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우주인 고산의 청계천 창업기
도전가의 정신으로 창업에 뛰어들다
고산을 만나러 가는 길, 청계천은 언제나 그렇듯 정신없고 왁자지껄했다. 끝도 보이지 않게 이어진 공구상 매장과 그 앞에 진열되어있는 수없이 많은 공구들. 공구 앞에 서서 가격을 흥정하는 손님들과 그 가격에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 돌려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 공구상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입학 후 중퇴, 재입학해 수학과 졸업, 동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 석사, 한국우주인배출사업 최종 선발… ‘엘리트’라는 단어에 부족함 없이 들어맞는 고산. 청계천을 따라 그가 창립한 회사가 있는 세운상가로 걸어가며, ‘과연 그는 이런 청계천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세운상가 5층에는 그가 2011년 창립한 스타트업 지원 비영리법인 ‘타이드인스티튜트(이하 타이드)’와 함께 타이드 산하 디지털 공공제작소 ‘팹랩서울’이 있다. 오래되고 낡아2 리모델링이 한창 진행중인 세운상가 내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팹랩서울의 내부는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는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였다. 그 공간에서 여러 명의 젊은 외국인들이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보였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우주인에서 창업가로 변신한 고산이 들어왔다.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에 짙은 다크서클. 피곤함이 느껴졌지만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바쁜 일정을 따라 움직이느라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 지 오래라는 그. 하지만 그럼에도 한 회사 대표로서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당당함을 마주하며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곳은 청계천과 마주한 세운상가입니다. 대표님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드는데요. 청계천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성한 곳이죠. 아침의 청계천을 보면서 저는 항상 그렇게 느껴요. 수 백 수 천 개의 점포들이 일제히 문을 열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는 모습이 참 대단하고 신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신성함에 발을 들여놓은지 올해로 5년째입니다. 지금, 어떤가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청계천은 정말 1~2분 거리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전부 구할 수 있거든요. 없는 게 있다면 다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마치 거대한 3D프린터 같은 곳이랄까요?
우주인에 선발되었을 때만 해도 창업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언제 창업을 결심한 건가요?
저도 제가 창업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러시아에서 귀국하고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충격을 받았죠. 미국의 젊은이들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이렇게나 활발하게 창업을 시도하고 있구나… 하고요. 당시 미국에서는 3D프린터 같은 제품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기술 트렌드를 가르치고 창업을 지원하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한국으로 돌아와 청년들의 창업을 돕는 타이드인스티튜트를 만든 거예요.
창업에 따르는 실패의 위험, 두렵지는 않았나요?
그런 두려움은 없어요. 맞아요 실패할지도 모르죠. 5년, 10년 뒤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다 알고 살아가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뭐가 닥칠지 모른다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죠. 회사 그만두지 않고 쭉 살다가 정년퇴임하고 이런 걸 바라는 사람들요. 그런 인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도전해야죠. 망해 봐야 얼마나 망하겠어요. 굶어 죽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원래 그렇게 도전을 좋아하세요?
제 좌우명이 ‘도전’이에요. 복싱부에 들어서 대회에 나가 동메달도 따고 산악부 해서 7500미터짜리 산도 올라 봤죠. 우주인도 그랬으니까 도전했던 거고요. 우주인 후보 시절에 미항공우주국(NASA)에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에 ‘달을 향해 쐬라. 설사 달을 비켜 가더라도 우주 어느 별에 도달할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더라고요. 감명받았어요. 늘 도전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창업도 도전이죠.
고산은 타이드만이 아닌, 3D프린터 제작과 플랫폼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에이팀벤처스’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3D프린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조방법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 이후, 전 세계는 3D프린터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조용하기만 하다. 그런 적막을 고산은 찢어버렸다.
왜 3D프린터 제작을 선택하셨나요? 그것 역시도 도전의 일환인가요?
도전이죠. 제가 타이드를 세우고 스타트업 기업을 위해서 타이드 산하에 팹랩서울도 조성했는데요, 팹랩서울에서 사용할 3D프린터를 구입하려고 보니까 전부 외국산이에요. 한국이 3D프린터처럼 성장이 유망한 비즈니스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도전했던 거죠.
세계적으로 광풍 불고 있는 3D프린터…
국내 3D프린터 제작의 포문을 열다
2015년 5월 에이팀벤처스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3D프린터 ‘크리에이터블D2’는 뛰어난 가격대 성능비로 이름난 제품이다. 가격이 비슷한 보급형 제품군보다 속도가 평균 1.5배 이상 빠르고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기술인 오토레벨링도 갖추고 있다. 오토레벨링은 프린터의 수평을 자동으로 맟춰 주는 기술이다.
3D프린팅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유행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3D프린터가 공기나 물처럼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 것이란 예상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월러스어소시에이츠는 2013년 기준 30.7억 달러였던 세계 3D프린터 시장이 2016년 70억 달러, 2020년에는 210억 달러 시장으로 커질 것이라 전망했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스며들 것이란 예상이다.
