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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이 앞으로의 시장 좌우할 것



신제품이 앞으로의 시장 좌우할 것

산업공구 시장의 새 기대주, 가스토치 전문기업

㈜트랑고(코베아 텍) 안근환 대표



아웃도어 브랜드 코베아의 자회사이자 산악제품 전문기업인 트랑고 안근환 대표. 1990년 입사해 코베아맨으로 성장하고 코베아 월드를 꿈꾼 사람이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코베아 창업주 고(故) 김동숙 회장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가득했다. 기능올림픽 참가자 출신으로 코베아와 인연을 맺어 개발실 근무를 하며 사회를 배웠다. 사장이 되고나니 일반 평사원일 때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자 ‘달라진 건 없는데요?’라며 눈을 한껏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의 신조는 ‘겸손’. 사장이냐 아니냐가 그의 꿈을 좌우하진 않았다. 그의 꿈은 가스버너 명가 코베아의 전통을 잇는 것, 그 코베아를 위해 새 시장인 산업공구 분야를 개척해 가스토치하면 코베아, 코베아 하면 가스토치가 떠오를 정도로 세계 최고의 가스토치를 만드는 일이었다. 가스토치와 산악전문 아이템으로 산업공구 시장에 무서운 기대주로 떠오르는 트랑고 안근환 대표를 만났다.


기능올림픽 출전의 꿈, 그리고 오기 한 스푼


“중3쯤었을 거예요. 그때는 국위를 선양하고 오면 카퍼레이드를 했잖아요? 국제기능올림픽서 우리나라가 3연패를 했다고 카퍼레이드를 하는데 제가 난생 처음으로 여의도란 데를 가서 그 광경을 봤어요. ‘아, 멋있다. 나도 저거 하고 싶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입을 쩍 벌리고 봤어요. 그때부터 기능인의 꿈을 꾼 거죠. 국제대회는 못나갔지만 국내대회는 세 번 정도 나갔습니다.”
기계공고를 졸업한 그는 군대를 갔다. 군대라는 조직이 체질적으로 맞았는지, 3년 아닌 6년을 일명 ‘말뚝을 박았다’. 1989년 제대를 하고 난생 처음으로 ‘이제 뭘 하고 먹고 사나?’ 고민을 했다고. 틈틈이 준비한 공무원 시험. 타고난 성실성 덕분인지 덜컥 합격을 하고 말았다. ‘엄마, 이제는 고생하지 않으셔도 돼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찰나, 그만 신체검사 탈락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듣고 말았다.
“군생활 6년 한 네가 신체검사서 탈락했다고? 그게 말이 되냐?”
주변에선 모두 그렇게 믿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감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젊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치료를 안 하고 두었어요. 하루는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병원에 갔는데, 예전 의사들 좀 권위적이었잖아요? 너무너무 오래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가니까, 우리 어머니한테 대뜸 말을 놓는 거예요. ‘얘를 왜 이렇게 두었어?’ 하면서. 그만 기분이 나빠서 바로 어머니 손을 잡고 나와 버렸어요. 그땐 제 성격이 그랬나봐요. 이상한 오기 같은 거.”
한때 심하게 앓은 감기가 폐에 자국을 남겨 그는 결국 공무원 길을 접어야 했다. 안근환 대표의 말처럼 ‘코베아 사람’이 되라는 신호였다. 기능대회에 함께 출전했던 선배의 소개로 코베아라는 회사를 알게 됐다. 하지만 이전 그의 전공은 기계가공 쪽이었고 코베아가 구사하는 기술은 가스기구 쪽이라 서로 달랐다. 면접에서 기술관련 질문은 없었다. 오직 ‘당신의 청춘을 코베아와 함께 하겠느냐?’였다. 답은 ‘원하신다면!’



생산라인 불편도 잘 해결하는 연구개발자 …
코베아 미래시장을 찾아라!

