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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인 자녀와 고교에 장학금 지원







전동공구 제조사 (주)아임삭. 올해초 한국산업용재협회를 통해 공구상사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뜻을 밝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금액은 연간 3천만원.총 38명의 공구상사 자녀들이 올 한 해 혜택을 받았다. 이외에도 아임삭은 이미 4년과 2년여 전부터 청원고와 충북전산기계고에 각각 연 1천만원씩을 기부, 이제까지약 12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돌아가게 했다.
1989년 신우산업부품으로 출발한 아임삭은 충전식 배터리와 모터설계를 핵심기술로 해 전동공구 시장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는 김대원. 고집스럽게 창업의 길을 걸어 성공한 경우이다. 아임삭 제품의 메인컬러인 오렌지색처럼 톡 튀지만 따스하게 성장해가는 한 기업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공장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아임삭 공장은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공장이다. 자연채광이 가능한 전면 큰 창,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모던 디자인, 밤에 조명을 넣으면 은은하게 반사되도록 하는 특수소재 등 공구공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시각적 효과를 지녔다. 특히 온수로 바닥을 데우는 난방을 하고 있어 청정공기를 공장내에 유지하고 있다.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원래 무역업을 하던 김대원 대표가 유럽 독일 등서 집보다 아름다운 공장들을 보면서 ‘우리는 왜 저렇게 못하나’ 생각한 게 발단이 되었다. 이후 전동공구 제조를 하면서 꿈을 실현한 셈인데, ‘건축비가 1.5배나 들었다’며 웃어 보였다. ‘자는 시간을 빼면 집보다 공장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공장이 더 좋아야 한다!’ 아임삭의 꿈이고 김대원대표의 지론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아임삭 장학금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많지 않다. 이익이 생기면 일정량을 하는 것이다. 연간 5천만으로 잡고 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금액이다. 4년 전부터 청원고에 연간 1천만원, 2년전부터 충북기계전산고에 1천만원, 그렇게 해서 각각 20명씩, 총 40명의 학생들이 매년 혜택을 받는다. 산업공구협회에는 올해 처음으로 연간 3천만원의 장학금을 내게 됐다.”

이유를 물어도 되나?

“아마 경영을 하면서 다들 이런 고민을 하실 것이다. 왜 사업을 하나, 왜 돈을 버나하는 생각 말이다. 사실 회사가 어느 정도만 되면 내 가족 먹고 사는 것을 떠나서 그 이외의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는 이익을 창출하고 고용도 창출해야 한다. 고용을 창출하려면 이익을 창출해야하고 이 모든 것이 회사가 할 수선(善)이다. 결국 회사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하는데, 장학금을 내는 것이 그래도 가장 우리사회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끄럽다. 얼마 안되는데.”

기업에게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사업초기에 부도를 맞은 적이 있는데, 그때 돈은 일하면서 갚아 나가면 됐지만 일에 대한 것, 또 나 자신에 대한 고민들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내가 좀 엉뚱해서 자금이 없어 쩔쩔 매면서도 ‘돈을 왜 모으지?’ 오히려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 하나 편하게 살려면 회사 꾸리는 데 드는 이 많은 돈 필요 없다. 나만의 것은 의미가 없다. 나만의 것을 넘는 그 뭔가를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을 몇 년전부터 하고 있다.” 아임삭의 공구인 장학금의 선정기준은 다음과 같다. 부부합산 사업소득 연간 4,200만원 이하, 직원인 경우 3,000만원 이하이며 이중 동일 조건에서는 학업성적이 우수한 자에게 우선수혜가 주어진다. 대학생은 100만원, 고등학생은 50만원. 시행 첫해인 올해 모두 38명이 수혜대상이 됐다.
연세대 금속공학과 79학번 출신인 김대원 사장은 졸업 후 특이하게도 기업체 취직을 마다하고 용산전자상가에서 혼자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연대씩이나 나와 용산 세 평 상가에서 날밤을 새는 이상한 놈’, 이것이 아임삭의 시작이었다.




용산전자상가 세 평서 출발…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쟁이 청년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전자부품쪽 무역을 했다. 아, 그전에 어디 취직을 했는데 만날 번역일만 시키더라. 이거 안되겠다! 때려치우고 방랑생활을 한 1~2년 했다. 천성이 남 밑에 있는 게 안맞나 보더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게 나한테는 죽어도 안맞다 생각했고, 그래서 어머니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다. 당시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유행이었는데, ‘무역실무’ 달랑 한권 읽고 무역업을 시작했다. 용산상가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요즘에는 이런 성격이 뭐 도전적이다, 창조적이다 할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살짝 이상한 놈이었다.(웃음)”

가장 힘들었던 적은?

“부도를 맞은 적이 있었다. 전자부품 납품을 하다 상대 업체가 문을 닫았다. 지금으로 치면 약 10억 정도 되는 돈인데, 서른두 살 내겐 평생 갚아도 못 갚을 것처럼 커보였다. 일주일을 못 잤다. 폐인이 되나 했는데, 원래가 엄청 고집이 세고 마음을 먹으면 하고 마는 성격이라 맨주먹만 쥐고 일어섰다. 당시 결혼한 상태였지만 한 4년간 집에 돈을 못 갖다 줬다.”

