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세웠으면 전력투구하라
남방CNA(주) 김승길 대표이사
남방CNA는 산업용 에어로졸 제품을 만드는 화학제품 전문제조회사이다. 나바켐(Na-bakem)이라는 브랜드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외산 에어로졸 시장을 국산으로 대체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현재는 윤활, 방청, 세척, 코팅제 등 600여 종의 에어로졸 제품을 생산해 국내 에어로졸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창업주는 김승길. 국내 1세대 제련기술자와 화학연구자였던 그는 30여 년 전 구로공구상가에 남방화공상사를 시작하면서 이 에어로졸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실 그는 경북 안동, 비가와도 마당의 곡식 걷을 줄 모르던 가난한 선비가문에서 자랐다. 중학과 고등은 월사금을 못내 쫓겨나며 공부했지만, 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너무도 척박한 환경 탓인지 서울대는 낙방하고 후일 한양공대서 공학을 전공했다. 사업이 안정돼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할 때 면접관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다.
“한이 돼서 왔다.”
그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김승길 대표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칠순을 넘긴 그는 안경 너머로 순리와 역경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표정을 순간순간 지어보였다.
미군부대 기름 배달하던 고학생에서 국산 에어로졸 생산 기술자로 우뚝
흉년 들어도 글만 읽던 안동 선비가문 ... 나라도 돈을 벌자
일본서 에어로졸 제품 보고 국산화 결심 ...
수많은 실패의 나날이 한국최고 에어로졸 ‘Nabakem’ 만들어
산업용 에어로졸, 국산으로 해보자
에어로졸이란 스프레이처럼 뿌리는 제품을 총칭하는 말로, 산업생산 과정에서 쓰이는 소모성 화학공구, 즉 케미칼 툴(Chemical Tool)의 일종이다. 발전소 장치 세정이나 조선소 용접 슬래그 제거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며,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산업현장에는 모든 산업 에어로졸을 수입해 쓰고 있었다. 김승길 대표는 70년대 일본 출장길에서 이 에어로졸 제품을 봤고 그게 국산화의 단초가 됐다.
“7년여 준비했어요. 외국에서 유명한 제품을 가져올 순 있지만, 이게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해외 자료를 아주 많이 뒤졌죠. 또 실제 제조를 하려면 원료가 국내에는 없었어요. 외국에서 들여와야 해 처음엔 상당히 힘들었죠. 외국 어디 회사에 어떤 원료가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그 원료를 가지고 어떻게 섞느냐가 또 이 에어로졸의 품질이 되니 말도 못하게 시행착오를 겪었죠.”
현재 남방에서 쓰는 화학원료는 약 400여가지. 여기에 대한 배합기술이 남방만의 기술력이다. 현재 남방에서 주력하는 제품군은 비파괴검사용품, 용접용품, 방청 및 코팅제, 그리고 세척제 등이다. 비싼 장치와 특수 기술 등이 필요했던 기존의 비파괴검사용품과 달리 남방에서 내놓은 제품은 원터치 방식인 에어로졸 타입으로 간단한 조작을 통해 쉽고 정확하게 육안으로 판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다. 또한 이 제품은 기존 일본과 프랑스 등에서 독점해오던 정밀제품을 국산화하여 세계시장에서 높은 기술력을 알린 제품으로 기존 수입제품의 1/3 가격으로 사용업체의 원가절감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실패한 만큼 옳은 기술 쌓인다
“내 강점은 수도 없이 해보고 만들어봤다는 겁니다. 실패 파일이 많은 게 재산이죠. 지금 만약 어떤 제품이 필요하다고 주문이 들어온다면, 설령 나보다 더 힘있는 사람이라도 그걸 갑자기 만들진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돌아가는 시스템에 올리기만 하면 쉽게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산업현장에서 해결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찾아옵니다. 그럼 열에 일곱은 해결해 줍니다. 삼성도 찾아와요. 그동안 실패하고 시도해본 덕분이죠. 물론 처음엔 단순한 모방이지만 모방도 기술이 있어야 하고 자꾸 하다보면 독자적인 기술이 생깁니다.”
김 대표가 떠올리는 또 하나의 애로사항은 처음 들어보는 나바켐이라는 제품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믿어주지 않고 써주지 않았을 때였다. 납품처를 찾아가도 ‘여기 가보라 저기 가보라’하며 탁구공처럼 튕기기만 하고, 담당자 역시 처음 보는 나바켐 제품을 자기 자리를 걸고 덜렁 써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화가 나 소리쳤다.
“처음부터 대학 나온 사람 있소? 초등 중학 고등 나와야 대학 갈 거 잖소. 우리 같은 국산 기업제품은 써주지도 않으면서 자꾸 실적증명서부터 가져오라 하면 어떡하라 말이요. 한번 써줘야 실적이고 뭐고 생기지. 한번만 써보고 그런 말들을 하란 말이오!”
