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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배려하는 기업이 성장한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어요




배려하는 기업이 성장한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어요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 강대성 대표이사




대기업이 기업소모성자재(MRO) 구매대행을 넘어 공구유통에 진출함에 따라 사회적 지탄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에 2011년 삼성은 매각을, LG서브원은 올해 초 철수를 발표했다. 이중 가장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내놓은 기업은 SK였다. SK계열사인 MRO코리아는 국내최초로 MRO사업을 시작한 장본인이었는데, 당시 논란이 일자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인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사회적 기업이란 실업, 소외 등의 사회적 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따라서 취약계층을 채용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공헌하며 이윤의 2/3이상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SK그룹의 MRO코리아처럼 대기업 계열사가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2011년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기업화를 선언했으며, 출발과 동시에 연매출 1천억대의 국내최대 사회적 기업이 탄생했다. 이어 2012년 사명을 ‘행복나래’로 바꿨다. 2011년 취임해 MRO코리아의 사회적 기업 전환을 이끈 강대성 대표를 만났다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한다고?
 
“SK주유소 뒷건물로 오세요.”
서울시 대방동. 생각보다 작아서 전혀 대기업 분위기가 나지 않는 건물에 행복나래 본사가 있다. 모기업과 분리 운영돼 연봉이 많지는 않지만 직원들의 만족도와 정착도가 최근 높아졌다. 그 분기점은 사회적 기업 전환.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에 직원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강대성 대표는 취임 후 직원들에게 편지쓰기, 개별면담, 제조사 현장방문, 협력사 간 네트워킹 만들기 등의 노력을 하며 안팎 다지기에 나섰다. 입구 곳곳에 직원들의 웃는 얼굴이 붙어있다. 웃는 얼굴은 입구서부터 강 대표에게로까지 이어졌다. 공구제조와 유통사들이 보는 잡지에 인터뷰하는 것이 혹 불편하거나 걱정되는 점은 없는지 물었다. 오히려 돌아오는 답은 호쾌했다.
“한때 우리를 비롯하여 대기업들이 지탄받던 걸 떠나 이제는 서로가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쪽이 양보하는 게 맞고요, 또 모든 걸 내가 다 하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해요. 서로 열심히 해서 판로개척이나 경영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저희회사는 저희와 거래하는 사회적 기업들의 경영개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대화를 많이 해야 서로서로 필요한 부분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대성 대표는 2011년 당시 MRO코리아 대표이사로 부임하여 사회적 기업 전환에 누구보다 깊이 관여했다. 이야기를 돌려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환 배경부터 듣기로 했다.
“2011년초에 MRO코리아를 경영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와서 보니까 미국의 그레인저사와 SK가 각각 49%, 51% 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그레인저가 울트라 갑의 입장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CEO결정권 행사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삼성은 아이마켓코리아를 매각하는 등 타사들은 각 사에 맞는 대응방법을 수립하였습니다. 다들 아시잖습니까? 어디서 MRO 이슈가 나오게 됐는지. 그 두 회사에 비하면 우리는 매출 1천억에 경상이익 9천만원, 직원 110명 규모로 작은 편인데다 직원들의 근무 지속도도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최태원 회장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MRO코리아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시켜 대기업도 사회적 기업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보자.’ 원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도 많으셨고, 그래서 자주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 되려면 이익의 2/3을 사회에 내놓아야 하는데, 그레인저 같은 외국계 회사는 배당수익이 필요하니까 이 둘은 서로 공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지분을 비싸게라도 사자고 결정했고, 이후 사회적 기업 전환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돕는 사회적 기업
 