코베아는 현재 등산 캠핑용품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30년 전에는 휴대용 부탄가스 연소기를 생산하는 업체로 출발했다. 1982년 설립돼 2001년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판매법인인 비전코베아를 설립하면서 캠핑 아웃도어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기능대회에 함께 출전했던 선배의 소개로 코베아라는 회사를 알게 됐다.
또한 공구시장인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2003년 계열사인 코베아텍을 설립했다. 가스토치 및 후레쉬류의 하드웨어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하다 2007년 산악등반 장비 전문제조사인 트랑고를 인수했다. 가스토치 전문 코베아텍과 산악장비 전문업체인 트랑고를 합쳐 사명을 트랑고로 통합했다.
“(코베아 창업주인) 김동숙 회장님은 이 가스버너 제품 개발에 일생을 거셨어요. 전 이 코베아에서 사회생활 전부를 지냈는데, 회장님께서 늘 믿어주시고, 한번 해보라며 밀어주신 덕분에 이만큼 오게 됐어요. 제 능력은 사실 별 거 없어요. 인터뷰를 오신다길래 생각해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릴 적부터 오기가 좀 있었고, 그 외에는 한번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전부였어요.”
모든 제조 생산은 기계를 거쳐 나오기 때문에 사실 그 원리는 같았다. 기계가공이 전공인 그는 곧잘 생산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었다. 현장 사람들은 불편이 생기기만 하면 개발실의 그를 찾기 일쑤였고 이 모습을 유심히 본 고 김동숙 회장이 덜렁 기계를 한 대 사주면서 더 연구해볼 것을 권했다.
1995년, 코베아 개발실 과장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코베아는 미래를 위한 신사업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부천에 따로 공장을 지었다. 고 김동숙 회장은 그를 불러 ‘부천으로 가서 우리회사가 앞으로 먹고 살 길을 만들어라’했다. 교통이 불편해 모두들 망설일 때였는데, 그는 차를 한 대 준다는 말에 그만 허락을 하고 말았다.
“당시 차가 없던 시절이었어요. 차 한 대가 생긴다는 게 얼마나 좋던지.” 그는 크게 웃음을 보였다. 근사한 세단이라도 되냐 물었다.
“아뇨! 다마스 한 대. 그래도 그땐 정말 날듯이 좋았습니다.”
부천공장에서 이리 저리 시제품을 만들어 봤다. 가스버너는 코베아에서 하고 있으니 같은 제품을 개발할 수는 없고, 이전 일본 출장길에서 봤던 가스토치가 생각났다. 우리로 치면 홈플러스 같은 유통상가에서 가스토치가 팔리던 것을 눈여겨 봐두었더랬다. 외국제품을 손에 넣으며 분해 연구해 국산 가스토치 시제품을 만들어봤다.



시제품으로 일본 수출길 열기까지


다시 어느 날 김동숙 회장이 부천에 왔는데, 그가 만든 가스토치 제품을 보더니 ‘이게 뭐냐’물어봤다. 딸깍딸깍 불을 켜가며 가스토치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갔다. 그랬더니 갑자기 서울본사에 일본 손님이 와 있으니 같이 가서 보여주자 하셨다. 그길로 시제품을 들고 일본 바이어를 만나러 갔다.
“말 그대로 본제품도 나오지 않는 상태서 시제품을 종이봉투에 둘둘 말아 일본 바이어를 만나러 갔어요. 보더니 얼마면 되냐 하더라고요. 제가 8불 하니까 그쪽에서 7불이라 했죠. 그 자리서 7.5불로 바로 계약이 됐고, 그길로 일본수출길이 열렸어요. 부리나케 금형을 제작해 1996년에 일본으로 15만개를 수출했어요. 당시 환율이 높아 수출 효과가 좋았죠. 물론 그때는 아웃도어 시장에 공급했지만, 2000년경에 김 회장님께서 언제까지 아웃도어가 잘 되기만 하겠느냐, 새 시장을 개척하자 하셔서 이 가스토치를 산업공구 시장에 공급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해보니까, 이 가스토치는 아웃도어보다 가열, 용접, 점화 등 산업분야에 굉장히 많이 쓰여요. 따라서 코베아는 산업공구 시장을 신개척지로 보고 있습니다.”
가스토치는 알고 보면 굉장히 세심한 기술의 총집합이다. 가스기구 기술의 핵심은 밸브의 내구성과 가스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스핀 기능에 있다. 안 대표는 “처음엔 유럽제품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 봤는데, 모양만 같을 뿐 성능에 차이가 났다”며 “이유는 밸브 재료인 황동에도 있고, 또 같은 재질 같은 모양이라도 가스 조절력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모두 기술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테스트 해봤느냐하는 실패와 도전의 수첩이 트랑고의 재산이다.
“한 8년 전부터 중국제품이 코베아라는 브랜드 로고까지 베껴서 똑같이 나오고 있어요. 물론 저희가 의장특허 등록을 해놨기 때문에 국내에 못 들어오고는 있지만, 만약 들어온다 해도 중국제품은 기본적인 기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산업공구라는 전문가들의 시장에서는 외면을 받을 거라 봅니다. 코베아 가스토치는 내부 통 구조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특별한 기술이 들어갑니다. 중국 것은 모습만 베낄 뿐 기능을 베끼진 못해요.”
안 대표는 가스토치 제품 두어 개를 가져와 바로 설명을 이어갔다. 어디를 가든 가스기구만 보이면 신나게 설명을 한다고 동석한 직원이 귀띔을 해준다.
“레버 꼭지를 누르면 기체가 나가고, 거꾸로 세워 누르면 액체가 나갑니다. 이게 다 밸브랑 연결된 구조가 그냥 연결된 게 아니고 꺾여있기 때문에 그래요. 꺾여 있으니 누르면 기체, 거꾸로 세우면 액체가 나오는 거죠. 또 가스기구는 불완전 연소하면 안돼요. 파란 불꽃이 나와야 하죠. 그런데 중국제품은 이런 기본적인 기능을 못합니다. 저희는 기술개발이 많이 돼 이제는 거꾸로 세워 액상가스가 나오더라도 파란 불꽃이 나오는 제품도 가능해요. 이 정도로 기술력이 차이 납니다.”
현재 코베아 가스토치 연간 생산량은 약 100만개. 이중 반은 수출물량으로 약 40여국에 수출한다.


