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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소리 만들고파" 클래식기타 제작 명장 최동수


“천상의 소리 만들고파”


클래식 기타 제작 명장 최동수 씨

잘나가던 현대건설 이사직 버리고 기타에 미쳐


 그의 기타는 모양부터 다르다. 농도 깊은 색감이 나무의 질감을 살린다. 하나하나 상감 기법으로 자개나 상아를 촘촘히 둘렀다. 그런 기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게 마니아들의 설명이다. 소리는 더 놀랍다. 기타 좀 만져봤다는 사람들은 안다. 엇, 이건 울림이 완전히 다른데? 한마디로 ‘급’이 다르다는 말이다.




나무 울림 살려야 명품 기타


기타 마니아들 사이에 ‘대부’로 불리는 최동수(75) 씨. 그가 만드는 기타는 일 년에 딱 두 대뿐이다. 적당한 시기에 찾아가지 않으면 생생한 제작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힘들다. 일흔 넘은 노장이 기타 하나 붙들고 몇 달을 씨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최상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나무에 풀 붙여서 줄을 맨 걸 기타라고 부르는데 거기에 소리가 빠졌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타는 아니에요. ‘악기’가 아닌 거죠. 튜닝하는 과정이 들어가서 소리가 다듬어져야 진정한 악기라고 부를 수 있어요.”
그의 작업에서 소리를 조율하는 ‘튜닝’은 가장 핵심이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이상. 말 그대로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되는 작업이다. 해도 해도 원하는 소리기 안 나올 때는 아예 분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튜닝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탐내는 명품이 탄생한다. 기타리스트 배장흠과 천재 기타남매 필로스가 대표적. 그의 기타 가격은 한 대에 1천만 원 이상 호가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직감으로 튜닝해요. 짧은 시간에 원하는 소리를 찾지. 근데 그게 아닌 사람은 100대, 200대 계속 만들면서 서서히 소리를 찾고 명품에 다가가는 거예요. 줄곧 그렇게 하는 거야. 이러니 내가 미친 놈이지.”




 젊어서부터 해외출장길 공구 사모아

 
경기도 고양시 자택 내부에 설치한 그의 작업실은 예상 외로 소박했다. 크고 작은 공구가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가 실제로 사용하는 공구는 사실 몇 개 되지 않는다.
“직장 다니면서 해외 나갈 일이 있으면 기타 만들 때 쓰려고 공구를 사곤 했어요. 용도도 모르고 사서 모은 거도 많았죠. 그런데 실제로 늘 쓰는 공구는 몇 개 안 돼요. 밥 먹을 때 수저만 있으면 되는 것과 똑같지.”
그 많던 공구는 지인들에게 하나 둘 줘버리고 지금은 남은 게 별로 없다. 그가 옆에 두고 늘 사용하는 공구는 직접 제작한 칼과 목공용 평칼, 끌, 붓, 부러뜨러서 곧바로 날카롭게 사용할 수 있는 커터 정도.
“누가 보면 문방구 용구라고 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게 제일 편해요. 같은 종류라도 내 손에 착 감기는 공구는 따로 있어요. 내 친구가 따로 있는 거지.”
꼭 필요한 건 직접 만들어 쓴다. 좌우 날이 다른 독특한 모양의 칼은 20년 전에 만들어서 아직도 쓰고 있다. 몸판에 부채살을 붙일 때 눌러주는 도구인 ‘고바(고스틱이라고도 부른다)’는 파는 곳이 없어서 손수 제작했다.
최동수 표 기타가 특별한 이유는 만드는 과정부터 남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타는 옆판에 쓸 나무를 열처리해서 휘어지게 만든 다음 위아래 판을 접착제로 연결해 몸통을 만든다. 그런데 최 씨는 이 과정에서 나무를 억지로 휘도록 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곡선을 유지하는 ‘프리스탠드’ 기법을 사용한다.
“나무는 열처리를 하고 틀에 고정시켜서 곡선을 만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관성 때문에 펴지려는 경향이 생겨요. 이걸 정해진 규격에 맞춰 놓은 상하 판과 억지로 연결하려면 접착제를 많이 쓰게 되고, 그러면 소리의 울림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프리스탠드 기법은 나무의 관성을 최대한 존중해서 상하 판을 만들어 붙이고 접착제를 떨어질 듯 말 듯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100% 울림을 잡아내는 거죠.”
이렇게 완성된 기타는 여타 제작소의 기타보다 소리가 크고 음색이 맑아 듣는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




