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발전하는 한 공구는 아이템이 무궁무진
청계천 군복청년에서 공구계 빅4로, 무창상사 이무용 대표이사
“그건 안되지. 각자 사정이 있는데 억지로 매출을 내리라는 게 말이 돼?”
모 회의에서였다. 매출에 대한 예민한 말이 나오자 모두 어물쩍 얼버무리고 있었다. 이때 무창상사 이무용 대표가 ‘말장난은 그만하자’고 선을 그었다. 말로는 얼마든지 합의가 될지언정 실제 자기 사업장에 돌아가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방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오늘의 인터뷰는 기실 그날의 회의에서부터 시작됐다. 화끈한 그라면 현재 공구계 상황에 대해 툭 터놓고 말하지 않겠나.

사장은 놀지 않아. 피곤하지도 않고
사업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고들 하지만 그는 셔츠 단추 몇 개 풀고 할 말 다 하는 사람이다. 거물 앞이라고 모두 말 못할 때 나서서 대판 싸우기도 하고, 약속만 지켜주면 의리 하나는 끝까지 지키기로도 평이 나 있다. 대신 직선적인 언변 탓에 마찰이 생기고 괴팍하다는 평도 듣는다. 폭풍 속을 그대로 뚫고 가는 이무용 방식, 그렇게 오늘의 무창을 이룬 셈이다. 1968년 시작했으니 올해로 46년째 공구인생.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미국으로 휴가를 간다 했다. 놀러가시냐 물었더니 “사장이 노는 거 봤어? 놀아도 일”이라며 노는 것과 일이 구분 없는 인생을 에둘러 표현했다. 업체규모로 보면 크레텍, 케이비원, 동신툴피아에 이어 4위. 하지만 공구의 중심지 청계천에서 시작해 큰업체를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업을 키운 것 때문에 누구보다 업계에 영향력이 크다. 그래서 말이다, 최근 업계의 고민인 유통질서 혼란에 대해 먼저 물어보았다.
“난 교회를 다녀요. 그래서인지 세상이 돌아가는 데는 진리나 원리가 있다고 믿어요. 하나님의 뜻이 있다 말이지. 물이 역행할 수 없듯이 사업을 하는 데도 시장원리란 게 있습디다. 그러니 앞으로는 시장원리에 의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겠나 봐요.”
"외국에서 좋다는 것 보다 한국시장 현실에 맞는 걸 골라야 해요. 동양인에게 맞아야지 서양인들에게 좋다는 것 소용없고, 그냥 소문만 듣고 가져오면 국내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당해요."
시장원리에 따른다면 작은 업체는 더 어렵게 될 거란 말씀인가요?
“아니지. 그건 잘못된 생각이지. 작은 업체는 작은 대로 유리한 점이 많아서, 모든 인건비나 경비가 적게 나가니까 오히려 경쟁력이 있을 거예요.”
최근의 전동공구 이익률 하락 문제는 해법이 있을까요?
“전동공구 이익률 문제는 최근의 문제가 아니고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어요. 전동공구만 하던 우리선배들 99%가 실패를 봤어. 제조사에서 이익을 많이 추구하지 못하도록 정책적으로 만들어놨거든. 그러니 결국 판매자 간에 심하게 경쟁을 하게 됐고 덤핑도 생겼지. 대리점도 대리점 권한이 없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이고, 전문용어로 재편이라고도 하죠. 그러니 혼자만 살겠다고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발등을 찍는 꼴이 될 겁니다.”
최근 빅(Big)4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매출 상위 4개사부터 매출목표를 좀 줄여가라는 말인데요.
“오랫동안 공구업을 한 것이나 여러 가지 정통성 면에서 빅4 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우리 무창이 해당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3개사에 비해 부족한 면도 많고 매출로는 1위에 비해 우린 10분의 1정도이니 같이 묶어 보는 건 좀 부담스러워요. 그래도 아무튼 빅4라면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깊숙하게 봐! 아직도 공구로 먹고 살 꺼리들이 많아
이런 유통질서 문제가 생긴 근본원인을 뭐라고 보십니까?
