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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보다 사람이 먼저, 행복한 기업을 꿈꾼다



사업보다 사람이 먼저, 행복한 기업을 꿈꾼다

(주)동신툴피아 김동연 대표이사




동신툴피아는 1968년 동화기공사로 시작돼 1984년 독자경영, 1990년 법인전환, 2007년 B2B 사이트를 오픈하는 등 한국 공구유통의 현대적 변화를 한 몸에 보여주고 있다. 대표인 김동연 사장은 열일곱의 나이로 전남나주서 홀로 상경해, 공구에서만은 최고가 되자는 생각으로 오늘의 사업체를 이루었다.
한국산업용재협회 17,18대 회장을 역임함 김 대표는 청계천은 물론 공구인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을 한다. 늘 조용하게 사업을 성장시키면서도 업계에 어려움이 생기면 항시 자기 일처럼 뛰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대 사업을 한 1세대와 1980년 이후 현대적 개방화 속에서 출발한 2세대 사이 1.5세대이다. 따라서 공구유통의 변화를 몸소 겪어 어떻게 하면 흥하는지, 어떻게 하면 자기세대만이라도 잘 살 수 있는지, 혹은 지금은 어렵더라도 다음 세대로 물려줄 방법은 무엇인지 한 눈에 꿰는 듯 했다. 아는 만큼 고민도 많을 것이다. 김동연 대표이사를 만났다



일본과 미국 기업의 차이


김동연 대표는 인터뷰가 있는 날 조찬모임에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성장비결을 분석한 강의를 들었다 했다. 그 성공요인이란 것이 이건희라는 한 인물의 결단력과 능력에도 있지만 일본식과 미국식 성장방식을 조화롭게 섞어 간 데 있다고 한다.
“일본은 제조가 강하고 보수적입니다. 반면 미국은 핵심기술을 쥐고 있는 데다 명석한 두뇌가 많고 스피드하게 움직입니다. 이 둘의 장점을 조화롭게 섞어 유일하게 성공한 기업이 삼성이라는 겁니다. 정말 동감해요. 한때 저도 일본기업을 돌아보며 우리 경제도 일본처럼 될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일본기업들을 벤치마킹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우리경제의 모습은 일본과 많이 다릅니다. 이 부분 제가 착각했던 것 같아요. 일본과 우리는 문화 자체가 달라요. 일본은 제조와 유통이 분리되고 유통 역시 틀이 짜여져 외부에서 전혀 못 들어가게 돼 있어요. 상당히 폐쇄적이라서 변화가 어렵죠. 하지만 우리는 ‘저거다’ 싶으면 바로 변화하잖아요.”
일본으로 기업경영을 배우러 다닌 얘기를 들려줬다. 1984년경부터 일본으로 가서 공장과 공구상 등지를 돌아봤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 할 수 있나 하는 코앞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떻게 하면 내가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는 회사가 되나’하는 물음으로 바뀌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모를 늘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고민과 변화가 한국 공구유통 현장의 변화와 다름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돌려 사업을 처음 시작하던 때부터 들어봤다.



스무살, 청계천의 추억


1968년 동신툴피아가 시작됐습니다.
“그때는 시작이라기보다 제가 작은 기계공장에서 일하다가 형님들과 함께 청계천에 네 평 되는 작은 가게를 내면서였습니다. 이후에 형님 두 분이 서로 떨어지게 됐는데 김동화 형님이 이끄는 동화기공사, 그리고 입정동에 있는 동신상사 이렇게 둘로 나뉘어지게 됐어요. 동화기공사는 장사동이라고 알지요? 거기에서 밴드쏘만 취급했고, 동신은 이것저것 다 했죠. 그러다 1984년 제가 동신을 다 맡게 됐습니다.”

공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제가 1950년 전쟁둥이입니다. 태어나서 20일만에 전쟁이 났지요. 그때는 다들 어려웠잖아요. 밥만 줘도 일할 때라 열일곱에 전남나주서 정말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 공장으로 일하러 왔습니다. 한 3년간 기계공으로 일했어요. 그때 기계부품을 접하면서 절삭공구를 많이 알게 됐어요. 엔지니어가 되려고 했었는데 그 형님들이 사업을 시작하고 오라고 해서 장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절삭전문 기업이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거네요.
“아무래도 절삭은 다른 공구분야보다 좀 더 기술적으로 잘 알아야 하니까요. 저는 예전부터 뭘 하나 하더라도 ‘좀 더 새롭게, 다르게 해보자’ 했던 것 같아요.”




