이어 아트. 그런데 김애경은 어렵다는 와이어 아트를 곧잘 따라 하더란다. 사실 김애경은 연기자이기도 하지만 화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유화 페인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할 정도로 높은 실력을 뽐낼 정도다. 와이어 아트와 유화 모두 ‘선(線)’을 기초로 한 예술이라서 그럴까? 그녀의 실력은 이찬호의 관심을 끌었다.
말했다 시피 이찬호와 김애경은 부부다. 하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여자친구·남자친구에서 와이프·남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혼인신고가 꼭 필요할까 싶더라고요. 우리는 또 결혼식도 안 했어요.”

 
로맨티스트 남편이 아내에게 준 선물
 
상남자스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남편 이찬호는 로맨티스트이자 살림꾼이다. 지내고 있는 강화도에서는 벌써부터 소문이 났다. 직접 따 온 고사리를 말려 요리를 할 정도인 그는 종종 아내에게도 직접 요리도 해 주고 수많은 와이어 아트 작품을 만들어 선물했다. 둘이서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하기 전부터 계속되던 이찬호의 선물에 김애경의 마음도 넘어올랑 말랑 하던 시기, 그녀를 한 번에 뻑 넘어가게 했던 선물이 있으니 그건 바로 이찬호의 열정과 마음이 담긴 ‘장미 100송이’선물이었다.
“장미 선물은 많이들 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좀 특별하게 했지. 어떻게 했냐면 새벽 네 시에 남대문시장에 가서 장미를 하나하나 내가 다 골랐어요. 그냥 작은 장미가 아니라 이렇게 큰 장미 있죠? 그걸 100송이를 모아서 배달을 보냈는데 은퇴한 노신사 분들이 하는 배달 서비스가 있어요. 양복 딱 입고 구두 신고. 그런 분에게 의뢰해서 집으로 배달시켰지. 거기에 뿅 넘어가더라고. 그 때 우리 와이프가 그랬대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좋아한다는데 넘어가 주자’ 지금도 그 장미를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어서 서울 집에 걸어두고 있어요.”
한 번에 넘어간 김애경이라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찬호가 보낸 구애의 편지가 있었다. 그는 사랑과 정성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손글씨로 적은 러브레터를 그녀에게 띄웠다.
아마 그녀가 이찬호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은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연예인으로서 누군가와 만난다는 것은 인기와도 직결되는 연예계 생활의 ‘생명’인 것. 그때까지 아무런 스캔들 없이 대중들 앞에서 이미지 관리를 완벽하게 해 왔던 그녀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찬호의 진심에 그녀는 닫아두고 있기만 하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골인하면서 두 사람의 삶은 많은 부분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각자 혼자서 반백년을 사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책임감’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집사람도 나도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어요. 혼자 살 때와 비교하자면 당연한 거죠. 아마 우리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책임감이 더 컸을 거예요. 또 하나는 이해심 같은 게 많이 늘어난 것 같아. 좋게 얘기하면 이해심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포기하는 거지. 혼자 살 때보다 둘이 같이 살 때에는 아무래도 제약이 분명히 있어요. 그래도 부부니까 불만 갖지 않고 포기하고 이해하면서 사는 거죠. 저는 결혼하기 전까지 포기라는 단어를 안 좋은 단어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다시 처음으로… 연극과 와이어 작업으로의 회귀
 
요즘 김애경은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서게 된 연극마당에서 예전의 재미를 느낀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연극으로 돌아간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의 유명 극단인 해오름극단의 요청을 받아 객원멤버로 참여 중이다. 다시금 연극에 푹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기하고 있다.
“내가 잘했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힘들다고 안 한다고 그러더니 재밌나 봐. 방자전 같은 고전을 패러디해서 현대극으로 만든 코미딘데 집사람이 대본을 일부 고치기도 하고 그러는가 봐요. 처음에는 나도 연극 하는데 같이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힘들더라고. 또 내가 하고 있는 작업도 못 하고.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작업 마무리할 때까지만 혼자 다니라고 했어요.”
김애경이 연극 무대로 복귀한 것처럼, 이찬호도 다시 와이어를 집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한동안 접어두고 있던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를 다시 본격적인 작업의 한복판으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세계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지인 중에 유명한 나전칠기의 대가가 있어요. 얼마 전에 교황이 우리나라 왔을 때 의자 만들어 주고 빌게이츠한테 이명박 대통령이 선물할 때 이 사람 작품을 준 친군데, 그 친구가 놀러 와서 내가 만든 작품들 보고 그러는 거야 ‘내가 근 30년이 넘도록 예술가로 살아왔는데, 네 작품을 보니까 내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고. 그런 말 들으니까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인의 세계적으로 평가를 받아보라는 말에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그.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인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즈음 그 방법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싸이(PSY)의 ‘강남스타일’ 신드롬. 전세계적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20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며 이찬호는 ‘아! 이거다!’하며 무릎을 쳤다. 그리고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되든 안 되는 한 번쯤은 심판을 받고 싶다 이거야. 세상에 한 번 내놓아 보고 반응이 있으면 계속 가는 거고, 없으면 때려치우지 뭐.”

 
세계 무대에 내놓을 작품, 촬영은 금지
 
안타깝게도 그가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단 1%도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단다. 다른 아티스트들이 그의 작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전에 왔던 방송국 PD들이 작품 촬영하게 해 달라고 얼마나 요구했었는데.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도 나 없는 사이에 몰래 찍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요만큼이라도 나오면 고발할 거라고 그랬어. 이 세계의 생리를 몰라서 그러는 거야. 한 번만 슥 지나가도 다 따라한다고.”
현재 80%작업이 진행되었고 나머지 20%에 열중하고 있다는 와이어 아티스트 이찬호. 취재하며 본 작품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존재가 눈앞에서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세계인들에게 받을 평가에 앞서 아내에게 받을 평가가 더 궁금하다는 그.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그의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게 될 김애경이 부러워지던 순간이었다.

글 _ 이대훈 · 사진 _ 김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