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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에 많이 다쳤지만, 피노키오는 내 운명
공구에 많이 다쳤지만, 피노키오는 내 운명
국내유일 마리오네트 장인 김종구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나무인형... 피노키오 만드는 현대판 제페토 할아버지
46세에 러시아 유학... 노인과 장애인도 눈물 흘리며 그의 무대 감상
인형극에 빠져드는 어른들
마리오네트란 피노키오처럼 나무를 깎고 관절을 끈으로 엮어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인형이다. 관절마다 매달린 끈을 통해 생명을 부여 받는데, 달리기를 하거나 박수를 치기도 하고 눈썹을 추켜올리고 윙크를 하거나 손가락을 움직여 악기 연주를 하기도 한다. ‘인형극이 재밌어봤자지’했던 선입견과는 달리 보자마자 눈 한 번 돌리지 못하고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마리오네트극의 매력이다.
“마리오네트극은 종합 예술이에요.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내기까지 음악, 미술, 문학, 연기, 조명, 음향, 의류제작 등 다양한 분야가 모두 준비되어야 하죠. 인형의 역할은 제각기 달라요. 겉모습뿐만 아니라 동작도 같은 게 하나도 없죠. 인형에 연결된 줄이 많으면 좀 더 복잡한 연기를 할 수 있어요.”
마리오네티스트가 되려면 미세한 줄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무대경력이 최소 10년 이상이어야 한다. 그가 운영하는 ‘극단 보물’은 아내와 아들, 며느리까지 가족이 총출동한다. 온 가족이 동화 속 세계에 살고 있다. 최근작 ‘제페토 할아버지의 꿈’에선 김종구가 제페토역을 맡아 주인공이고, 국문과를 나온 며느리가 피노키오 이야기를 각색했다. 가족들이 함께 캐릭터 구상을 해내고 시나리오 초안을 썼다. 김 씨는 인형을, 아내는 인형 의상을 제작했다. 그 후 배경음악과 세트를 만들고 연기 연습을 했다.

마흔여섯, 마리오네트에 반해 러시아로
인형극을 처음 접하게 된 건 1995년 여름. 성경학교 교사로 일하던 그는 교사강습회 마지막 날 열린 인형극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 뒤로 저 혼자만 인형제작을 하게 해달라고 단장에게 얘기 했어요. 어릴 때부터 조각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 있었거든요. 단장이 웃으면서 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초등학생 때 버려진 나무토막을 깎아 모형비행기를 만들고, 고등학생 때는 해군 군함을 만들기도 했다. 그림과 조각을 좋아했던 그는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손인형, 테이블탑 인형을 만들어 공연을 시작하게 됐다.
“극단을 새로 창단한 후 1,500회 정도 무료 공연을 했어요. 주로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시설, 소년원 등을 많이 찾아 다녔죠.”
그리고 2년 뒤, 일본에서 열린 ‘이다국제연극제’. 이곳에서 그는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 마리오네트라는 인형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진 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한 번도 만든 적이 없거든요. 늘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있었는데 마리오네트의 아주 디테일한 연기, 완벽한 연기를 해내는 모습을 보니 오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어요. 바로 ‘이거구나’ 했죠.”
곧장 마리오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우지 않고 혼자서 제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모르니 제대로 안 되죠. 열심히 노력해 봐도 실패하고 또 실패했지. 그러다 지인을 통해 러시아에서 마리오네트 제작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유학을 가자 마음먹었지요.”
그러나 언어연수를 받거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3년간 아내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대학의 청강생이 되기로 결정했다. 아내와 고등학생 이었던 아들이 방학에 아르바이트로 공사장에서 번 돈으로 어렵게 마련해준 300만원을 들고 떠난 추운 땅 러시아. 당시 그의 나이 마흔 여섯이었다.
“배움이 간절했죠. 그런데 나이 많고 노어도 할 줄 모르는 동양인 학생이 들어가니까 수업 분위기가 흐려진 거예요. 교수님도 학생들도 절 보는 시선이 별로 안 좋았고요.”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새벽부터 경비원이 순찰하는 밤까지 작업실에 앉아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정적인 그의 모습은 교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인형 제작학과의 벤야민 비하일라비치 교수님은 가장 고마운 분이에요.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보다 관심 있게 가르쳐 주셨어요. 2년쯤 청강을 하다가 돈이 떨어져 학위도 못 받고 나오게 됐는데, 마지막 날 쫑파티까지 열어 주셨어요.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지만 김종구가 최고의 제자였다’고 칭찬해 주시면서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생각이 많이 나요. 제겐 특별한 분이죠.”