얼마나 피 같은 뜨거운 입김을 뿜었는지 짐작가는 대목이다. 남방CNA는 특이하게도 출발 당시부터 회사이름보다 브랜드 이름을 알리는 전략을 썼다. ‘작은 기업일수록 브랜드와 디자인 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해외출장길에서도 유심히 눈에 넣어왔다. 회사이름은 몰라도 브랜드는 알게 되도록 주력했다. 모든 제품에 빨간 글씨로 ‘Nabakem’이라 써붙이고 나바켐하면 에어로졸, 에어로졸 하면 나바켐 로고가 떠올려지도록 만들었다. 김 대표는 “브랜드란 곧 신뢰”라고 정의했다
“브랜드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에요. 비즈니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그 인간관계가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게 아니고 믿음과 신뢰를 뜻한다 말이지. 난 이제야 골프 좀 치고 친구 만나지만 쉰 살 될 때까지 다른 취미도 없고 일밖에 몰랐어요. 그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제품 만드니까 다들 믿어주더란 말이지. 구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 김승길은 몰라도 돼. 나바켐 이거 하나보고 사는 거거든. 그 브랜드라면 믿고 살 수 있겠다, 이게 되어야 제품이 오래갈 수 있어요.”
회사이름 남방이 특이해 그 연유를 물었다. 브랜드 이름 나바켐(Nabakem)도 이 남방이라는 글자를 영어발음을 따라 쉽게 쓴 것이다.
“창업하기 전 동남아 4개국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곡식과 과일이 풍부한 그 나라들이 참 부러웠어요. 그래서 남녘 남(南)자에서 나라 방(邦)자를 써서, 나중에 회사를 만들면 이름을 따뜻한 남쪽나라, 즉 ‘남방’으로 하자 지어놨죠. 배고파 봤기 때문에 남쪽나라 같은 풍족한 상태를 꿈꾼 것 같아요.”
‘그 시절에 대학을 나오셨으니 유복하게 지내지 않으셨냐?’고 묻자 그는 잠시 소회에 잠겼다.
가난한 선비고을 소년, 고학으로 대학 공부
“사실 제가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 품에 자랐어요. 그런데 우리집안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대대손손 글만 읽을 줄 알았지, 멍석 위 곡식 하나 거둘 줄 몰랐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돈이 없어 초중고를 거의 공짜로 다녔어요. 장학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절반은 가고 절반은 미안해 못가다가 결국은 학교돈 떼먹은 거지요(웃음). 그러니 나 하나라도 돈을 벌자는 심정이 있었는지 몰라요.”
열아홉살 겨울, 서울역에 내리던 그날을 잊을 수 없는 듯했다. 대학을 고학으로 마칠 때까지 외로움과 가난이 늘 그의 곁에 붙어 다녔다.
“낮엔 공부를 하고 밤엔 미군부대에서 기름 배달일을 했습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니고 주독야경(晝讀夜耕)이지. 세상이 참 고마운 게 그래도 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더구만요.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 미군부대 기숙사(BOQ)에서 잠을 잘 수 있었어요. 돈이 없어 중간엔 쉬기도 하며 5년만에 졸업했죠.”
64년도 대학졸업 후 한국알미늄에 근무하며 국내 제련공장 건립의 주역으로 일하던 그는 약 5년 후 한국쿨민이라는 한일합작 산업클리닝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대일차관 들여와 나라 한번 일으켜 세우자며 모두 열심히 일할 때였잖아요? 포항제철이 철을 만드는 제강회사라면 한국알미늄은 보그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 알루미늄을 만드는 제련회사였어요. 제 입으로 밝히기 그렇지만 사실 저는 한국의 제련기술자로는 역사책에 나올만한 사람입니다(웃음). 그 뒤 아는 분의 소개로 한일합작회사에서 케미칼 플러싱(Chemical flushing)과 산업클리닝 일을 했습니다. 공장의 배관이나 파이프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청정체 방청제 등을 유입하는 일인데 약품도 공급했지만 기술문제도 지원했죠. 그때 큰 공장, 제철소, 조선소, 발전소 등은 거의 다 가봤습니다. 아주 좋은 경험이 됐고, 포철이나 조선소에 가면 화학 소모성 자재가 눈에 들어왔어요. ”
80년에 구로공구상가에 8평 남짓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오늘날 남방CNA의 출발이었다. 돈만 벌려 했으면 원료 판매만을 했겠지만 케미칼리스트(화학자)의 자존심을 걸고 처음부터 제조에 몰두했다. 시제품을 만들기를 수차례. 이제 됐다 싶어 납품을 하면, 아뿔사! 그만 시제품과 납품제품이 영판 다른 제품이 돼 있었다. 시쳇말로 환장할 노릇.
