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신뢰가 곧 성장, 품질 높여 세계시장 가겠다”
(주)상보기업 & (주)에스비 오육환 대표이사
지난 7월 26일 경기도 양주시에서는 측정공구 제조사 (주)에스비의 신축공장 준공식이 있었다. 대지 4천평에 건평 2천평 규모의 이 공장은 정부지원을 받아 지열냉난방이라는 최신 설비를 갖추었다. 지열냉난방이란 지하200m 깊이로 26개 홀을 뚫어 거기서 나오는 열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친환경 시스템이다. 이번 여름 같은 혹서기에도 평균 26도를 유지할 수 있는 꿈의 제조라인이다.
이 공장의 모기업은 측정전문기업인 (주)상보기업. 1987년 청계천에서 한 칸짜리 상보상사로 출발해 1992년 제조를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의정부에공장을 설립했다. 공구유통과 제조를 함께 하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고, 그간 외형 성장보다 내실과 브랜드 파워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상보기업이 지금까지 다져놓은 좋은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향후 공구업계 판도를 흔들 블루칩이 될 것이라 평한다. 공구유통사 (주)상보기업과 측정제조사 (주)에스비의 오육환 대표이사를 만났다.

공구제품 생산, 친환경으로 해보자
구로 본사에서 만난 오육환 대표는 “나 역시 다른 공구업계 리딩 기업들처럼 혈혈단신으로 시작했다. 그때는 다들 헝그리(hungry) 정신 하나로 버텼고 그것이 성장 원동력이 됐는데, 요즘 세대는 이 헝그리 정신이 아쉽다”고 운을 뗐다.
주변의 말을 빌자면 그는 이른 나이에 상경해 갖은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며 한양대 공과대학을 졸업하는 등 배움의 끈도 놓지 않았다. 좋은 학력이었는데 왜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사정이 어려워 야간대학을 다녔다. 때문에 실험실습 수업을 적게 들어 대기업 취직은 어려웠고, 그래서 공구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대포장하지 않고 겸손하게 사업을 이룬 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오육환 대표와의 일문일답.
이번에 새 공장을 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오랫동안 준비해 총 120억이 들어간 대규모 투자였습니다. 힘든 결정이지만 저희 상보로서는 꼭 해야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상보기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제조공장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측정제품 나오게 하자는 게 제 꿈이었고, 그래서 중간에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제조사를 키워왔습니다. 의정부에 공장을 가동해오다 좀 더 글로벌한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이번에 양주에 새로운 공장을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시설에 남다른 특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양주 공장은 지열냉난방이라는 클린시스템을 갖춰 제조라인 전체에 쾌적한 냉난방이 가능합니다. 모든 에너지원을 지열로부터 가져오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경기도에서 기업을 유치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에너지관리공단 기금 50%를 지원받아 마련했습니다. 지원은 지열 에너지 부문에서만 2억원 받았고 나머지는 에스비 자체적으로 계획돼 있던 부분입니다. 공구제조도 친환경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쁩니다.”
이번 양주공장 오픈으로 앞으로 어떤 점들이 달라집니까?
“현재 에스비에서는 세계 7~8개국에 수출하는 제품들을 만듭니다. 이탈리아 일본 등 공구 선진국에서 저희에게 생산을 맡깁니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수출역량도 높이고, 또 최종적으로는 에스비의 브랜드인 SB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생각입니다. 내년도 독일쾰른 전시회 참가도 신청해두었습니다. 해외전시회에 부스를 만들어 SB 상표를 지속적으로 알려야죠.”
측정전문기업이 된 배경이 있습니까?
“특별한 건 없고, 도소매로 창업하고 몇 년 후 일본 타지마 사의 제품을 취급하게 된게 가장 큰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공구제품이 별로 없었고 일본수입 제품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공구 중에서도 측정제품에 강하기 때문에 저희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가게 됐습니다.”

내 인생의 뿌리, 청계천
공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70~80년대 청계천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입전문 대상(大商)인 삼진상역 상사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아마 청계천 원로님들은 다들 기억하실 텐데 거기서 제가 10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히타치, 암, 타지마 등을 그때 접했습니다. 그러다 서른일곱 살에 퇴사해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창업 당시 기억나십니까?