공구, 특히 전동공구 분야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부도에서 재기하려고 아침6시에 출근해 저녁 11시반까지 일을 했다. 직원 둘을 데리고 일에 미쳐 지냈다. 그러다 전자부품은 부침이 심하다고 생각해 공구로 눈을 돌리게 됐다. 당시 계양과 LS산전 등에 전동공구 부품을 공급하는 일을 했다. 전동공구에 들어가는 부품과 매카니즘을 훤히 알 수 있었고 기술개발에도 참여했다. 본격적인 제조는 1997년. 하필 IMF 터지기 직전이었다. 힘든 것도 팔자려니 했다.”




외국 브랜드 왜 한국시장서 비싸나… 고품질 적정 가격대의 시장성으로 승부

무역을 하다 왜 제조로 돌아섰나?

“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이 발달하니까 무역이 이제부터는 특별한 분야가 아니겠다 싶었다. 어떤 제품이 필요하다면 외국과 얼마든지 인터넷을 통해 연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직접 만들자! 이렇게 해서 제조를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제조가 이렇게 어려울지는 몰랐다. 한번은 잘못 만들어 전체를 리콜한 적이 있었다. 2000년경이었는데 약 3억원 정도를 리콜시켰다. 회로에 문제가 있었는데, 돈보다 내가 왜 실수를 했나 싶어 많이 자책했다. 품질을 강화해야겠다, 정말 답은 품질 뿐이구나 그때 많이 공부했다.”

아임삭이 가진 핵심기술은?

“처음에는 모방도 하고 그러면서 창조도 한다. 아임삭의 핵심은 모터설계 기술이다. 전동공구에 있어 모터설계는 자동차로 치면 엔진 기술인데, 모터의 힘을 밖으로 구동해서 전달해주는 기어박스가 있어야 하고, 이 기어박스는 자동차로 치면 트렌스미션이 된다. 이걸 다시 콘트롤하는 스위치가 있어야 하는데, 스위치가 모터를 어떻게 컨트롤 하는가가 중요하다. 이 한손에 쥐어지는 전동공구에 자동차 기술이 다 집약돼 있다. 우리회사가 작지만 현대자동차와 같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충전공구 배터리 기술이 전기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른 전동공구제품 분석도 많이 했겠다.

“기술분석도 하고 가격대 등 시장분석도 한다. M사는 목조주택이 많은 일본에서 성장해서인지 그 영향을 받아 목공구가 유명하고, B사는 시장에 맞게 제품을 내놓는 상업화의 천재다. H사는 과품질로 나와 오히려 시장적응이 어려운 것 같다. 물론내 방식의 분석이다.
아임삭의 연간 실제 생산량은 27만대. 가능 생산량은 50만대이다. 국내전동공구 시장을 약 3,800억 시장으로 보면 이중 1,100억이 충전공구 시장이다. 기존에 전기코드를 꽂아 쓰는 전동공구 판매는 현재 급격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고, 간편하고 가벼운 충전공구 판매가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 아임삭의 주력상품 역시 바로 이 충전식전동공구이다. 이 충전공구 시장에서 아임삭은 외국 B사에 이어 2위를 점하고 있다. 90년 역사의 명가를 따라 잡으려는 제조경력 17년차의 약진세가 놀랍다. 기존의 전동공구는 손이 크고 근력이 좋은 서양인에 맞춰 디자인 됐지만 아임삭은 한국인의 손에 맞게 가볍고 그립감이 버겁지 않도록 설계됐다. 여기에 힘은 더 좋아지되 기존제품보다 30% 이상 가벼워진 충전공구를, 그것도 외국 유명브랜드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하면서 대중성과 품질이라는 기막힌 접점을 잡아채고 있다. 따라서 국내 충전공구 시장에 새판을 짰다는 평가마저 받고 있다.





경영이란 사람을 아는 것…즐겁고 유익한 회사 만들고파



장학금을 주는 아이들과는 연락하고 지내나?


“처음에는 직접 만나기도 했고 편지가 오기도 했다. 그럼 내가 또 직접 답장을 쓰곤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학교에서 알아서 집행을 하고, 난 나대로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하지 않나.”

경영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을 아는 게 경영이라 생각한다. 나는 사실 경영학을 공부할 과목이라기보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람을 운용하고, 어떻게 같이 일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건 책을 들고 공부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니 사람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경영의 답도 다 다르다는 데 그 묘미가 있다. 모두 상식적이면 된다. 우리회사가 추구하는 선(善)은 즐겁고 유익했으면 한다.”

앞으로의 아임삭 계획은?

“충전공구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용 공구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의료용 드릴과 쏘, 캐스터커터 등인데, 내년도 뒤셀도르프 의료기기 박람회에 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로 정형외과와 성형외과에 쓰이는 것이라 안전해야 하고 소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생산환경도 깨끗해야 한다. 현재 이 의료용 전동공구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만들어 해외시장을 공약할 생각이다. 미국의 경우 일년에 관절 수술환자가 300만명,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앞으로 고관절 수술도 많이 할 것이다. 국내시장은 작으니 99%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