“첫째는 업계 단결력 부족이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직원들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모기업이 너무 싸게 팔아서 영업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반문을 합니다. 그 기업은 어디서 도둑질해 와서 파는 게 아니다. 제품 하나하나 뜯어보면 결국은 거기에서 거기다. 가격 하나에 먼저 흔들려 거래처 사장들을 설득 못하면 너희에게 문제가 있는 거다 라고 호통을 칩니다. 다들 각자의 영업노하우가 있어요. 그런데 가격 하나에 집중하다보니 가격만 큰 문제가 됐다 말입니다. 다른 서비스, 기술지원, 사용자가 원하는 물건이 진짜 무엇인지, 그런 제품을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공급할까 고민하는 등의 발전이 없어요. 이러다가는 가격 하나로 싸우다가 다 죽습니다.”
자체적인 거래질서 외에 제조사와의 관계 해법은 없겠습니까?
“제조사들의 밀어내기 관행부터 고쳐야 합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죠. 그렇다고 따르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계속 할 수는 없다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큰 업체들이 힘을 발휘해야 하고 다들 단결해서 힘을 받도록 밀어줘야 한다고 봐요.”
가격질서를 잡는다는 게 자유시장 경제에서 정말 가능할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유지하는 게 자유시장 경제논리는 아니잖습니까? 제조사들의 관행부터 뿌리 뽑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이럼에도 아직도 공구업이 비전있는 삶의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아직도 깊이 자세히 보면 먹고 살 꺼리들이 수두룩한데 가격 하나로 싸우다 굶어죽을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예요.”
고수가 보는 안목은 다른가봅니다. 설명을 좀 해주세요.
“공구업이 다른 사업분야에 비해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음식처럼 상하거나, 패션처럼 유행을 타는 품목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국가와 산업이 발전하면서 무한히 필요한 제품이 늘어나고 있고요. 지금 나와 있는 제품에서만 경쟁하지 말고 해외전시회 부스를 가보면 아직도 ‘이거 한번 해봤으면’하는 제품들이 널려 있어요. 그냥 쓱 훑어보면 안보이는 거야. 공구에 미쳐서 자꾸 들여다보면 보여요. 그래서 나는 이 공구업 한 걸 단 1초도 후회한 적이 없어. 아주 괜찮은 사업분야에요.”
해외전시회에서 나온 제품들을 보면서 이 제품 한번 팔아보자, 하고 결정할 때 가장 큰 기준은요?
“시장에서 원하는 거, 공구상이 원하는 거.”
그걸 어떻게 압니까?
“장사하는 사람이니까 매일 공구상에 나가봅니다. 나가면 시장상인들이 정보를 줘요. 이런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 말하거든.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모아뒀다 전시회 등에서 딱 집어내는 거지. 보통 공구상 사장들이 전시회에 가서 관광하듯이 봐요. 쓱 훑어보고 별 것 없네 이래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달라요. 자세히 볼수록 황금이 널려있는 거야. 그리고 거래처가 원하는 걸 갖다주면 흥하고 자기가 원하는 걸 가져오면 망해요. 진리야! 외국에서 좋다는 것보다 한국시장 현실에 맞는 걸 골라야 해요. 동양인에게 맞아야지 서양인들에게 좋다는 것 소용없고, 그냥 소문만 듣고 가져오면 국내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당해요.”
제품을 보는 안목도 있어야겠습니다. 어떤 공구가 좋은 것입니까?
“요즘엔 품질과 성능이 좋아야 하고 동시에 가격면에서도 경쟁력이 있어야 하지.”