“지금도 청계천에 우리 영업소가 있습니다. 한 칸, 즉 5평 내지 7평 크기였는데 거기서 1987년에 시작했습니다. 기억나는 게 당시 크레텍책임의 최영수 사장님도 청계천에 가방 들고 직접 물건 떼러 오시곤 했어요. 처음엔 수입을 하려던 게 아니고 그냥 도소매를 했죠. 그런데 배운 게 수입이라 해외로 눈이 돌려지더라고요. 하지만 친정인 삼진과 겹쳐지지 않고 내 나름의 아이템을 개발하려고 상당히 애를 썼습니다. 당시 공구인들이 해외시장에 대해 잘 모를 때였고 또 외환사정이 좋지 않아서 수입허가도 쉽지 않았어요. 해외로 다니면서 국내 시장을 역으로 보니까, 국내 제품이 조잡하고 형편없다는 게 눈에 들어와요. 당시 일본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제품도 좋았는데, 제가 보기엔 우리도 잘만하면 이 정도 제품 만들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 측정공구가 너무 일본에 의존하고 있고 국내 브랜드가 필요하겠다 싶어 제조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1992년 의정부에 공장을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생산되던 공장을 인수하신 겁니까, 아님 완전히 새로 생산라인을 만드신 겁니까?
“처음부터 우리가 완전히 새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서울 근교에 공장설립이 쉽지 않아 아마 우사를 하던 터에 공장 라인을 만들었어요. 2천평 땅에 공장건물만 1천평 됐죠. 수평기를 전문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조라인에서는 판매고민 잊어야
우여곡절도 많았겠습니다.
“수평기 시제품을 만들 때였습니다. 출하 전에 직접 가서 검수를 했는데, 내 눈에 안차는 거예요. 당시 국내에 서너 군데 수평기 만드는 데가 있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제대로 만들어 보자 해서 시작한 건데, 이렇게 나가면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폐기처분하자! 돈도 돈이지만 첫출하품을 폐기하자니 상당히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첫 제품부터 고객들 맘에 들어야지 단가는 나중 문제다 생각했어요. 에스비 제품은 처음엔 수입제품보다는 싸고 국내제품보다는 품질이 좋은 중간 시장대를 공략했고 나중엔 수입 브랜드와 동등한 품질을 이뤄냈습니다.”
흔히 판매와 제조를 같이 하기 힘들다고 하는데요.
“맞습니다.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판매는 얼마나 팔지 얼마를 남길지 계획을 짜야하고, 제조는 얼마나 잘 만들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유통은 열심히 하면 되는데 제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품 속에 혼을 넣어야 합니다. 처음엔 거기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요즘도 에스비 공장에 가면 상보에서 하던 일은 딱 잊고 완전히 제조마인드로 돌아섭니다. 품질 하나만 생각하자! 이런 마인드 아니면 힘들죠.”
요즘 수출현황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환율이 떨어져 환율 좋을 때보다야 채산성이 못하지만 밑지거나 그런 건 없어요. 수출 물건 때문에 전직원이 특근 중입니다.”

日타지마가 인정한 기술력
일본 타지마사에도 수출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타지마사 제품을 판매했는데, 저희 에스비의 생산능력을 눈여겨 본 일본 타지마사에서 OEM을 요청해왔습니다. 과연 타지마사의 품질 요구를 맞출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며 에스비의 실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참 난관이 많았습니다. 처음 수출할 때 타지마에서 물량의 100% 검수를 했고, 그 다음엔 반을 검수하고 그 다음엔 다시 그 반을 검수하며 워낙 원칙대로 처리하니까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대충해서는 검수를 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포장지에 긁힘 자국 생길 수 있잖아요? 한국에서라면 그 정도는 괜찮다 볼 수 있지만 타지마에서는 안된다고 하는 거예요. 당시 의정부 공장이었는데 주변 협력업체를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호소하면서 결국 해냈습니다. 워낙 힘든 공정을 거치다보니 결과적으로 우리 에스비 전 제품의 품질향상에 굉장한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 타지마 제품 중 20여 가지를 저희 에스비에서 생산합니다.”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때는요?
“IMF 때입니다. 수입을 하다보니까 환차손 때문에 아픔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제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오히려 좋은 면도 많았습니다. 수출을 하면 이익이 이전보다 많으니까 유통 부분에서 가지는 위험성을 제조에서 벌어 메웠습니다. 그 다음 힘든 때는 IMF가 지나고 중국산 공구가 물밀듯이 들어올 때였습니다. 저가 중국산 공구가 쏟아지니 이때는 제조를 가지고 있는 게 타격이 될 정도였습니다. 매출이 떨어졌죠.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곧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게 보였습니다. 결국 국내에서 생산되는 에스비 제품을 찾으시더라고요.”