최고의 절삭유통업체가 되자!

70년대 청계천 모습을 기억하시겠습니다.
“청계천은 예명이고, 장사동 입정동이 지명이죠. 그때는 지금의 센트럴호텔 로타리를 중심으로 공구상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처음에는 공구라기보다 고물상이 많았죠. 신품이 아니라 중고품이 많았으니까요. 물자가 부족해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물건만 있으면 팔 수 있었어요. 80년대에 인플레가심할 때는 장사가 참 잘 됐지요. 물건 사놓으면 내일이면 값이 올라요. 그러니 안남을 수가 없는 건데, 어떨 땐 계속 팔아도 원래 샀던 그 돈이 계속 남아 있던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고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그때 그렇게 이윤을 남기던 기업들이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마 시대에 따른 변화를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하면 지금의 우리 공구유통상들도 시대변화라는 것을 잘 감지하고 공부해야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예요. 경영을 해야지 장사를 하면 안 됩니다. 이익에 만족하면 안되고, 목표를 세워야 해요.”

김 대표님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절삭 유통업체가 되는 것! 기계제조사에 근무할 때부터 이 절삭 쪽에 내가 최고가 되자 생각했어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신 건지 듣고 싶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처음엔 일본엘 자주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빗나간 것도 있지만, 흘러가는 대로 그때그때 돈 되는 것에 만족하거나, 내 머릿속에 있는 것만 반영하면 당대로만 끝나는 회사가 되겠구나 싶었어요. 크게 또 멀리 봐야하고, 회사를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야겠다 싶어 전산 등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했어요. 특히, 다음 세대로 넘어가려면 무형의 자산이 필요한데, 저희 동신 같은 경우는 ‘절삭하면 동신’이런 인식 아니겠습니까? 이게 하루이틀에 생기는 게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무수한 노력이 있었죠.”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능력

중간에 많이 힘들던 때는 없었습니까?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 업계에 불경기 호경기가 번갈아 오는
데, 그만큼 기회도 오지만 손해 볼 일도 생기더란 말입니다. 버려야 할 때는 버릴 줄 알아야 해요. 그게 훗날 살아남을 수 있는 근본이 되더라고요. 절삭공구를 하다보니까 1985년쯤에 세계최초로 텅스텐을 만든 독일의 비디아(Widia)라는 회사의 대리점을 하게 됐어요. 처음 시작할 때 내 목표가 절삭공구의 전문화였는데, 너무 빨리 목표가 눈앞에 온 거죠. 그런데 내 규모와 맞지 않고 계속 돈만 들어가고 나오는 게 없었어요. 계
속 이러다가는 가지고 있던 중심마저 흔들리겠더라고. 그래서 과감히, 아프지만 포기했어요. 잘했다 싶어요.”

충격이나 여파가 컸겠습니다.

“그렇죠. 메인이 흔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위기가 기회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살아날 궁리가 생겼어요. 그때 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지방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아는 친구한테 이런 말을 했었어요. 지방에 가니까 금덩어리가 있더라! 당시만 해도 정보가 오픈 되던 시기가 아니니까 서울에선 이미 팔려 없는 것들이 지방에는 아직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걸 다시 서울로 올려 팔고, 그걸 한 6년 하니까 우리회사가 전국 상권 기업으로 클 수 있었어요. 그때 지방 현장을 돌며 만난 인맥들이 지금까지도 단단하죠. 사람이 얼굴보고 서로 알게 됐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겁니까. 고객에게 오랫동안 신뢰를 주겠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도 또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겁니다.”

성장과정에서 이런 전략이 가장 주효했다 싶은 점은 어떤 것입니까?
“전산을 꽤 빨리 도입했어요. 18년 전부터 시작해 토탈 전산
화를 이룬 게 한 13년 됐네요. 그러면서 종합카탈로그가 나왔
고요. 그리고 위기가 있을 때마다 웅크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투자했어요. 이게 결국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경기라도 남들 열 발 움직일 때 우리는 스무 발 움직이는 식으로 했죠.”

