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갤로퍼
수제자동차회사 모헤닉게라지스 김태성 대표

갤로퍼 왜 갤로퍼인가. 요즘 과거 향수를 일으키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개인 클래식카 마니아들이 많아졌다. 블로그, 카페, SNS를 통해 클래식카 '덕후'(일본어 '오타쿠'의 줄임말. 어떤 분야에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는 동호회를 만들어 자동차 정보를 공유하고, 직접 수리하기도 한다. 여기에 모헤닉게라지스 김태성 대표가 있었다. 2012년, 취미로 캠핑을 하고 싶었다. 캠핑카로 사용할 차를 고르다 기존 갤로퍼를 수리하기로 결심했다. 카페를 보고 정보를 얻었다. 닉네임 ‘헤니’로 활동을 시작했다.
“갤로퍼 카페에 들어가서 정보를 얻고, 시안을 직접 만들었죠. 그런데 수리업체에 가서 ‘이렇게 만들어 달라’ 외주를 줬는데 마음에 들게 고쳐주질 않는 거예요. 퀄리티도 떨어지고. 그래서 많이 싸웠어요. 그 과정들을 카페에 올렸죠. 반응이 컸어요.”
어떻게든 그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기 위해 업체와 실랑이를 벌이길 6개월. 결국 만들고 싶은 멋진 차를 완성시켜냈다. 그 내용을 카페에 올리자 차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됐고, 심지어 그의 팬도 생겼다. 그들은 갤로퍼 수리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부탁받은 그대로 업체에 맡겨봤지만 여전히 소통은 어려웠다. 이미 예약된 사람들은 30명. 헤니만 믿고 계약금까지 주더란다. 자본금이 꽤 모였다.
‘그래. 아예 공장을 차리자’
모헤닉게라지스의 시작이었다.
수제자동차 수제차 산업은 이미 해외에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수제자동차는 두 가지 생산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기존에 없던 자동차를 새로 만들어 고유의 브랜드로 출시한다, 다른 하나는 올드카를 새 제품으로 리빌드(rebuild) 한다. 모헤닉은 후자다. 영국만 해도 150여개, 미국, 캐나다 호주 지역에는 800여개의 수제자동차 메이커들이 있다. 국내에는 지난 2013년 처음 등장한 모헤닉게라지스가 유일하다.
모헤닉은 한 달에 단 1대의 차를 생산한다. 6개의 팀으로 나눠 함께 공정을 움직인다. 오래된 갤로퍼가 오면, 우선 해체작업이 이뤄진다. 크게 프레임(뼈대)과 캐빈(차체), 엔진, 실내인테리어, 기기 및 전선 등으로 나뉜다. 프레임과 캐빈은 표면을 제거하고 도장을 한다. 부식된 곳은 다시 용접을 하거나 유리섬유를 활용해 성형한다. 교체가 필요한 부품은 새로 가져와 설치한다. 출력이 좋은 엔진과 바퀴를 부착한 뒤 배선작업과 에어컨, 핸들, 잠금장치 등 기술적인 부분을 손본다. 인테리어는 목공으로 작업을 한다. 계기판, 의자, 핸들 등에 목재가 들어가면 현대적이면서도 클래식한 감성이 드러난다. 단, 갤로퍼의 정체성은 남겨둔다. 리빌드를 통해 앞으로 20년은 더 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수제자동차는 소장 개념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리빌드 자동차는 복원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맡기는 거죠.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도 탈 수 있게끔 튼튼하게 만들고, 원하면 그 후에도 리빌드할 수 있게끔 근본적인 부분은 다 남겨둡니다. 현재 갤로퍼는 3가지 모델로, 옵션에 따라 4천~8천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출시하고 있어요.”
디자인 그의 전공분야다. 대학 4학년 때는 가구디자인연구소를 창업해 ‘더디자인’이라는 가구회사로 성장시켰다. 사진 찍기를 좋아해 ‘헤니하우스’라는 화보전문잡지도 발행했다. 자동차도 이런 감각의 연장선이었다.
“저희는 이곳을 디자인회사라고 말해요. 해외 대부분 수제자동차 회사에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차를 공예 하는 개념이죠. 디자인 작업이 80% 정도 되거든요. 차를 만드는 회사라기보다는 디자인 쪽에 더 가깝죠.”
단순히 차를 정비하는 것이 아닌, 디자인으로 새로운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김 대표. 사무실 벽면에는 갤로퍼 사진과 직접 디자인한 시안들이 가득했다. 각 갤로퍼마다 색깔과 인테리어는 조금씩 다르다.