사과문 보내니 고객 신뢰 깊어져
고객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저희는 생산초기부터 제품의 불량이나 하자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전 고객사에게 알리고 사과 편지를 보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끝까지 책임져주는 태도를 확실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번 저희와 거래한 고객은 떠나지 않습디다. 이런 점은 일본 타지마사로부터 배웠습니다. 일본 현지에 가보니까 타지마 사의 고객관리며 사후 관리가 아주 대단했습니다. 사과편지를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엔드유저를 직접 찾아가서 애프터서비스를 아주 철저하게 해요. 그런 거 보면서 우리도 사후관리를 더 확실히 하자 생각했죠.”
사과문을 보내니까 반응이 어떻던가요? 해명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는 건데요.
“오히려 반응이 좋았습니다. 에스비 이미지를 올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됐어요. 고객들도 결국 중국제와 차별화 되는 점을 발견하고 저희를 믿고 품질중심으로 구매를 결정하더라고요.”
상보와 에스비가 향후 공구업계 다크호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봐주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칭찬도 있고 견제도 있겠지만, 사실 현재 국내 큰 유통업체와 저희 상보 에스비는 가는 길이 조금 다릅니다. 제조를 가지고 유통을 하기 때문에 직원관리도 두 가지로 해야 하고, 급여체계도 다릅니다. 경영기획파트도 달라지고요. 그래서 23년간 제조와 유통, 무역을 같이하다 2010년 제조파트인 에스비를 새로운 법인으로 분리했습니다.”

대충대충 NO! 최선과 절약 정신 공구업에 필요
청계천에서 시작한 회사 중 가장 많이 성장하셨지요? 비결이 뭐라 보십니까?
“(웃음) 청계천은 제 일생일대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처음 삼진상역 직원으로 공구를 접하게 된 것도 청계천이었고, 사업을 하면서 성장하고 뼈가 굵었던 곳도 청계천입니다. 사업이란 운도 있고 돈도 있어야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초지일관 연결돼 이끌어와야 하고, 또 무리한 경영을 하면 안 됩니다. 사업이 조금 잘 된다고 방심하면 안되는 게 바로 이 공구분야에요.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살아야한다 생각해요. 우리업계에서 돈 좀 벌었다고 엉뚱한 사업에 손댔다가 망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무리하지 말고 한눈팔지 말자, 이게 비결이랄까요. 회사가 성장해도 교만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업계에 계신 분들이 에스비와 상보를 아껴준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울 때 떠올리는 좌우명이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자 입니다. 대충대충하는 걸 싫어해서 꼼꼼하단 소리를 들어요. 그런데 이 꼼꼼하다는 것은 옹졸하다, 스케일이 작다는 게 아니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꼼꼼하지 않으면 이 공구업은 못합니다. CEO는 꼼꼼해야 합니다. 제품 생산도, 유통관리도, 고객관리도 꼼꼼하게 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공구업은 더 그래요.”
요즘 국내 측정시장에 대해 평을 하신다면?
“측정 공구가 일반 다른 공구보다 국내 메이커가 적어요. 대기업의 중화학분야는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는데 중소 기업인들이 누리는 공구산업에는 국내메이커가 부족하단 말입니다. 그게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고요, 일본제품의 집중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 메이커를 집중 육성시키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에스비는 측정 불모지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꾸고자 시작됐습니다. 현재 에스비는 수평기 생산 파트와 철직자 같은 측정파트로 나눠지는데, 앞으로 캘리퍼스나 디지털 측정 분야에도 뛰어들 예정입니다. 현재 세계적 브랜드들의 OEM 생산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나아가 앞으로는 에스비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시장에 진출할 생각입니다. 또한 유통기업인 상보기업을 측정전문 뿐만 아니라 종합상사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후배 공구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절약하라! 절약만 잘 해도 이윤을 대체할 정도가 되거든요. 요즘 사람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요. 근면, 성실, 절약! 많이 듣는 말이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고, 전 이제까지 이걸 중심으로 잡고 살았어요. 저 역시 공구업 선배님들과 원로님들께 바로 이 근면 성실 절약을 배웠기 때문에 이만큼 왔고, 앞으로도 이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문도 두드릴 겁니다.”
글 서상희 사진 안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