가스토치와 산악전문제품, 산업공구 시장에서 만난다
 
트랑고는 코베아 가스토치와 함께 산악전문 제품으로 등반가들에게 정평 난 회사. 원래 등반장비의 국산화에 크게 기여한 고 홍성암 박사에 의해 탄생했으며 코베아의 김동숙 회장이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상 부가 아닌 한국산 등반장비 제조의 명맥을 잇기 위해 인수를 결정했다. 안근환 대표는 트랑고 대표가 되자 직접 등반을 해보며 산악제품의 현장 분석에 들어갔다.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고 어느새 그 역시 산악 마니아가 되어 있다고
“대부분의 우리 직원들이 업무관련 분야에서는 전문가 수준입니다. 캠핑관련 직원들은 거의 매주 캠핑을 다니고, 전국의 캠핑 동호인들을 위한 캠핑대회도 개최하면서 실수요자들의 요구사항도 듣고 실제 몸소 무엇이 필요한지 체험하고 있습니다. 등반장비 개발 역시 트랑고 직원들로 구성된 클라이밍 팀이 거의 매주말 바위를 찾습니다. 유명 산악인들로부터 조언도 듣고 스스로 실행도 해보며 제품 개발을 해 나가죠.”
사실 산악전문 제품들은 크게 수익이 나지 않는 아이템이다. 보편성이 떨어져 하나를 만들어도 많이 팔리지 않는데다 암벽 등반 시 쓰이는 카리비너만 해도 하나 사면 오래 두고 쓰는 것이라 제조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데다 한국에도 해외 유명제품들과 견줘 내로라하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해왔다. 약 3년전부터는 ‘트랑고’라는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해외박람회에 꾸준히 부스를 설치해 참여해왔다. 영화 ‘도둑들’에서는 영화배우 전지현이 고층건물 장면에서 이 트랑고 제품을 착용했다. 흔히들 PPL(간접광고)이 아니냐 하지만 실제로는 영화사 측의 요청으로 자연스레 사용된 제품일 뿐이다. 제품노출이나 브랜드 광고 효과는 별로 없었다고 안 대표는 웃음을 보였다. 그만큼 산악제품이라 하면 트랑고가 떠오를 정도로 이 분야에서 단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트랑고는 가스토치와 산악장비 제품이라는 크게 두 파트로 보이지만 실은 이 제품군들이 산업공구 시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가스토치는 처음엔 아웃도어에 공급했지만 지금은 산업공구 시장 성장률이 크고요, 산악장비도 작업장 안전 장비로 쓰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스토치와 트랑고 산악장비가 산업공구 시장의 새로운 기대주가 될 것이라 저는 봅니다. 현재 가스토치는 충분히 많이 성장하고 있고, 산악장비를 산업장비로 좀더 세분화시키면 더 안전하고 현장요구에 맞는 제품이 될 것입니다.”



사장이냐 아니냐, 그건 중요치 않다


사원으로 입사해 20년 만에 계열사 사장이 되는 일은 흔치 않다. 비결이 뭐냐 묻자 그는 조심스레 ‘겸손’이라 답했다. 사원일 때나 지금 사장일 때 그의 일하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좀 더 영업과 경영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은 연구와 개발이다. 그 흔한 경영자 수업도 들으러 다닌 적 없다. 사람 소중한 줄 알고, 좋은 제품 만드는 것이 경영의 최고 덕목이라 여기는 그다.
“사장이냐 아니냐 그건 중요치 않아요. 어떤 제품이 현장에 쓰이고 유익할 지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제 일하는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제가 좀 잔소리가 많아지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 같아 직원들에게 미안해요. 돌아서면 후회를 하죠. 모든 일은 사람이 이룹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제일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돌아가신 김동숙 회장님께서 절 아껴주신 것처럼 저도 회사와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며 외적보다는 내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를 꿈꿉니다. 석유버너만 있던 시절에 가스버너를 꿈 꾼 코베아 정신, 그 정신을 지키며 품질로 보답해야죠.”
코베아 가스토치는 현재 약 20여 종. 안근환 대표는 기존제품을 가지고는 매출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짚으며 앞으로의 시장은 신제품이 좌우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가지고 새 시장을 찾아가는 일이 트랑고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 보기 때문. 새로운 길을 향한 도전은 암벽등반가의 정신과도 통한다. 단단하고 거친 암벽을 기어이 오르는 트랑고 정신, 산업공구 시장에 새로운 도전 아이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