고급 수제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꼼꼼함이 필수, 재료도 좋은 걸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좋은 디자인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도료도 시중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보다 4배 이상 비싼 제품을 쓰고, 볼트 하나도 전부 새것으로 교체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인다.
방송인 배칠수 백종열 감독. 모헤닉은 유명인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배칠수 씨는 클래식카만 7대를 보유한 마니아로 유명하다. 모헤닉의 매력을 알아본 그는 고급 외제차를 팔고 이곳을 찾아왔다. 최근에는 다른 디자인의 갤로퍼를 한 대 더 주문했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와 ‘신세계 SSG’ 광고로 유명한 백종열 감독도 외제차 대신 자신만의 색깔을 담을 수 있는 갤로퍼를 원했다. 이들은 모헤닉의 팬이 됐다. 최근에는 기업이 온라인으로 투자를 받는 형태의 ‘크라우드 펀딩’에도 동참했다.
“든든한 후원자죠. 배칠수 씨는 좋은 아이디어도 주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작업하면 좋겠다’면서 제작에 대한 조언도 해주세요. 은퇴하면 이 회사로 오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우리 회사의 열렬한 팬이시죠. 지난번에는 차에 깔 카펫을 여러 개 만들어서 손님들을 위해 선물하시기도 했어요. 백종열 감독님은 냉철하고 주관이 뚜렷한 분이세요. 소문에 의하면 6개월에 한 번씩 차를 바꾼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자주 바꾸시는 분이기도 한데요. 1년 반 넘게 우리 차를 타고 다니시니 그만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고집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헤닉을 시작할 때, 전문 정비공을 채용해 팀을 꾸렸다. 공업사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기술은 좋지만 소통이 어려웠다. 디자이너로서 그는 수제차를 ‘제작’한다고 생각했고, 정비공은 ‘수리’만 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는 꼼꼼한 마감을 거쳐 새 차를 판매하고 싶었지만, 직원들은 기능에 문제만 없으면 그냥 팔아도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모헤닉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이 공유될 수 없었다. 이럴 바에는 혼자 힘으로 제작해보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기술 아는 것 없이도 어깨너머로 보고 익힌 것들이 있었어요. 갤로퍼는 다른 차종에 비해 구조가 어렵지 않거든요. 내가 차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열정 있는 누구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김 대표는 혼자 공장에 남아 차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공구디자이너로서 공구는 어떤 의미일까.
“저에게 공구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느낌 말고도 다른 무언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공구는 단순한 수리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툴이에요. 마치 미술가의 붓처럼요.”
갤로퍼를 리빌드 하는 과정은 마치 거대한 프라모델을 조립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자동차 제작에 대해 잘 몰랐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공구를 들고 움직였다. 지금까지 가구를 만들고 사진을 찍었던 일도 지금의 창작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준비물은 갤로퍼 두 대와 완성하겠다는 끈기. 옆 차는 부품을 하나씩 분해하고, 그의 차는 거꾸로 조립을 하면서 제작을 익혔다. 쉬지 않고 6개월을 몰입, 결국 완성해냈다. 미술가의 붓은 갤로퍼를 탄생시켰다. ‘그래. 못할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팀원을 모집했다. 수제차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의 블로그 채용공고를 본 모헤닉 팬들이 모였다. 현재는 이 열정 가득한 사람들이 일을 즐기고 있다.
“디자인, 기계공학, 복합소재 등 전공은 다양하고 차를 수리해본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도 있어요. 어느 정도 손재주 있고 장인과 같은 마음가짐만 있으면 기술은 문제 되지 않겠다는 것을 몸소 느꼈으니까요. 직원들은 이곳에서 일하며 교육을 받게 되죠.”

상상력 항상 무언가 공상하길 좋아했다. 그 상상력이 지금의 모헤닉을 있게 했다고 그는 말했다.
“제 인생의 툴은 상상력 같아요. 저희가 하는 작업들이 상상하는 걸 현실화시키는 작업이잖아요. 디자인 할 때도 완제품을 우선 머릿속에 그려넣어요. 차를 만드는 과정과 타고 다니는 모습까지 상상하게 되죠. 그렇게 떠올리는 것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보고, 현실로 구체화 시켜요. 앞으로 개발할 현재 갤로퍼를 2세대까지 개발했는데, 3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상상하고 있어요.”
성형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그는 갤로퍼 외에도 오토바이, 외제 클래식카 등 차종에 관계없이 리빌드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주말을 활용해 기술과 디자인을 연구하고 부품을 공수해와 조립, 제작하는 ‘세컨드 게라지’를 시범 운영한다. 그는 앞으로 국내 수제자동차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꿈이 있다. 모헤닉게라지스 블로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소통창구다. (www.the.co.kr)
글 _ 장여진·사진 _ 이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