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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젊음이여 '존버', 인생이여'자뻑'





우리시대 작가 이외수의 쓰러지면 일어나는법

최고의 출판파워, 썼다하면 일단 팔리고 보는 작품, 수많은 기행, 씻지 않은 맨발, 그럼에도 가까이 가고 싶은 천진한 매력, 작가 이외수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지난 40여 년간 45편이 넘는 작품으로 또 최근엔 SNS 등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그를 강원도 화천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현재 위암선고를 받고 투병 중임에도 예상보다 얼굴이 밝았다.


#존버

전날 이제까지 한 번도 한 적 없는 기행을 펼쳤다고 아내 전영자 씨가 눈을 흘겼다. 밤새도록 작업실의 원고와 소품들을 정리하기는 이외수 평생 처음이라는 것. 잠시 한숨을 붙인 작가는 진 꽃분홍색의 스웨터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눈부시도록 고운 그를 초겨울 햇살이 비췄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야윈 몸. 이 앙상함만큼 아팠을 테고 그가 아픈 만큼 우리에겐 공감되고 위로받는 글들이 나왔을 터이다. 작가라는 팔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리며 순간 거실로 들어온 햇살이 비틀거렸다. 이런 상대의 혼란을 잡아준 건 역시 그였다.
“요즘은 아프니까 내가 나를 더 꾸미려고 해요. 일어나면 맨먼저 거울을 보지. 그래서 우리문하생들이 나를 ‘거울왕자’라 불러. 거울을 보고 ‘야 외수 너 참 잘 생겼다. 어쩜 이리도 보송보송하냐’ 소리 내 말해요. 주문을 외우는 거지. 힘내라고!”
위가 없는 사람은 포만감이 없다. 그래서 잠을 푹 자기 어렵지만 그는 이런 자신을 ‘내장결핍’이라 농을 했다. 젊은 시절 굶기를 밥 먹는 것보다 자주해서 이런 병에 걸렸다고 주변서 그를 타박하니 농으로 피해가는 것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공교롭게도 그의 절친이자 영원한 술친구 최돈선 시인이 이외수 작가의 상태를 보기 위해 들렀다. 등단작부터 지금까지 이외수의 육필 원고가 세상에 나오기 전 가장 먼저 검열하는 제1의 독자이다. 춘천교대 동기생이기도 한 그는 같이 자취하던 시절을 일러 ‘사방연속무늬 천장’의 시대로 명했다.
“둘이 자취방에 누워 서로 움직이지 마라 그랬어. 배 꺼진다고. 짧게는 삼일, 길게는 보름을 물만 마시고 누워있던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말도 하면 안돼. 말도 많이 하면 배가 고파. 그럼 둘이 똑바로 누워서는 천장의 사방연속무늬만 팽팽 돌아가도록 보면서 숨만 쉬고 있는 거야.”
한때 이외수 작가가 트위터에 올리고부터 유행이 됐던 말 ‘존버(존나 버텨, 일단 끝까지 버틴다 뜻의 은어)’는 그의 청춘기부터 따라다닌 생존법이었다.