그간 힘들 때마다 새기셨던 특별한 좌우명이 있습니까?
“특별한 건 아니고 다만 세상엔 공짜는 없다, 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원래 제 성격이 힘들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엔 모두가 가난했고,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요.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변화하자, 그리고 행복하자

동산툴피아는 현재 직원수 240여명에 작년 연매출 1천억 규모이다. 수공구 전동공구 작업공구 공작공구 등 10만여 품목을 취급하고 있으며, 이중 전문품목인 절삭이 전체 취급품목의 60%를 차지한다. 절삭제조사에서 동신툴피아에 보이는 신뢰는 상당하다. 신상품부터 세계 제조흐름의 정보까지 동신툴피아와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에 대해 김동연 대표에게 그런 신뢰관계의 비결이 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오히려 쉬웠다.
“사람이 사업하려고 사는 게 아니고 살려고 사업하는 거잖습니까? 살아오면서 제 철학이 남한테 욕먹지 말자에요. 특별한 재주가 없으니 무난하게 처신하고, 모나게 굴지말자 생각해요.”
흔한 말로 욕 좀 먹었으면 지금보다 더 회사가 성장하지 않았겠나, 하고 농담반 진담반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잠깐이지 않겠어요? 그런 식으로 얻는 이익은 작은 것이고 멀리 보면 더 손해에요. 내 마음만 불편할 뿐이고. 사람이 살면서 사업을 남기는 게 아니고 사람들 머릿속에 김동연은 어떤 사람이다 라고 남기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 사업도 오래간다 생각해요. 우리와 거래하는 고객이 우리의 어떤 부분을 보고 거래하는가 보면, 인간성과 신뢰 이런 게 아닌가 해요.”

예순셋 그에게 스무 살의 사랑에 대해 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사람을 중히 여기는 그라면 사랑 역시 그렇게 소중히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주서 올라와 공장에서 밥해먹고 빨래하던 시절을 겨우 지날 무렵이었어요.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친구가 서대문 근방에서 일하던 아가씨를 소개해줬어요. 그때 제 나이 스물넷. 처음으로 연애를 했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웃음) - 이름을 기억나느냐 묻자- 아가씨 이름요? 박이분! 지금 제 집사람입니다.”


이후 살면서 내내 소중히 대해주셨는지요?
“맘과 달리 그러지 못했어요. 우리 때는 그저 일 열심히 하는 게 남편노릇 잘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집사람이 많이 섭섭했을 겁니다. 중간에 사업상 어려움이 오면 집사람보고만 참으라고 했으니까요. 어려서부터 타향살이를 해서 가정을 가꾸는 일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주말엔 집에서 보내려고 노력하고요, (웃음) 작년부터 주반운배, 제가 지은 말인데 술은 반으로 줄이고 운동은 배로 늘리자 하면서 같이 시간도 보내고 가정에도 더 신경 쓰려 합니다.”

 
아드님 두 분이 지금 경영수업을 받고 있지요? 상당히 열성적으로 업계를 배우고 있다는 평입니다.
“어떻게 회사를 만들어달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고요, 가끔씩 술 한 잔이나 하며 격려합니다. 알아서 해야죠.”


전문화와 성장,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현재 동신툴피아에 대해 고민하시는 게 있다면요?
“전문화로 가야하나 규모를 키워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최근까지 업계 상황을 보면 둘 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규모가 커져야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 같고, 또 절삭전문이라는 신뢰도도 이어가야 하니까요. PB브랜드 경우 크레텍책임은 자신의 PB브랜드를 가지고 있는데, 저희는 절삭이라서 PB브랜드를 만들기가 어려워요. 갈수록 기계 고급화가 이뤄지니 거기에 맞는 절삭공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여간한 기술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상보는 수평기라는 국내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니까 제조와 유통을 같이 가져갈 수 있죠. 참 잘한 거지요. 따라서 PB브랜드에 대한 고민도 하면서 품목도 확대하고 전문성도 올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민은 직원들에 대한 겁니다. 근무여건이나 복지를 잘 해줘야 하고요, 인적 퀄리티를 높이면서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경영자가 가장 행복할 때는 직원들이 행복할 때입니다. 그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하면서 앞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한 회사가 제 꿈입니다.”


 
공구유통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제가 그런 말을 해도 되나 싶습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흐름에 맞춰 변화하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요즘 젊은 공구인들께서 참 잘하고 있지만, 현재 만나는 사람만 만나면 새로운 생각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관련분야에 대해서는 깊게 공부하고 다양하게 접하려는 노력이 기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동신툴피아 사장 자리여부를 떠나 자연인으로서 꼭 하고 싶은 것은 없으세요?
“(한참을 생각하다) 공부?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가서 몇 번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건이 되면 철학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사람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사업의 근본이치를 아는 것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거고, 사람은 가지만 기업은 내내 남아야 하니까, 그 근본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동신툴피아에, 나아가 업계에 가장 필요한 것과 목표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하신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변화, 그리고 목표는 행복. 이 두 가지를 잊지 않고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