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위해 현장에서 수없이 부딪혔다
조선선재(주) 장원영 대표이사
부산 초량동의 철못 제조사, 1949년 조선선재의 시작이었다. 1963년 용접봉 제조기술이 선재류 생산기술과 유사하다는 잇점을 배경으로 피복용접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의 산업발전과 더불어 용접봉 최고제조사로 성장했다.
용접이란 금속재료를 가열, 용융해 접합시키는 것이다. 용접의 좋고 나쁨은 용접 대상이 되는 금속재료와 작업조건, 그리고 용접재료에 달려있어 어떤 용접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용접의 성능과 제품품질이 차이난다. 대표적인 용접재인 용접봉 제조에서 국내 빅3 중 하나로 꼽히는 조선선재를 찾았다. 서울 사옥은 역삼동에 있고, 생산공장은 포항과 울산 등에 있다. 65년 역사를 가진 이 회사의 경영은 창업주의 증손자인 장원영 대표가 지난 2005년부터 맡고 있다.
미국 보스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꽤 이른 나이에 경영권을 이었다. ‘너무 젊다’ ‘현장을 모른다’ 등의 주변 우려를 불식시키며 취임 8년 만에 매출을 세 배 가까이 성장시켰다. 기존 국내 시장에 없던 UB(Un Baked) 타입 제품을 개발해 삼성중공업 납품을 성사시켰는데, 이 제품은 퓸(가스)이 적게 나와 인체에 끼치는 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또한제조관리(MES) 및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등을 도입해 기업 내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확립했다.
장원영 대표에게 8년 전 대표이사로 취임하던 그날은 철못 하나에서 시작하던 창업 시기 초심보다 오히려 더 절박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내일이라도 당장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는 살벌한 경제상황 때문이었다. 장원영 조선선재 대표(39)를 만났다. 기업 위기극복의 시기와 경영권 이임이 겹치면서 혹독한 터널을 갓 지나왔다고 스스로를 평했다.
기사와 비서 없는 사장님
서울사옥이 위치한 강남엔 수많은 스타벅스들이 혼재하고 있다. 이날의 인터뷰에서도 커피와 홍차캔이 테이블에 수북이 올라왔고, 장원영 대표는 이 캔들을 연이어 비워내며 때론 단답으로, 때론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말을 이어갔다. 스타벅스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처럼 약간의 외로움에 CEO 특유의 중압감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미리 말하건대 사장들에게 없을 수 없는 비서와 기사가 그에게는 없다. 직접 스케줄을 챙기는 것이 그의 업무스타일. 직진과 솔직함이 지나쳐 때론 오해를 사지만 별
로 개의치는 않는다. 그만큼 실속과 현장 중심이다.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용접봉에 대해서는 새로 공부를 하셨겠습니다.
“그렇죠. 처음에 제가 취임했을 때는 모르는 것이 꽤 많았습니다. 용접봉은 공학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인데 저는 학교 때 경제학을 전공했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제조업은 무엇보다 생산현장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경영을 하려면 공장과 제조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서 결단을 내리자마자 공장근처에 숙소를 얻어 취식하며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한 2년 정도 해보니 이제는 알 것 같더라고요. 그때 느낀 것이 학문적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제적 경험도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비즈니스 역시 실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전해 보고 시행착오도 겪어봐야 진정한 자산과 지식이 되는 것 같아요.”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고 들었습니다.
“취임 당시 회사 상황이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주문을 해서 뭘 요구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죠. 조직이든 회사든 오래되면 관성이 생겨나는데, 그걸 가장 경계했던 것 같아요. 공장관리를 현대적으로 해 21세기에 맞는 경쟁력을 갖춰보고 싶은 욕심으로 다양한 주문을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변화의식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었고, 또 용접 기술자며 각 분야별 전문가를 찾아다녔는데 국내엔 확실한 전문가가 별로 없어 애를 먹었어요. 하지만 그저 피상적으로 용접봉에 대해
알아보는 정도로는 회사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울산 온산공장의 경우는 설비업체들을 직접 만나보고 생산설비를 새로 설치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정말 닥치는 대로 많이 만나고 묻고 다녔던 같아요. 다행히 운도 좋았고,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와 혁신만이 기업의 살 길
취임하자마자 생산라인부터 건드리는 건 무리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당시 불량률이 매우 높았고, 불량품이 나오니 거래처 관리에 문제가 생겼고 생산성도 떨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전문가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떻게 만드는 건지 모르고 그냥 스위치만 누르고 있다고 나는 봤어요. 조직내부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고, 전체적으로 공부를 게을리 한 부분도 있었죠.