영리기업의 구성원들을 데리고 사회적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데는 어려움도 많았다. 우리나라에 사회적 기업이 태동한 지 5년여. 그동안 양적 성장만 했지 질적 성장은 이제부터다. 사실 영리기업도 곧잘 쓰러지는 시대에 사회적 기업으로 생존방법을 찾기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난관들이 많았다. 외부적 환경도 만들어가야 하고, 안으로는 직원들의 사고도 사회참여형이 되도록 바꿔야 했다. 행복나래 직원들은 회사근처 동작복지관으로 매주 금요일 노인무료급식 봉사를 가고 자발적으로 소액기부에도 참여한다. 그러다보니 직원들도 자기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되고 더 건강하고 행복한 쪽으로 가치관이 변했다. 실제 몇몇 신입사원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사회적 기업에 일한다는 자부심이 상당했다. 성과와 스펙 중심에서 벗어나 배려와 돌봄을 실천하는 일을 ‘월급 받으며’ 할 수 있어 그야말로 비전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하지만 대기업이, 특히 영리사업을 하던 대기업 계열사가 사회적 기업을 한 사례가 없어 아직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인증이 미뤄지고 있다.
“작년에 고용노동부에 신청했는데 아직까지 국내에는 사회적 기업이란 게 생산제조나 돌봄 노동 위주라서 대기업 계열사가 그것도 유통업으로 사회적 기업을 한다는 게 생소한가 봅니다. 올해도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2011년 전환을 선언하면서 사회적 기업 조건은 이미 다 갖추었습니다. 인증이 되면 구성원들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날 것이므로 인증이 필요하고, 인증 후 더 활발한 사회적 기업 지원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직원의 30%이상을 취약계층으로 고용하는 일자리 제공형,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서비스형, 이 둘의 혼합형태, 그리고 사회서비스 제공을 주된 목적으로 하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기타형이 있다. 행복나래는 기타형에 속한다. 행복나래는 사회적 기업 제품판매는 물론 다른 사회적 기업들의 경영개선 지원활동까지 하고 있다. 또 ‘사회적 기업 상품매입 보조금 제도’를 실시해 행복나래와 거래한 협력사 제품의 매출이익 중 50%를 해당 사회적 기업에 환원하는 노마진(No Margin) 거래를 이뤄냈다.
“현재 국내에 약2천여 사회적 기업이 있는데 이 중 MRO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기업은 약 100개 정도 됩니다. 이들 업체 중에서 현장을 가보고 제품을 확인하고 대표를 만나는 과정을 거쳐 저희가 판매 및 유통개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드시는 이 커피는 사회적 기업에서 나오는 공정무역 커피입니다.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브랜드 마케팅이 약해 시장 경쟁력이 약한데 저희가 유통을 담당해 기업체 등에 공급하는 일을 하는 것이죠.”
환경과 공생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의 커피는 맛이 달지 않고 담백하다. 사무실에서 국내 유명상표의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것을 요즘 젊은이들은 더 원할지 모른다. 작지만 착한 기업들과 일을 하다보면 따뜻한 이야기도 생겨난다고 한다.


작지만 따뜻한 기업의 이야기를 엮으며
 
“위캔쿠키라고 장애인들을 고용해 우리밀로 쿠키를 만드는 업체가 있습니다. 영풍제화는 부산에 있는 안전화제조사인데 사회적 기업은 아니고 저희 거래사입니다. 제가 취임 후 회원사를 다함께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 자리서 두 업체 대표님들께서 만나게 되셨어요. 장애인들을 데리고 사업을 한다니까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되잖습니까? 그 자리서 영풍제화 사장님이 위캔쿠키 직원들 신발 사이즈를 다 적어가서는 신발을 보내주신 거예요. 그런데 안전화는 대부분 끈으로 되어 있어요. 장애인들은 끈 사용이 불편하니까 사장님께서 따로 벨크로테입(찍찍이)으로 된 신발을 특별히 만들어주신 거예요. 완전 감동이었죠.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경험이고 감동 아니겠습니까.”
최근 이슈가 된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그는 거침없이 지적했다.
“그 발생이 그 회사의 경영철학과 조직문화에 있다고 봅니다. 그 부분을 바꾸지 않고는 어느 한사람이 바꾸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요즘 그 이슈가 된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고 불매운동이 일어나지만 저는 그 브랜드가 사라지는 건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이 기회로 환골탈태해서 정말로 좋은 기업으로 가지 않겠나 봅니다. 저희회사도 이제부터 모든 계약서에 ‘갑을’이라는 명칭을 뺄 생각입니다. ‘갑을’ 규정은 일본의 계약관행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고 주종관계를 의미하는 거잖아요? 이 사회적 기업은 협력과 상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갑을관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바라본다

