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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6세 자동차정비사 ‘연진이의 꿈’




부산 강서구 화전산단의 한 카센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가 자동차 보닛을 열고 능숙하게 엔진오일을 체크한다. 묵직한 렌치를 들고 나사 한두 개 풀고 조이는 건 예사다. 자동차 정비 명장을 꿈꾸며 얼마전 '최연소' 자동차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한 조연진 양. 또래에 비해 남다른 꿈을 품게 된 연진이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자동차정비 명장을 꿈꾸는 소녀


지난 4월 최연소 자동차정비기능사로 신문에 소개되고 최근 KBS <강연100℃>에도 출연하면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잘 몰랐던 친구들도 인사를 건네고 문방구 아주머니도 서비스를 챙겨준다.
“친구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멋있다’ ‘부럽다’예요. 어른들은 우리에게 진로를 정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정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또래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진로 결정이다 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요.”
연진이의 꿈은 자동차정비 명장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작고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자동차정비 명장이 되겠다는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런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카센터를 하고 있는 부모님 덕분이다. 연진이 아버지는 수도권에서 10년 넘게 카센터를 운영한 베테랑 정비사.
“여섯 살 때부터 아빠가 일하는 카센터에서 뛰어놀았어요. 자동차는 늘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었어요. 또래 여자 아이들이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 때 저는 RC카를 갖고 싶어할 정도로 차를 좋아했어요. 지금도 자동차 모양 소품은 뭐든지 갖고 싶어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 꿈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음악을 좋아해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플루트를 배웠다. 청소년교향악단에서 플루트 단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소질이 있었기에 진로도 당연히 그렇게 정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꿈을 깊이 고민한 계기는 따로 있다. 가정에 경제고가 닥쳐 모든 것을 그만두게 됐을 때 진정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처음부터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면서 부모님도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니 자동자 관련 일이더라고요."
있어 보이고 돈 많이 버는 일만 찾으려는 요즘 젊은이와 사뭇 다르다. 2세 경영이 빈번한 공구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일선물 대신 정비학원 등록해 달라
 
당시 연진이에게 닥쳐온 어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고모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옮겨왔지만 환경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여름에 선풍기도 없이 동생과 부채질로 견뎌야 했다.
"집에 쌀이 없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선풍기는 말도 못꺼낼 정도였어요. 갑자기 전학와서 교복도 새로 사야 하는데 교복 살 돈도 없어서 선배들이 물려준 걸 입고요. 그때 엄마는 만삭의 못이었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나 정작 자신은 어디에도 이런 마음을 이야기할 곳이 없어 힘들었다고 조심스레 털어놓는다. 잠시 눈시울을 붉히나 싶더니 금새 밝아진 연진이는 “바로 그때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말한다.
아빠가 몇달 후 부산으로 내려와 다른 카센타 직원으로 일하게 됐고 엄마도 셋째를 순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이런 부모님을 위해 자신도 자동차 정비일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버지는 힘든 일이라며 말렸지만 연진이보다 먼저 자격증을 딴 엄마와 고모의 응원이 큰 힘을 됐다. 특히 엄마 김미진 씨는 "부모님을 위한 거라면 하지 말고 정말 해 보고 싶은 일이라면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진이는 결심했다. 생일선물 대신 정비학원을 등록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자동차 주치의가 되겠다는 뜻의 ‘로페카’

중학교 1학년이 도전하기에는 공학, 수학, 기술이론이 나와 너무나 어려운 공부였지만 방과 후부터 밤9시까지 계속되는 학원공부에 매진하며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다. 실습은 아버지가 직접 체크해줬다. 덕분에 필기는 세 번만에 합격, 실기는 단번에 합격했다.
“제일 기뻤을 때요? 올해 4월 18일. 자격증 합격한 날이에요. 날짜도 안 잊어 먹어요. 히힛.”
그 즈은 온 가족이 꿈꾸던 카센터도 강서구 화전산단로에 오픈했다. 이름은 ‘로페카’(051-941-1069). 엄마가 지은 이름이다. 로페(rophe)는 ‘고치다, 치유하다’는 뜻의 그리스어로 고객의 차를 성심성의껏 고치는 주치의가 되겠다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겼다.
“저희 가게 가장 큰 장점은 과잉 정비를 안 하고 가격 거품이 없는 거예요. 아빠가 경력도 많으셔서 정비도 잘 하세요. 또 직원 오빠들도 밝고 분위기가 좋구요, 고객이 수리를 의뢰하면 차를 가져오고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해요.”
가게 소개에 자신감이 넘친다. 개업 몇 개월 만에 진심을 담은 정비로 소문이 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연진이의 아이디어도 한몫했다. 홍보용 명함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손글씨를 써서 돌린 것이다.
“보통은 명함을 버리거나 차안에 대충 두거나 할 텐데 어떤 분은 자켓 안에 넣으시더라구요. 이 쪽지를 보고 응원 문자를 주신 손님도 있고 카센터 찾아온 손님도 꽤 많았어요.”