그래서 완전히 바꾸자고 했고, 변화를 위해 저부터 발로 뛰었습니다. 고객, 협력업체, 대학교수 등 회사가 바뀔 수만 있다면 만나야 할 사람은 누구든 만나서 배웠던 것 같습니다.”
산업현장 곳곳에서 용접재료인 용접봉의 수요는 엄청나다. 조선선재가 만드는 피복아크용접봉은 국내 시장의 약 60~70%를 점하고 있으며, 최근엔 용접 시 끊김이 적고 사용이 편리한 플럭스코어드와이어 등으로 변모 발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MAG용접용 솔리드 와이어, MIG TIG 용접용 솔리드 와이어, 서브머지드 아크용접재료 등 총 5개 군에서 연간 13만 8천 톤의 제품이 나온다. 용접봉 종합제조사로는 국내에 조선선재, 현대종합금속, 고려용접봉 등이 있고 그 뒤로 단품 중심인 세아에삽 등이 있다. 대부분이 50~60년대에 일본과 유럽으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거나 기술투자를 받았다. 조선선재 역시 일본 고베사의 기술을 들여와 후일 독자적 생산체계를 갖추었다. 용접봉 제조를 위해서는 금속공학을 기반으로 한 야금학, 화학, 기계공학, 산업공학 등이 필요하며 현재 국내 용접 분야에서 전문적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선선재의 과거 어떤 점을 바꿔야 한다고 보셨습니까?
“거의 모두 다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정확할 것 같네요. 작게는 근로자들의 직장관부터 생각하는 방식 하나하나까지. 이 부분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과거에는 생산자 중심의 패턴이었지만 이제는 고객 중심, 수요중심으로 변화했잖아요.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되고, 국내를 넘어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되어야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거죠. 조선선재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계승할 장점들도 분명 있지만 한 단계 더 큰 도약하기 위해서는 바꿔야할 점들도 많았어요. 수기로 장부를 정리하고 캐비넷에 넣어두는 기업과 전산시스템으로 관리하는 기업이 있다면 어느 기업이 더 글로벌하게 변화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환경 변화에 맞춰서 힘들더라도 쇄신할 건 해야죠.”
불량률을 잡아라! …
과학적 시스템으로 체계화
장원영 대표가 취임 이후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처음 시작한 일은 생산현장의 청결, 정리 정돈 생활화였다. 작업자의 근로환경부터 잡아야만 불량률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전사적 3정 5S운동을 전개해 과거보다 편하고 쾌적한 제조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더불어 공정기술 전담팀을 신설하여 제조 공정상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량 요소들을 찾아내고, 개선활동을 전개했다. 개선된 요소들은 반드시 매뉴얼화 하여 생산직 근로자의 작업표준, 동작표준 등에 명시, 표준화, 규칙화하여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개선제안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등 근로자들의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불량률 감소에 큰 몫을 차지했다. 2005년에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인 ERP, 2009년에 생산이력 관리와 제조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인 MES 등을 구현했다. 보수적인 제조사 성향 탓인지 일부 직원들은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하지만 장 대표가 판단하건대 수기로 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프로세스 구현이 어려워 이대로 가다간 변화하는 기업환경에 적응키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MES를 구현한 후 제품검사 시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추적할 수 있어 근원부터 고칠 수 있었다. ERP도입으로 예결산 처리도 수월해졌고 회사 내부 업무 속도도 빨라졌다. 확실히 장대표의 생각처럼 저성장 시대에는 조직내부를 촘촘히 체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3년전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3개사로 분할했습니다. CS 홀딩스, 조선선재온산, 그리고 조선선재로 나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인 피복봉은 포항공장에서 나오고 최신 제품인 플럭스코어드와이어(FCW)는 온산(울산)에서 생산되는데 이 부분을 섞어서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리해서 차별화, 체계화해서 성과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전산을 또 손봐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내년에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준비 할 예정입니다
제품 개발 부분을 보자면 2007년엔 NEP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인증하는 뉴 엑셀런트 프로덕트(New Excellent Product) 인증인데, 국내 용접재료 분야에서 최초로 획득했습니다. 고능률 용접재료인 FCW(Flux CoredWire)제품군 중 UB(Un Baked) 타입의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인데, 기존 업계에서 생산하는 B(Baked) 타입의 제품보다 인체에 해로운 퓸(fume)발생과 떨림이 적어서 실내에서 용접작업을 할 때는 더욱 적합합니다. 특히 2Y, 3Y 그레이드를 통합한 국내 최초의 제품이란 점이 NEP인증에 결정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삼성중공업 납품이 성사됐고, 삼성중공업도 그 부분에서 수입산을 썼던 것을 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어 원가 절감 효과를 봤습니다. UB타입의 제품은 제조과정에서 열처리 공정을 생략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제조기술과 공정 노하우가 요구됩니다. 저희가 수년간 지속적인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죠. 특히 건강과 안전 항목이 까다롭게 요구되는 유럽과 일본등 해외 선진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주력제품으로 부상하고 있어요. 이 제품은 원가가 기존 제품 대비 조금 높기 때문에 한국시장에서 대중적이진 못하고 선진국에 비해 수요도 적지만 앞으로 고품질을 요구하는 시장추세에 맞을 것으로 봅니다.”