“그 원인을 알아냈지. 첫째는 원료의 순도 문제야. 내가 실험실에서 쓰는 시약은 순도가 높은데, 제품을 양산하려면 시약 원료는 비싸서 안되니까 시중에서 화공약품을 사서 썼어요. 그러면 순도가 떨어져 납품을 하면 개발할 때와 영 다른 물건이 되어 있는 거야. 얼마나 부끄럽고 낭패스러운지. 두 번째 문제는 사용자 환경의 문제였어요. 사용 온도나 사용자의 솜씨, 기계성능 같은 외부적 환경 때문에 제품이 제 기능을 발휘 못하는 거죠. 그런 것도 감안하고 해결을 해줘야 했어요. 이렇게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비싸지만 순도가 좋은 원료를 써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만큼 우리기술도 늘었어요.”
은탑산업훈장 수상 …
노력한 공 알아줘 감사하다
그는 자신을 일러 “사업가지만 핏줄 탓인지 이재에 밝지는 못하다” 했다. 실제 나바켐 직원들은 그를 “일만하고 세금을 내도 너~무 잘 내는 사장님”으로 평한다. 그런 만큼 회사가 부천 공장에서 평택으로 올 때도 창업주 김승길을 따라 거의 모든 직원이 다 이주를 해왔다. 창업주가 온 삶을 건 것처럼 직원들 역시 평생을 그와 함께 한다. “회사에 대한 애착심이 내 가정 못지않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중국과 인도 시장으로의 수출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때문에 20년 전부터 준비해 중국과 인도에 이 나바켐 브랜드를 등록해두었습니다. 에어로졸 산업은 선진국형 산업이라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수요가 많아집니다. 앞으로 신제품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 등 할 일이 많습니다. 물론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많지요. LPS, 록타이트, CRC, 3M, 켐서치, 크라운 등이 모두 역사와 관록 있는 브랜드들이지만 이제는 브랜드 파워보다 오히려 소량 다품종 경영체계를 갖춰 경쟁력을 가져야 하지 않나 봅니다. 품질, 가격, 거래조건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경쟁력을 가늠하니까 앞으로 해볼만하다 생각합니다.”

남방CNA는 현재 특허 7개, 실용신안 2개, 상표등록 30여개, 그리고 세계적 인증기관 즉 Lloyd 선급, DNV 선급, UL, ISO 등 국내외 최고의 인증 10여 가지를 가지고 있다. 기술개발의 공로로 2003년 정밀화학진흥대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2012년 신기술실용화촉진대회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나같이 초라한 소시민이 은탑산업훈장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다”며 “전문성을 키워온 걸 국가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 참으로 영광스럽고 늦도록 열심히 일한 보람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 정주영 회장 말씀처럼 산을 오를 때 꼭대기만을 보고 오르면 힘들어 못올라갑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가다보니 어느 순간 꼭대기에 올라와 있더란 말이지. 욕심을 부려 성공을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하다보니 8평 사무실이 20평, 또 지금 수천평이 됐어요. 어찌보면 난 참 행복한 경영자에요. 사업하는 사람들은 경기가 좋다 안좋다 말을 한다지만 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조선경기가 안 좋아진 대신 원자력 화력 발전소 경기가 좋아져 그쪽으로 저희 제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풍선이론 있지요? 한쪽 눌렀다고 겉만 쑥 들어가지 안에 든 공기량은 같지요. 하나 안좋다고 곧바로 어찌 되는 게 아니니, 리스크 줄여가면서 또 새시장 알아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安不忘危 ...
도리 지키는 회사 되겠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젊은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다.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내가 그런 말 할 사람이 되냐’며 사양을 하다 다음처럼 말했다.
“누구라도 뜻을 세울 땐 무섭고 망설여지지만 일단 뜻을 세웠으면 전력투구(全力投球)하는 게 맞습니다. 뜻을 세우고도 이게 맞나 저게 더 낫나 하면 바람 불면 날아갑니다. 뿌리를 내리는 게 참 중요해요. 뜻을 세웠으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게 옳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는 아들인 김종혁 사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이제 좀 여유가 난다는 김승길 대표. 회사와 일을 떠나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글을 쓰고 정원을 산책하고 싶어요.”
여섯 살 그를 품고 주무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 역시 ‘아이쿠 맞다’며 무릎을 쳐 서로가 한참을 웃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그를 안고 항상 한 구절을 중얼거리셨다. 물론 그때는 그 뜻을 몰랐는데, 이후 그 말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안불망위(安不忘危) … 존불망실(存不忘失)’ 평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있을 때 잃을 것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한학자 할아버지의 영향을 참 많이도 받았다. 남방CNA 본관을 나오자 바로 앞 큰 바윗돌에 남방상도(南方商道)라는 글이 보였다. 초심을 갖자, 신뢰를 얻자, 투기를 말자, 이 세 가지가 남방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道)이다. ‘초심을 갖자’는 좀 잘 된다고 게으름이나 거드름을 피우지 말 것, ‘신뢰를 얻자’는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한 무한 노력을, ‘투기를 말자’는 노력 이상으로 되는 일은 없기에 과욕하지 않고 뿌린 만큼 거두자는 뜻을 담고 있다. 선비처럼 원칙을 지켜 최고 기술을 향하는 기업, 남방CNA의 따뜻한 성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