#글밥

먼저 등단한 것은 최돈선이었다. 외수에겐 한없이 부러운 로망. 당시 이외수는 그림을 좋아하는 환쟁이였는데, 그의 필살기인 그림에는 물감, 즉 돈이 들어 감당이 안됐다. 돈 안들고 뭐 할 게 없나, 이 터질 것 같은 불안과 청춘의 열등감을 폭발시킬 곳이 없나, 긴머리의 외수는 짐승처럼 포효했다. 천지개벽할 외양에다 온갖 기행을 일삼는 이외수를 세상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걸인 같은 외양에 장난감 총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지 않나, 장발족 단속에도 경찰관에게 대들어서 머리 자르기를 거부하지 않나. 한번은 친구집에 들어와 자고 있는데, 그집 어머님이 ‘신발은 벗고 자야지’ 하며 발을 만지니, 세상에나 그 새까맣고 두꺼운 것이 신발이 아니고 때가 겹겹이 쌓인 맨발이더란다. 기겁한 친구 어머니,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그의 괴기스러운 기행에 얽힌 얘기는 몇날 며칠을 새도 다 하기 힘들 정도다. 작가는 당시의 기억을 잠시 더듬었다.
“머리를 기르지 마라면 기어이 길러서 금기에 저항해보는 거야. 아침에 눈뜨면 먹을 것이 없어 죽음이 목전이었지. 그래도 죽기에는 억울했어. 뭐라도 나를 증명해보이고 싶은데 너무 없으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내 나름의 발버둥을 친 게 아닐까 싶어.”
최돈선과 반듯이 누워 보름을 주구장창 굶던 어느 날, 공고문 하나를 봤다. 강원일보 신춘문예.
“저거 쓰면 밥이 나오냐?”
“밥이 나오지.”
종이와 연필만 있음 할 수 있겠다 싶어, 그날로 배를 뒤집어 엎드려 하룻밤에 써내려갔다. 그 밤의 역사를 시인 최돈선은 기억한다.
“보통 단편 한편을 쓰면 원고지 수백장을 버리잖아? 외수는 한 자도 안 틀리고 78매를 정확한 문체로 써내려갔어. 다급하니까 신기가 내린 건지 뭔지(웃음). 얘가 그렇게 기괴해도 맘이 엄청 여려. 남 아픈 거를 못 봐. 그러니 작가가 되는 거야.”
최 시인의 가방에 노란리본이 꽂혀있었다. 세월호. 이외수 작가는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석 달을 통곡을 하며 지냈다. 태어나서 울어야 할 것을 그때 다 울었다했다. 그러다 검은 똥이 나오고 쓰러졌는데, 병원에 실려가니 위암이더란다. 위 대부분을 절제하고, 다시 눈을 뜨니 보살핌을 받는 ‘아기’로 환생해 있더란 것.



#자뻑

“암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견디는 5단계가 있어요. 첫째는 난 아닐 것이라는 부정의 단계, 둘째는 왜 하필 나냐는 분노의 단계, 셋째는 우울, 넷째는 타협, 그 다음 마지막이 수용이에요. 보통 이 다섯 단계를 수개월에 걸쳐 방황하며 받아들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오만가지 치료법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저는 딱 30분 만에 이 다섯 단계를 정리했습니다. 아, 가나 보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힘들다는 출판계에서 고정독자 40만을 두고 40년 동안 45권의 책을 썼네. 열심히는 살았구나!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가족이었어요. 다음 생에 와서 내가 더 잘 해줘야지…”
그리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항암일기를 써내려갔다. 자신을 오롯이 세우는 마인드콘트롤 과정을 엮어 최근 ‘자뻑은 나의 힘/ 해냄刊’을 펴냈다. 오포세대니 하며 가족도 친구도 제 코가 석 자인 세상에 자기자신을 위한 유일한 응원군은 자신이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스스로 한없는 자신감을 갖는 ‘자뻑(스스로 자(自)와 정신을 못차린다는 의미의 속어인 뻑이 합성된 신조어, 잘난 체하며 자신을 최고라고 여기다는 뜻) 정신’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다음은 책의 한 부분.
 
<2차 항암에 들어갔을 때 당연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네 군데나 생겨난 혓바늘은 가라앉지 않은 채로 모든 신경을 자극했습니다. 전신에 쐐기풀이 전성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중략) 하지만 제가 겪었던 군대(속칭 11로 시작되는 논산 와리바시 군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의 눈물겨운 사랑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밑천으로, 아아, 쉬바, 아무리 힘들어도 날마다 존버하겠습니다.> - P 64~65 ‘군대에 비하면’
<구멍을 파는 데는 칼이 끌만 못하고, 쥐를 잡는 데는 천리가 고양이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나 각각 제 쓰임새가 따로 있는 법인데 무조건 이름 있고 값비싼 것만 좋아해서야 되겠습니까. 사람도 그렇습니다. 저마다의 존재이유와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는 법이지요. 하다못해 존재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재앙으로 인식되는 분들까지도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저런 인간은 되지 않겠다’라는 교훈을 안겨주는 순기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가능성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여, 절대로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오고 누구에게나 태양은 떠오릅니다.>
- P 70 ‘기죽지 마세요’
 
“요즘 금수저 흙수저 하면서 출생신분 갈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밑천이 뭐겠어요? 바로 자뻑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위암이라고 선고 받았을 때 남들은 이 춘천에서 치료받지 말고 서울의 큰 병원에 가보라 하더군요. 제가 수술한 병원의 과장님은 이 춘천서 서울까지 원정진료가는 분이세요. 그 과장님께 ‘수술이 잘 될 확률이 몇 프로입니까?’ 했더니 ‘내가 하면 백프로지’하면서 소위 자뻑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환자입장에서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분을 믿고, 나도 내가 좋아질 거라고 자꾸 마인드콘트롤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경과가 좋습니다. 아프면 나으면 되는 거고, 힘들면 해내면 되는 거고, 쓰러지면 일어서면 그만입니다. 그게 인생인 거지.”