기타는 내 자식, 값 매길 수 없어
 
악기 문외한이라도 최 씨 기타를 직접 본다면 겉모양에서 이미 남다른 ‘포스’를 느낄 수 있다. 현대식 기타에서 본 적 없는 19세기 전 화려한 클래식 디자인 덕분이다.
결의 방향과 울림이 좋은 나무를 고르고 나서 표면을 정리하고 색을 입히는 데 붓 대신 헝겊으로 만든 솜방망이를 두드려 칠한다. 표면 전체를 한번 칠하는데 100~150번 두드렸다가, 마를 때까지 기다린 후 다시 그렇게 칠하기를 10회 정도 반복한다. 그렇게 최소 1000번은 손이 가야지 마음에 드는 색이 나온다. 이후 나무 표면을 일일이 파서 상감기법처럼 그 자리에 자개나 상아와 같은 소재를 넣는데, 재료나 디자인에 따라 고유의 이름도 붙인다. 마치 사람을 대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일까. 완성한 기타가 주인을 만나 떠날 때면 그는 ‘시집보냈다’라고 표현한다.
“기타는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에요. 딱 봐도 여자잖아. 떠나보낼 때는 내 자식과 같은 마음인 거죠. 이왕이면 백마 탄 왕자가 가져가면 제일 좋죠. 가격요? 그걸 어떻게 정해요. 자식에게 어떻게 값을 매길 수 있겠어요.”
기타의 값은 최동수 씨 본인이 직접 정하지 않는다. 진짜 주인이라면 그냥 주기도 한다. 주문 제작도 없다. 일단 구상이 끝나면 명품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조율한 뒤 연주자를 만나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경지는 아니었다고.
“원래 취미로 한두 개 만들어서 친구들 주곤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음감이 딱 생기더라고요. 그때 기회가 되서 유명 연주자에게 헌정했는데 그게 서서히 알려져서 지금에 이르렀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1998년에 악기 전시회. 그때 출품한 악기가 일본 기타박물관 사람의 눈에 들었고 그가 처음으로 최동수 씨의 기타를 차지했다.




“원래 박물관에 내놓을 생각은 없었어요. 기타는 연주를 해야 생명력을 얻는 악기니까요. 그런데 대여를 통해 기타를 연주한다고 해서 시집을 보냈죠.”



잘나가던 현대건설 이사, 아내 암 소식에 사표


제일 애착 가는 기타가 있냐는 질문에 최동수 씨는 정색을 한다.
“제일이란 게 없어요. 잘난 자식은 잘나서 예쁘고, 못난 자식은 그래서 더 신경쓰이고. 어떤 것 하나도 비교급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죠. 비교나 경쟁은 기업체에서나 반복하는 일이니까요. 그런 삶은 30년간 살았어요.”
은퇴 전 그는 현대건설에서 잘 나가는 임원이었다. 어려서부터 기타를 만드는 게 꿈이었지만 그걸로 돈을 벌 생각은 없었기에 대학 졸업 후 현대건설 신입사원부터 임원이 되기까지 줄기차게 달려왔다. 절반 이상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바레인, 인도, 싱가포르 등 해외 건설 현장에서 보냈다. 회사의 목표를 내 목표로 삼아서, 다른 회사 직원이 ‘네 회사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말할 정도로 뛰고 뛰었다. 임원이 되고 나서는 새벽 6시 일어나서 출근, 조회, 오후 6시 일반 직원들 퇴근하고 간부들은 밤 11시, 12시까지 회의. 수고했다고 술 한 잔 하고 나서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가는 날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지금과 비교했을 때 그게 나았다, 지금 더 낫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어요.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게 필요하고 중요했던 시기였으니까. 반면 지금은 내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시기니까요.”
그가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심한 데는 기타 제작도 제작이지만 아내 허숭실 씨의 건강이 결정적이었다. 1994년 쉰다섯. 현대건설이 상한가를 칠 때였고 직급도 이사였다. 그러나 아내는 유방암 2기. ‘외로움도 암을 키운다’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과감히 사표를 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나 싶어 집이고 재산이고 모두 정리하고 일산으로 옮겨온지 스무 해. 아내 허씨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2009년에 발표한 수필집 <꽃은 흔들리며 사랑한다>에서 ‘기타를 만드는 남자’라는 글로 남편에 대한 소회를 잔잔하게 들려주기도 했다. 최씨는 평생 꿈으로 간직했던 기타 장인이 됐으니 부부가 전화위복한 셈이다.


천사가 탐내는 기타 만들고파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최동수 씨에게 은퇴 이후 설계에 대해 조언을 구하자 세 가지를 염두에 두라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하는 것, 작으나마 용돈이 되는 것.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이 뭘까 미리 생각해 놔야 해요. 당장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더라도 인생에는 시기가 있으니까. 사실 사람이 사는 데 물질이 충족되지 않으면 꿈도 이룰 수 없는 거죠. 욕심 부리지 않고. 최소한 내 관을 내가 살 정도는 돼야 된다 이거예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늘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겉으로 여유부리며 사는 것 같아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며 젊은이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다.
“두 가지 꿈이 있어요. 하나는 기타 제작에 관련된 책을 펴내는 거예요. 소장하고 있는 관련 책이 120권쯤 되는데 그 역사와 정보를 압축해서 정수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또 하나는 천사가 좋아해줄 수 있는 악기를 만드는 거예요. 그 천사가 내 악기로 연주를 하면 천상의 소리를 내지 않겠어요? 소리의 정점. 끊임없는 도전이면서, 끝이 있어서도 안 되는 도전인 거죠.”
인생 노장의 깊이가 기타 장인의 울림으로 이어진다.


 
글 _ 배선희  사진 _ 정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