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계기는 1998년에 악기 전시회. 그때 출품한 악기가 일본 기타박물관 사람의 눈에 들었고 그가 처음으로 최동수 씨의 기타를 차지했다.

“원래 박물관에 내놓을 생각은 없었어요. 기타는 연주를 해야 생명력을 얻는 악기니까요. 그런데 대여를 통해 기타를 연주한다고 해서 시집을 보냈죠.”
잘나가던 현대건설 이사, 아내 암 소식에 사표
제일 애착 가는 기타가 있냐는 질문에 최동수 씨는 정색을 한다.
“제일이란 게 없어요. 잘난 자식은 잘나서 예쁘고, 못난 자식은 그래서 더 신경쓰이고. 어떤 것 하나도 비교급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죠. 비교나 경쟁은 기업체에서나 반복하는 일이니까요. 그런 삶은 30년간 살았어요.”
은퇴 전 그는 현대건설에서 잘 나가는 임원이었다. 어려서부터 기타를 만드는 게 꿈이었지만 그걸로 돈을 벌 생각은 없었기에 대학 졸업 후 현대건설 신입사원부터 임원이 되기까지 줄기차게 달려왔다. 절반 이상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바레인, 인도, 싱가포르 등 해외 건설 현장에서 보냈다. 회사의 목표를 내 목표로 삼아서, 다른 회사 직원이 ‘네 회사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말할 정도로 뛰고 뛰었다. 임원이 되고 나서는 새벽 6시 일어나서 출근, 조회, 오후 6시 일반 직원들 퇴근하고 간부들은 밤 11시, 12시까지 회의. 수고했다고 술 한 잔 하고 나서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가는 날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지금과 비교했을 때 그게 나았다, 지금 더 낫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어요.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게 필요하고 중요했던 시기였으니까. 반면 지금은 내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시기니까요.”
그가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심한 데는 기타 제작도 제작이지만 아내 허숭실 씨의 건강이 결정적이었다. 1994년 쉰다섯. 현대건설이 상한가를 칠 때였고 직급도 이사였다. 그러나 아내는 유방암 2기. ‘외로움도 암을 키운다’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과감히 사표를 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나 싶어 집이고 재산이고 모두 정리하고 일산으로 옮겨온지 스무 해. 아내 허씨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2009년에 발표한 수필집 <꽃은 흔들리며 사랑한다>에서 ‘기타를 만드는 남자’라는 글로 남편에 대한 소회를 잔잔하게 들려주기도 했다. 최씨는 평생 꿈으로 간직했던 기타 장인이 됐으니 부부가 전화위복한 셈이다.
천사가 탐내는 기타 만들고파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최동수 씨에게 은퇴 이후 설계에 대해 조언을 구하자 세 가지를 염두에 두라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하는 것, 작으나마 용돈이 되는 것.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이 뭘까 미리 생각해 놔야 해요. 당장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더라도 인생에는 시기가 있으니까. 사실 사람이 사는 데 물질이 충족되지 않으면 꿈도 이룰 수 없는 거죠. 욕심 부리지 않고. 최소한 내 관을 내가 살 정도는 돼야 된다 이거예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늘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겉으로 여유부리며 사는 것 같아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며 젊은이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다.
“두 가지 꿈이 있어요. 하나는 기타 제작에 관련된 책을 펴내는 거예요. 소장하고 있는 관련 책이 120권쯤 되는데 그 역사와 정보를 압축해서 정수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또 하나는 천사가 좋아해줄 수 있는 악기를 만드는 거예요. 그 천사가 내 악기로 연주를 하면 천상의 소리를 내지 않겠어요? 소리의 정점. 끊임없는 도전이면서, 끝이 있어서도 안 되는 도전인 거죠.”
인생 노장의 깊이가 기타 장인의 울림으로 이어진다.
글 _ 배선희 사진 _ 정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