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최초의 공단은 대구시 인교동 전매청 자리
1968년 북구 노원동 일대에 제3공단이 생겼다. 의문은 여기서시작된다. 그렇다면 대구의 제1, 제2공단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북구 침산동 일대 제일모직 주변 일대가 어떤 공단적 특성을 지닌 산업공간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몇 번째 공단인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제일모직 주변을 제2공단이라고 가정해봤다. 1950-60년대 이곳은 삼호방직, 대한방직, 경북제분, 경북기업, 대구견직, 대건화학, 내외방직, 석산나이롱, 동신양행, 화성섬유, 선일제작, 제일제지, 금화직물, 부광직물, 동아기업, 태양임업, 삼립산업, 대성연탄, 대구신철, 대영안탄, 삼국연탄, 경북연탄 등의 대구를상징했던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최근 대구의 제1공단으로 추정될 수 있는 1921년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 도면을 하나 발견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곳이 인교동이라는 사실이다.
당시에 이미 대구전매청 일대는 공단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제1공단에 들어찬 대규모 시설들은 단연 대구전매청이다. 그 주변으로 유곽, 경북제림소, 목재소, 정미소, 물류창고 등 식민지 사업들이 주를 이뤘다. 특이한 점은 대구최초의 자동차운전 연습장이 현재의 대륙자동차정비소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이 해방이후 반성 없이 수용되었다는 것은 의아하고 아쉽게 느껴진다.

1930년대 경부선 북쪽 개발 시작
1930년대가 되어야 인교동, 태평로를 벗어나 경부선 북쪽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시민운동장 주변이다. 이곳에 지금 현재도 일본에 있는 군제(鍾紡)방직과 조선방직, 석유회사 등이 자리잡게 된다. 한국전쟁기 까지 제1공단의 흐름은 영역에 큰 변화가 없이 흘러왔다. 일본의 섬유회사는 한국인이 인수해서 다시 기계는 돌아갔고 일본인들의 석유회사는 미국계 정유회사 스탠다드 오일과 텍사스 오일로 대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전매청은 큰 변화없이 제1공단의 1인자로서 최대의 매출액과 고용자 숫자를 자랑해왔다. 전매청을 위시하여 인교동, 수창동, 태평로 일대가 당시 대구 최초, 최대의 공단이었다는 사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북성로는 제2공단 제조업체 기반으로 발전
또 하나의 의문은 지금 현재 북성로에 기반한 공구산업이 발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한국전쟁기에 형성된 미군 군수물자에 기반한 블랙마켓을 시초로 볼 수 있지만 도소매 환경만 있다고 해서 공구골목이 형성될 순 없다.
필자가 주목해온 부분은 공구골목의 정착과 관련해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은 북성로 일대의 공업사다. 그리고 2차적으로 대규모의 공업작업과 물류보관을 가능케 한 창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3차적으로는 전후복구기를 거쳐 공구골목 북편으로 형성된 제2공단의 제조업체가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본다.
1943년 종로초등학교 교구지도를 보면 당시 전매청 주변일대의 기업, 업체, 장소들의 명칭이 정확히 알 수 있다. 대구전매지국 동편 일대에 철공소가 많이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현재 국세청 교육관이 있는 주변에 하치타니철공, 요시모토철공, 마에다철공, 와타나베공업사 등 공업사가 밀집해 있었고 목재소로는 스기하라합자회사, 경북제림소, 쿠로카와임목점 등이 있었다. 철공소나 목재소는 모두 기술에 기반한 작업을 하는 곳이므로 공구 및 부품 요구도가 높았던 곳들로 추정할 수 있다.
배후에 창고 두는 공구상 스타일 탄생
아울러 태평로 일대는 ‘창고’가 상징하는 곳인데 마쓰마에창고, 관세창고, 지금은 대안운송회사가 된 마루보시(환성:丸星)창고, 조선방적 물류창고 등이 포진해 있었다. 이런 창고건물은 기계제조, 선반작업, 물류보관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구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아울러 인교동, 북성로 가로상에는 소매에 기반한 상업건물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도로의 전면에 공구상들이 자리잡고 그 뒤편이나 배후지역에 공구창고들을 두는 북성로 스타일의 공구유통상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만물, 태창, 대양, 남선, 동화 공구상 기억나십니까?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미나까이 백화점 자리에 적산관리청이 들어서면서 북성로, 수창동, 인교동, 태평로 일대의 적산을 인수하면서 기계 및 공업사들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공구유통 암시장들은 인교동 삼성상회 주변에서 출발해 동편 일대로 성장해온 것이다.
북성로 1가쪽으로 세신, 삼화, 조일, 삼천리 등의 기계제조업체들이 탄생했고 한국전쟁 수복기 즈음에 북성로 2가쪽으로 만물,태창, 대양, 남선, 이화, 흥업, 신성, 수생, 동화 등의 철물상회가 자리잡았다. 금속재료상으로는 대한, 종광, 대성 등이 자리잡으면서 지금 현재 한국최대의 산업공구골목으로 자리잡게된 배경 풍경이 만들어 진 것이다.
북성로, 인교동, 수창동일대의 공구유통에 기반한 기술생태계는 서울의 청계천, 문래동을 합해놓은 풍경이며 ‘근거리에서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대구만의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글 및 지도제공 _ 권상구 사단법인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진행 _ 서상희 사진촬영 _ 이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