정말로 우리의 일상에 3D프린터가 일반화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거라 예상하시나요?
정확한 예상은 아무도 할 수 없겠죠. 하지만 확실한 건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올 거라는 거예요. 지금은 대량소비를 예상할 수 없다면 생산하지 못했던 물건들이 활발하게 생산될 겁니다. 세상이 굉장히 빨리 변화하고 전에 없던 새로운 물건들도 세상에 많아질 겁니다. 그 때문에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양식도 많이 바뀔 거예요. 쉽게 바로 옆에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요.
혹시 3D프린터가 공구 제작에도 사용될 수 있을까요?
이미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자동차회사 오펠에서는 자동차 조립에 사용되는 공구를 3D프린터로 만들고 있어요. 무게는 70%정도가 줄어들고 가격도 90%나 절감된다고 해요.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가정에서 쓰이는 공구들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철재 공구도 가능합니다. 아직 3D프린터로 만들지 않아도 접근성이 좋으니까 활발히 제작되진 않고 있지만요.
고산이 스타트업 기업의 지원을 위해 타이드 산하에 조성했다는 팹랩서울은, 간단히 표현하자면 ‘디지털 공공제작소’다. 제작하다(fabrication)의 접두사 팹(fab)과 연구소를 의미하는 랩(lab)의 합성어에 서울을 붙여 이름을 만든 이곳은 3D프린터와 레이저커터, CNC라우터 등의 장비를 갖추고 CAD 등의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의 손쉬운 디지털 제작을 돕는 장소다. 문을 연지 3년이 지난 지금, 이용객은 벌써 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팹랩서울을 찾는 건가요?
무척 다양해요. 창업자들부터 시작해서 이공계 대학생들, 예술가 분들도 많이 찾으세요. 그런 분들이 오셔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쉽게 구체화시키는 것이 팹랩서울의 역할이에요. 그런 점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디어를 일단 구체화시켜 봐야 성공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답이 나오는 거거든요.
청계천에서 공구상을 운영하는 분들도 팹랩서울을 이용할 수 있나요?
당연히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또 저는 3D프린터도 하나의 공구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릿속 상상의 세계를 세상 밖으로 해방시켜주는 공구요. 3D프린터를 들여놓고 판매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공구도 다음 세대로 가야 하는 거잖아요. 또 팹랩서울에는 새로운 세대의 뭔가를 만들어 보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거든요. 공구상에서 물론 B2B영업도 하시겠지만 B2C도 중요하니까 많이 오셔서 그런 사람들이 어떤 공구를 필요로 하는지도 경험해 보고 가시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3D프린터에 대한 교육도 받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워크샵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3D프린터 뿐만 아니라 레이저커터나 CNC라우터 같은 기구들의 사용법도 배우실 수 있습니다.
나는 행운의 벤처창업가…
기억해주지 않아도 좋아
창업 초기를 떠올려 본다면 그 때는 어땠나요?
정말 절박했어요. 이걸 만들었으니까 살려 내야 하는데, 지금이야 이렇게 넓게 하고 있지만 그 때는 고작 두세 명이서 시작했던 건데요. 처음 뭔가를 시작할 때는 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자고 일어나면 없어져 버렸을 것 같고…. 그런 상활이었기 때문에 아주 열심히 절박하게 일을 했죠. 여느 스타트업 회사와 다를 바 없이요.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다고 하셨지만 다른 사람들이 대표님을 규정하는 시선이 있을 텐데요?
저를 보는 남들의 시선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죽을 때까지 (탈락한) 우주인 타이틀이 달라붙을 텐데 굳이 부정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거든요. 그렇게 느끼시면 느끼시는 거죠. 따지고 보면 우주인에서 탈락한 게 인생의 기회비용이라고도 생각해요. 제가 만약 실패하지 않고 우주인으로 남았다면 이런 벤처사업도 하지 못했겠죠. 또 전(前) 우주인이라는 게 저한테는 얼마나 든든한 배경입니까. 저는 제가 행운의 벤처창업가라고 생각해요.
궁금합니다. 고산 대표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5년 뒤에 뭘 하고 있을지 몰라요. 그래서 지금은 일단 하고 있는 일들, 타이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됐고 3D프린터 만드는 에이팀벤처스를 글로벌한 회사로 키워 나가는 게 제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나 고산 이렇게 기억해 달라. 한다면?
기억 안 해 주셔도 좋습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태어나 사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저는 열심히 살 겁니다. 제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도 많으니까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 거예요. 그런 제 모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는다면 충분합니다.
고산 대표를 수식하는 문장들이 있다. ‘비운의 우주인’, ‘우주인 탈락자’… 그가 한국 첫 우주인으로 선발되자 국민들은 환호를 보냈고, 우주로 떠나기 직전 훈련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교체됐을 때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지금 고산은 두 회사의 대표로서 우뚝하게 나아가며 새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훗날 자신이 원하는 별에 닿을 그의 항해를 지켜보자.
글 _ 이대훈 · 사진 _ 박성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