청계천서 일년 열두달 군복만 입던 사내
무창상사는 1968년, 우리나라가 군수품에 의지하며 500만불 수출탑이 고작이던 시절에 시작됐다. 스물한살의 이무용은 일자리를 찾았고 청계천서 일하던 그의 매형이 손을 잡아 끌어줬다. 당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검은 군복. 원래는 얼룩덜룩 군복이었는데 섬유염색업 발달이 안될 때라 시장에서 죄다 검은 색으로 염색해 팔고 있었다. 그놈을 한 벌 걸치면 가을, 겨울을 지나 봄까지 입고 여름이 돼야 겨우 벗었다. 중간에 벗어 빨려면 다른 입을 것이 있어야 하는데, 단벌 청춘에겐 그 무거운 군복을 대체할 것이 없었다.
한번은 남산엘 올랐다. 내려다보니 집들이 빽빽했다.
“이 많은 집들 중에서 내 집이 없구나.”
가슴에 종이 쳤다.
‘너 그냥저냥 살아선 안되겠다. 미친놈이라 불려도 저 집 하나만은 가지자!’
그는 당시를 회상해 “가진 것 하나 없는 놈이 열정과 패기는 굉장했던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눈이 큰 편이지만 얼마나 눈에 불을 뿜고 일터를 누볐을지 상상이 간다.
처음엔 탁상보루방(탁상 드릴링 머신)을 팔며 공구에 눈을 떴다. 당시 수입제한이 많을 때라 바로 무역업을 할 수는 없고 큰 업체서 수입권을 가지면 그 중 일부를 떼어 와 영업활동을 했다.
“군대에 있을 때 월남전에 참가해 공병보급병으로 근무했는데, 그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제대 후 곧바로 청계천에 사무실을 내고 오파상 겸 도매판매를 시작했지. 그래서인지 지금도 무창을 수입만 하는 회사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은 수입이 40%, 국산제품 유통이 60% 됩니다.”
수입을 하다 국산제품을 취급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원래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공구라는 게 별로 없었잖아요. 미군부대 뒤로 나오던 거고 그 이후엔 수입해서 쓰니까 아주 갈증이 날 때였지. 1995년 수입자유화가 되기 전까지는 물건이 들여오는대로 팔렸어요. 줄 세워놓고 팔았지. 그런데 수입자유화가 되니까 앉아서 장사하면 안되겠더라고. 그래서 도매 유통을 시작하게 됐고, 국산제품을 취급하게 됐어요. 사업은 시대를 따라 변화해야 하거든.”
무창상사 1968년 청계천서 시작. 무역을 통해 외국의 좋은 제품을 국내에 소개하며 성장했다. 로보스타 등 공구업계에서 알아주는 해외브랜드들이 초기엔 거의 무창을 통해 들어왔다. 1995년부터 국산제품까지 아우르며 현재 약 3만여 품목을 국내외로 유통한다. 해외 거래처는 7개국에 약 100여 곳. 현재 부산 대구 대전 등에 영업지점과 해외로는 LA 지점을 두고 있다.
그럼 최근에 변화를 준 게 있다면?
“제조를 좀 하려고 공장허가를 받아놓고 있어요. 몇 가지 생각하고 있는 제품이 있긴 한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그간 힘든 위기는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편해서 없었다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동안 어떤 힘들었던 것도 그리 마음에 담아두고 있질 않아요. 원래 사는 것은, 또 일이란 것도 어렵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고 일도 아닌 거지. 최선을 다해 일하고 하나님 곁으로 갈 때까지 건강 잘 유지한다, 그런 생각입니다.”
성격이 직설적이어서 손해를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사업을 하면 어차피 사람싸움인데.
“잘 보셨네요.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다보니 오해도 생기고 손해도 꽤 봅니다. 그게 제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쉽게 고쳐지진 않아요. 잘못된 것을 맞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참겠습니까. 저도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에요.(웃음)”
직원들에게 그는 불호령 사장이다. 바로 불러서 호통을 치기 때문에 눈물을 빼는 직원들도 꽤 있다. 업계에서도 마찬가지. 이치를 따지면 당해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말하는 대신 뒷말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가고 믿을 수 있는 ‘쉽지 않은’ 사람으로 통한다.