조선선재는 이 외에도 원자력 공사용 용접재료 개발, 조선 해양용 용접재료 개발, 국산화연구 개발 등에 연구성과를 거둬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 등의 효과를 낳았다. 삼성중공업은 물론 두산중공업 등과도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실시해 용접재료 개선과 용접성능 향상에 기여했다.

고품질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 가겠다
용접봉 시장에서 앞으로 고품질 고가 제품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시장성은 어떻습니까?
“고가 특수제품의 개발이 향후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 용접재료 산업의 제조기술력은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정말 최고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군에서는 아직도 값비싼 외국산 용접재료가 쓰이고 있어요. 용접재료가 많이 쓰이는 조선업을 보면 과거에는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화물선 위주로 선박을 건조했지만, 현재는 고부가 선박인 LNG선, 해양시추선, 극지 및 심해 해양플랜트 중심으로 수주패턴이 변화하고 있어요. 이러한 산업의 변화에 따라 비철, 특수합금 용접재료의 수요도 과거보다 늘어나고 있어서 이 부분 고급제품에 대해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베트남 법인 설립은 어떤 이유에서였습니까?
“베트남 법인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회사가 내수시장 경쟁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초기지라고 이해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현재 조선선재 매출 중 30%가 수출비중인데 앞으로 이 부분을 늘일 계획입니다.”

답은 내부에! 폼은 거둬라
앞으로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까?
“외부적으로는 제품과 서비스가 좋고 윤리경영 투명경영이 실현되는 회사가 됐으면 하고요, 내부적으로는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 분위기, 그러면서도 열정적이고 인간미가있는 회사로 지속가능하게 성장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 좀 그런가요? 재벌가문인데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질문은 너무 올드한가요?
“그렇죠. 기업은 그 자체로 생존본능이 있고, 경영자는 기업본능에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제 성격이 남의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 한번 마음먹으면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사실 조선선재는 동국제강과 1980년대 계열분리가 완료돼 지분관계도 없습니다. 재벌가 운운하는 건 아버지 계실 때 이야기지 지금 그런 생각을 하면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한 거죠. CEO는 멋있는 척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장 대표는 현재 용접봉 시장 문제를 저가의 중국산 위협과 국내경제 상황으로 오는 원가 상승과 부가가치 하락이라 짚었다. 그래서 서점에 꽂힌 수많은 경영서적들이 조선선재의 앞날에 대해 혜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며 회사가 당면한 과제는 회사 내부에서 분석해 풀어가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라 봤다. 장 대표는 “시장은 열려있기 때문에 물건을 팔기는 쉽다. 다만 내부적으로 품질을 유지하고 개선해 원가를 낮추는 등의 숙제를 풀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비판적이고 장기적으로는 긍정하는 시각을 보였다. 장원영 대표 개인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별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실제로 만나본 장 대표는 여유로운 CEO보다는 위기감과 책임감을 가진 CEO 역할을 자임한 한편 문제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도 겸비한 듯 했다. 단문의 빠른 속도 화법으로 답하면서도 다 옮겨쓰지 못할 솔직함도 보였다. 이 부분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조선선재는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더 변화 속도를 낼 것이고 그 노력들이 고베 링컨 등 세계의 유명 용접 브랜드들 속에서 한국기업 조선선재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그의 취미이자 특기라면 국가대표급 수준의 스키 실력.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강원도로 차를 몰아 훌쩍 활강을 해본다. 젊고 변화하는 용접봉 최강 기업 조선선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