강대성 대표는 전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SK그룹 공채로 입사해 줄곧 석유영업파트를 담당했다. 말 그대로 살벌한 비즈니스 세계도 알만큼 안다. 비즈니스의 다른 말은 이윤인데, 기업이 착하게 굴면서 이윤을 남기는 일이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탐스신발 같은 경우는 신발 한 개를 사면 빈민국 아이들에게 신발 하나가 돌아가도록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또 테이블포투는 밥 한 끼를 먹으면 35센트가 기아들에게 돌아가게 합니다. 누구는 먹을 게 남아 비만이 되고 누구는 배가 고파 기아가 되는 공급의 불균형을 기업활동을 통해 해소하자는 것인데, 저는 이런 사회적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멋있다, 한번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보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종이 오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받는 기업, 배려하는 기업이 수익률이 올라가는 게 맞고요, 이제 정말 그런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SK본사 식당에 가면 한 켠에 테이블포투 메뉴가 있다. 그 메뉴를 먹으면 기아들에게 일정액이 돌아가는데, 실제로 많은 직원들이 그 메뉴와 동시에 그 메뉴가 지닌 가치(value)를 선택한다. 모 회사 생수제품 중에는 한 병을 사면 유통이 100원, 제조사가 100원, 소비자가 100원을 부담해 총 300원이 아프리카로 간다. 최근 이 제품의 매출은 30~40% 올랐다.
“경제상황이 어려운 현실에서 나만 먹고 살겠다 하면 시장에서 먹혀들어가지가 않아요. 기업이 배려하는 모습을 보일 때 소비자도 동참을 하고, 결국 그 기업이 롱런할 수 있습니다. 또 이 배려하는 모습이 하나의 전략이 아니라 진심으로 뼛속까지 배어있어야 합니다. 사실 과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수익과 연계가 되어 있지 않고 평판을 좋게 가져가려는 의도로 진행되었지만, 이제는 CSV(기업의 사회적 가치(Value)) 시대입니다. 기업이 착한 일도 하면서 수익도 벌어들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비즈니스 형태가 착한 일을 하면서 수익을 낸다면 인재들이 몰릴 것이고 이렇게 되면 조직의 분위기는 매우 좋게 됩니다. 결국 선순환이 되는 것이죠. 사업모델과 사람 그리고 조직문화라는 삼박자가 잘 어울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강대성 대표의 감동경영은 업계에 소문이 날 정도다. 매달 1일에 직원 개개인에게 따로 편지를 쓴다. 비가 와서 아버지의 돼지 농장에 피해가 있다더니 어떻게 되었느냐는 시시콜콜한 개인사가 오고간다. 독감이 예상될 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독감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비록 많지 않는 예산이지만 직원건강에 그만큼 신경 쓴다는 표시다. 또 단순히 ‘종이컵 쓰지 마라’ 하기보다 좋아하는 사진을 내도록 해서 컵에 사진 한 장씩 새겨 주면서 그때서야 ‘에코경영을 해보자’ 한다. 직원들은 감동했고 함께 사회이슈에 귀 기울였다.
강 대표는 현재 연세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자본주의 4.0과 5.0. 자본주의 발달단계를 컴퓨터 프로그램 버전 식으로 나눈 말인데,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가 1.0, 1930년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수정자본주의가 2.0, 70년대 시장자율을 강조한 신자유주의가 3.0이다. 최근의 자본주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4.0, 여기에 공유가치 창출까지 이끌어내면 5.0이 된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사회적 기업 포럼이 있었는데 행복나래의 사회적 기업 전환과 발전모습을 사례로 발표했습니다. 제 꿈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행복나래가 사회적 가치를 이끄는 경영사례로 등장하는 겁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좋은 회사 만들기에 매진해야죠. 착하고 좋은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배려하며 다른 이들의 성공을 도우면 그 기업 역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으니까요.”
따뜻한 자본주의를 기다리는 시대에 행복나래가 어떤 모습으로 훨훨 날지 기대된다. 함께 행복하고 함께 이뤄가는 세상, 분명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