앞으론 인터넷 시장 넘어야 희망
장사에 도(道)가 틀 만큼의 시간이 됐습니다. 장사의 도(道)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신뢰와 약속. 둘째도 신뢰와 약속. 우리회사 영업사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일시적인 효과를 위해 거짓말을 하지마라. 그리고 ‘같은 값이면 제 것을 사주십시오’하고 말할 만큼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라.”
인터뷰에 들면서 시장재편과 질서를 조심스럽게 짚으셨는데, 공구업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정확한 정답은 나와 있지 않지만 시장이 변화하니 나도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문제가 뭐냐하면 우리업계 자체는 변하지 않고 자기습관에만 머물러 있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아요. 모든 건 변한다! 그걸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예전엔 수입만 몇 가지 해서 편하게 살았지만 어느 순간 품목도 늘리고 고객에게 배달해줘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거기에 맞춰 빠르게 변화한 덕분에 오늘날까지 그나마 오게 된 겁니다.”
최근 시장의 가장 큰 변화라면 뭐가 있겠습니까?
“인터넷! 그게 가장 크죠.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세계가 다 해당되니까. 그 시장변화를 그냥 넘기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만약 A라는 유통사 이익률이 30%라고 칩시다. 물론 실제 그런 이익률은 없습니다. 여기에 인터넷업체 B의 이익률은 3%라고 칩시다. B의 회전율이 엄청나요. A가 한 달에 하나 팔 동안 B는 매일 하나씩, 한 달에 30개 팔아요. 그럼 나중에 누가 전체 이익률이 좋습니까? 한 개 판 사람과 서른 개 판 사람, 비교가 안되죠. 지금 우리같은 예전방식 유통업은 요즘의 이런 인터넷사업 친구들한테 지고 있어요. 제품 하나에 대한 가격만비교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가 아니에요.”
아드님(이상철 실장)에게 사업비법 한 수를 가르쳐주신다면?
“아비가 바라보는 자식이란 항상 미흡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고 어쩜 옛날 방식으로 보기 때문일 거예요. 제 아들이 지금 무창의 인터넷 사업쪽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 옛날 안목은 안되겠다 싶어 인정하고 지켜보고 있어요. 다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있어요. 고객에게 신뢰받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 그리고 공구에 대한 안목과 열정이죠. 이건 시대가 아무리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제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선배가 있는데, 청계천서 일할 때 한번은 나한테 그랬죠. ‘네가 부정한 짓을 하려면 평생 먹을 것이 나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하지마라’ 안좋은 걸로 평생 먹을 것이 나옵니까? 평생 갈 줄 알다가도 얼마 못가 다들 망하더라요. 신뢰와 성실밖에 없어요. 공구업은.”
마지막으로 업계에 하고 싶은 말씀!
“공구의 1세대나 다름없는 우리들이 이제는 후세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야 합니다. 사장 혼자 배부른 시대는 지났습니다. 현대의 시장흐름에 맞게 사업모습을 설정하고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합니다. 자유경제 시장에서는 특히 모두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오픈해야 하고 직원들도 회사사정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어렵습니다. 어느 한 두 곳에서 재미보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업계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영향력 있는 오너들이 나서야 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다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무창상사부터 해야합니다(웃음). 감사합니다.”
무창 비즈니스 9대 원칙
이무용 사장과 무창 직원들이 사업장에 걸어두는 9대 원칙. 경영과 모든 거래의 기본 방침이자 철학이다.
1. 계약은 생명처럼 여겨라.
2. 서명은 신중하게
3. 막히면 뚫어라
4. 온 세상이 장사거리
5. 올바른 장사를 하려면 시장으로 가라
6. 평생 신용을 지켜라
7. 한 우물을 파라
8. 정보수집에 거래성패가 좌우된다.
9. 체면과 형식에 사로잡힌 자는 알맹이가 없으니 멀리하라.
글 _ 서상희
사진 _ 안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