섬세한 제작과정 … 공구로 수차례 다쳤지만 포기 못해
인형은 완구용 ‘돌’과 공연용 ‘퍼펫’으로 나뉜다. 인형극에 사용되는 마리오네트는 얼굴 표정과 관절의 움직임까지 미리 파악하여 만들기 때문에 제작 방식이 매우 정교하다. 제작과정은 인형극의 스토리를 구상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극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인형 각각의 캐릭터를 짜내고 평면에 스케치를 한다. 대략적인 스케치가 완성되면 정확한 도면을 그리게 되는데, 이 때 어떤 관절을 얼마나 움직일 것인지 세밀하게 계산해 작업한다. 그 다음은 점토를 깎아 완성된 모습을 미리 제작해본 뒤, 실제 나무로 깎아 내는 과정이 이어진다.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다. 원하는 동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수정작업을 거쳐야 하고, 실패하는 경우에는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하나의 마리오네트를 만들어내는 데는 최소 2~3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 완성된 인형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연출작업을 더 거쳐야 한다.
그가 현재 작업하는 곳은 충청북도 충주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 현관 앞에 ‘목각인형이 사는 작은마을’이라는 팻말과 그 위에 앉은 작은 목각인형이 오는 이를 반긴다. 작업실 안에는 나무와 공구들이 가득하다. 마리오네트 제작에 활용되는 공구는 조각칼만 해도 수 십여 가지. 나무를 깎는 용도와 필요에 따라 하나씩 구매를 하면서 그 종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주로 많이 사용하는 공구는 드릴이에요. 드릴 종류만 해도 6개가 있죠. 핸드 그라인더는 4개고 탁상용 그라인더도 크기 별로, 전동, 수동도 따로 있고요. 톱날도 종류별로 가지고 있죠. 그 외에는 도란스(변압기), 슬라이닥스(전압조정기), 콤프레샤, 열선커터기도 있고… ”
공구는 주로 가까운 공구상이나 인터넷에서 구매한다. 좋은 일제 공구를 구입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 공구상까지 찾아가 구입한 적도 있다. 그는 요즘 전동공구를 많이 사용한다. 인형 제작 과정에 많은 공구가 쓰이는 만큼 다친 일도 많다.
“전동드릴로 작업하다가 책상에 뒀는데 잘못해서 떨어졌어요. 그대로 발뒤꿈치에 꽂히더라고. 놀라서 드릴을 보니 앞부분이 부러져 없어진 거예요. 발은 아픈데 찾아보니 아무데도 떨어지지 않았고. 혹시나 싶어 발을 만져보니까 피부를 뚫고 뼈에 박혀 있었어요. 전동공구는 편리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공구를 자주 사용하면서 톱이나 칼에 베이는 일도 일상처럼 겪었다. 왼쪽 엄지손가락이 두 번이나 잘리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일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걱정했지만 그에게 마리오네트는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숱하게 상처를 입었지만 한 번도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손가락 다섯 개가 다 잘려도 손목으로 나무를 받치고 조각할 거예요.”
공구 없이는 마리오네트를 만들어낼 수 없다. 나무 깎는 일은 어렵지만 수많은 공구 덕분에 더욱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가장 힘든 건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고통.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다.
“보통 사람들은 저에게 인형 제작 과정이 힘들고 지치지 않냐고 묻지만, 저는 체력적으로 힘든 건 못 느꼈어요. 작업 한 번 들어가면 새벽까지도 쉬지 않고 하거든요. 제작 구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제일 힘들어요. 창작의 고통이라고도 하죠. 예술가들만이 누리는 특권일지도 몰라요. 그 고통이 곧 예술가들이 느끼는 즐거움이기도 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그려온 꿈 … 행복해
2002년부터는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산골짜기에 터를 잡고 인형제작과 연극 준비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2004년, 춘천인형극제에 ‘목각인형콘서트’를 출품했다. 결과는 좋았다. 춘천인형극제의 공식 초정작에 선정되고 대학로 공연도 연일 매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매스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많을 때는 1년에 수십 회씩 공연을 해요. 재작년에는 두 달간 100회 정도 진행했고요. 지방투어도 많이 해요. 올 해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초청공연도 가끔씩 합니다.”
그는 매 순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원하는 삶을 그려왔다. 마리오네트 하나에 인생을 걸었고, 앞으로는 마리오네트 전용극장을 만들어 더 좋은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아카데미를 열어 마리오네트 제작과 연출을 가르치고도 싶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마리오네트를 선택한 걸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젊음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만 해도 성공한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면 그건 보너스지. 인생을 열정적으로 사는 것, 그게 행복한 삶이죠.”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떠오른다. 현대 물질문명의 사회. 어쩌면 우리는 동심의 세계에서 너무도 멀리 떠나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리오네트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꿈이 다시금 피어나는 것 같다. 그의 순수한 열정은 아직 어린 아이를 닮았고, 그래서인지 무대 위 피노키오는 더욱 반갑다.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숨겨둔 동심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