늘 새로운 차를 만나는 것이 큰 매력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아직 배울 게 더 많다. 주말이면 부모님과 함께 실제로 차를 고치면서 실습을 하고 있다. 오일정비나 브레이크 패드 교체 같이 간단한 일은 익숙해졌지만 20㎏짜리 바퀴를 나르거나 나사를 풀고 조이는 일은 어린 여학생의 몸으로는 아직 힘에 부친다.
“현장에 비하면 공부할 때 배웠던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예 처음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연진이가 공부하는 방법은 알 때까지 묻는 것. 이런 그녀가 귀찮기는커녕 연진이는 로페카의 분위기 메이커다. 학교를 마치면 집에서 텔레비전 속 자동차를 보고 즐거워하고 자동차 전문 케이블 방송을 찾아보는 그녀에게 자동차는 이미 삶의 전부가 돼 버렸다.
“자동차를 고치는 일은 큰 매력이 있어요. 사람도 생김새나 성격이 모두 다르듯이 자동차도 전부 다르거든요. 같은 기종이라도 태어난 날짜가 다르고 누가 어떻게 운전했는가에 따라 모두 다른 성질, 다른 모습을 가지게 돼요. 매번 새로운 자동차를 만나고 그 차에 맞게 고치는 것이 큰 매력이라고 느껴요.”
덕분에 공부에도 흥미가 생겼다. 자동차 정비 지식이 과학이나 기술 과목과도 통하는 것이다. 특히 기술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됐다.



꿈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드는 것
 
연진이에게 음악을 그만두게 되서 아쉬움은 없는지 물었다.
“음악을 포기한 건 아니에요. 단지 자동자정비사라는 또 하나의 꿈이 생긴 거죠. 음악은 나중에라도 할 생각이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꿈에 도전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당장은 자동차에만 몰입 중인 연진이에게 고등학교 진학 문제가 남아있다. 부산에 있는 자동차고등학교는 남자고등학교라 입학 자체가 안 되고 또 다른 곳은 거리가 너무 멀다. 고등학교 입학이 쉽지 않다면 검정고시도 고려하고 있다. 당장은 자동차산업기사 자격증을 준비하려고 한다. 대학 진학 후 기능장 수업을 받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독일로 유학 가서 더 많은 기술과 비전을 익히고 싶다는 조연진 양. 그녀의 최종 목표는 ‘명장’이다.
“부모님처럼 자동차와 교감하며 아픈 곳을 고쳐준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싶어요. 내 일에 긍지를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언젠가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명장이라는 호칭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웃들이 연진이의 작지만 큰 꿈을 아낌없이 응원하는 이유다.

글 _ 배선희
사진 _ 변한섭

 



                                                                                                                                                                                                            




 저희 가족은 부모님과 두 동생을 포함해 다섯식구예요. 원래 경기도에서 살았는데 그때도 아버지께서 카센터를 하셨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집도 꽤 크고, 제가 음악을 좋아서 피아노랑 플루트도 배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구요. 부모님이 싸우시는 일도 자주 있고, 낯선 아저씨들이 집 문을 두드리는 일도 생기고 아빠는 집에 안 들어오시고...

엄마가 고모가 계시는 부산으로 내려가자고 하시더라구요. 우리 집이라고 갔는데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고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선풍기도 없어서 동생과 부채질하며 지냈는데. 만삭인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래서 투정도 못 부리겠더라고요.
이어 아빠가 부산에 내려와 다른 카센터에서 일하면서 형편도 조금씩 나아졌어요. 엄마도 공부하셔서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따시는 걸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자동차 정비가 신비하고 궁금한 것도 많았거든요.

마침 제 생일이 다가와서 생일선물 안 받고 자격증 따서 공부할 수 있는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남자들만 있고 아저씨들도 많았어요. 제 나이가 15살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정도였어요.
그 무렵 부모님이 카센터를 오픈해서 명함에 메모를 붙여서 가게 홍보를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세워진 차에는 가서 꽂고 차 안에 있는 운전자에게 직접 전해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주기도 했어요. 아버지 핸드폰으로 '따님이 준 명함보고 기분 좋게 돌아간다'고 격려 문자도 받았아요.

카센터에서 일하는 저를 보고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왜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저는 일단 이 일이 재미있어요. 자동차도 꼭 사람 같거든요. 겉으로 다 비슷비슷해 보이고 똑같아 보여도 속은 다 다르고. 정비 일 하시는 분들은 아마 의사가 된 기분일 거예요. 의사는 아픈 환자를 치료해서 보내주지만 정비는 아픈 차나 다친 차를 고쳐서 보내주는 거랑 똑같으니까요.

이 일이 제 꿈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일 자체에도 매력이 있구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좋고,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도 있으니까 좋고. 이런 제 꿈이 여학생한테 안 어울리는 꿈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비록 제 꿈이 대통령이나 의사처럼 크고 화려한 꿈은 아닐지라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면 큰 꿈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