#뚝

한때는 집안에 철창 감옥을 설치해 글을 쓸 만큼 자신에게 냉혹했던 그. 세상과의 불화를 글로 풀어내려는 광기는 그에게 하루 여덟 갑의 담배를 피게 했다. 덕분에 독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일갈하는 이외수를 보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얼마전 파리에서도 있었고 우리나라 광화문의 집회에서도 있었지만 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보면 참 세상이 모순되구나 싶어요. 평화를 빙자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종교의 본질이 사랑과 자비인데 그것 때문에 상대를 죽입니다. 인간의 모순이에요. 그런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함은, 인간이 만물을 품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난 그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약자가, 노동자가, 농민이 아픈 것을 보면 화가 납니다. 광화문 물대포를 보면서 아주 화가 많이 났어요. 도대체 야당의원들은 왜 안보이는 겁니까?
왜 작가한테 정치에 대해 묻는 겁니까. 올해는 제발 이 아픈 것들이 뚝! 그쳤으면 합니다. 제발, 아주 간절히요.”
약자편에 서는 그를 일러 사람들은 좌파라 한다. 그는 “난 여야를 가리진 않지만, 제일 돌직구를 날릴 때는 부정부패를 볼 때다. 아무래도 집권당이 부정부패를 많이 저지르니까 좌파로 보이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해하기 쉬운 종북몰이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나는 예술지상주의자에요. 북한은 예술이 없어요. 모든 것은 체제를 위한 도구일 뿐 예술이 아닌 거지. 유치원 아이든 아름다운 여자든 모두 도구화가 되어 있죠. 고모부라는 가까운 친척을 죽이는 그런 체제를 좋아할 리 없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체제유지에 이용하는 걸 제가 왜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 좌파라고 종북이네 어쩌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내 왼쪽 귀를 파면 비읍 아 니은(반), 오른쪽 귀를 파면 기역 오 이응(공)이 뚝뚝 떨어져. 어릴 적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늘 군부대 근처로 따라다니며 살았어요. 김신조가 넘어올 땐 논산군번 11로 시작하는 일명 와리바시 군번이었지. 초중고를 다 군사지역서 살았고, 지금도 군지역인 이 화천에 살잖아. 반공방첩이 아주 귀에 못이 박혀.(웃음)”



#희망

<태양이 하나밖에 없기는 하지만 부자들의 머리 위에만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대 머리 위에도 떠오른다. 허구헌 날을 가슴에 어둠만 간직하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그대는 비록 가난해도 굳세게 살아있다. 고로 희망을 간직할 자격이 있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다고 시간까지 거꾸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언젠가는 아침이 오고,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언젠가는 새봄이 온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존버.>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중

“역사를 보면 세상은 원래 부조리했어요. 신라 천년 동안에도 간신몰이배 등등 부정이 많았죠. 천년이 되어도 안바뀌는데, 지금 내가 어찌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수록 나를 먼저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취직 안된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고 청춘들은 일단 존버! 나이 들었다고 기죽지 말고 일단 자뻑! 그래야 나를 지킵니다.”
그의 자뻑론 뒤에는 어쩌면 모순된 세상에 대한 역설이 숨어있는지 모른다. 향수를 뿌리는 것이 주변의 악취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효과처럼, 향수를 들고 다니며 여기도 냄새, 저기도 냄새라고 코를 막는 퍼포먼스라도 하는 건 아닐까.
인터뷰가 끝날 무렵 모 젊은 작가가 책을 냈다며 초판을 바치러 화천집으로 들어왔다. 부인 전영자 씨가 저자에게 특별한 사인을 요청했다. 전, 영, 자, 석자로는 맘에 들지 않는다며, 미인대회 출신답게 앞에 수식어를 붙여달라 했다. ‘세계미인 전영자’ 마침내 완성된 싸인에 거실이 웃음으로 메워졌다. 항암치료 8차를 마친 남편에게 주는 그녀의 유쾌한 선물이다.
여윈 체구로 원고지 위 사투를 벌이는 이외수, 그가 존버하기를, 그래서 그토록 아끼는 힘없는 자들이 희망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그가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자뻑! 절망은 ‘뚝’이다.




 글 _ 서상희 · 사진 _ 박성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