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천이엔씨 - 황민식 대표
 
그대는 ‘되고 법칙’을 아는가

인천 해천이엔씨㈜ 황민식 대표 





한 곳에서 작은 가게로 긴 세월 장사해 이름을 알리는 공구상이 있는 반면 꾸준히 성장하여 대형화를 이룬 공구상도 있다. 인천 송현동에 위치한 해천이엔씨(주)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공구상이다. 규모에 걸맞게 20명 가까운 직원들이 일하는 해천이엔씨(주)와 황민식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특성화 이루고 자체 PB상품 개발
 
해천이엔씨의 규모는 대형 공구상 몇 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초대형 공구상이다. 평범한 가게가 아닌 기업수준의 크기로 성장했다. 이곳을 여러 물건으로 비좁고 어두운 공구상을 생각하면 안된다. 이곳의 통로는 카트가 지나갈 정도로 통로 폭이 넓고 실제 카트도 구비해 놓았다.
“처음 시작 할 때는 공구만 하다가 소형 엔진을 더해서 취급 했어요. 그런데 90년대에는 공구보다 엔진이 마진이 더 높았죠. 소형 발전기 같은 거요. 과거에는 마진이 좋았습니다. 또 당시에 살펴보니 엔진 전문점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인천에서 엔진만 전문점으로 하자. 그래서 엔진만 했었죠. 그런데 7, 8년 전부터 인터넷으로 엔진도 판매가 되니까 가치가 없어지더라고요. 1년 6개월 전부터 안되겠다. 이제는 종합 쇼핑몰 쪽으로 진로를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갑부터 공구까지 다시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것이죠. 아직 멀었어요. 지금 제 머릿속에 구상한 것의 40퍼센트 정도만 세팅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완전 새롭게 개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PB상품도 개발해서 취급하고 있어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체적인 실용신안 특허도 10개쯤 가지고 있구요.” 
1968년생의 황민식 대표에게 사업을 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본래 집이 여유가 없어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자신의 집이 여유가 있었으면 자신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살았을 거라고. 그의 사회생활은 일찍 시작되었다. 군대 전역 후 운전을 하고 싶어 공구상에서 배달 일을 잠깐 한다는 것이 그만 공구업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때가 1992년. 당시 24살의 청년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이 장사의 기본

“24살 때의 나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어요. 원래 군대 제대하고 농협에 입사 대상이었는데 나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직장생활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했죠. 오래전부터 사업을 하고 싶어서 군대 가기 전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았었죠. 열심히 했어요. 과장급보다 많이 받았으니까요. 물론 그때는 모아도 많지는 않았죠. 하지만 열심히 하는 법을 배웠어요. 내 사업이니까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토요일 일요일 근무는 기본이구요.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게 기본인거죠. 초창기에는 그랬어요.”
1996년 작은 가게를 얻어 시작을 했을 때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주말 매출은 금액이 크지는 않았지만 주중 매출보다 훨씬 중요한 매출이다. 주말 밤 11시에 전화가 와서 만 원짜리 물건 가져다 줄 수 있냐 하면 그는 자다가도 지체 없이 달려간다. 그것은 돈이 걸린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거래처에 어떤 다급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해드려야 하는 일이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가게의 신용이 걸린 문제다.


 
소중한 인연으로 사업 성장해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97년 IMF가 왔다. 그런데 그때 해천이엔씨는 더욱 성장한다. 그가 성실히 일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게 봐준 단골 손님 덕분이다. 
“사업 초창기 아주 사람이 특이한 거래처가 있었어요. 건설업을 하시는 ‘서재명’ 대표님이신데 그분이 많이 도와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진상 거래처였어요. 천 원짜리 10번 주문시키고 만 원짜리 15번 주문을 시키는데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빨리 가져오라고 무척 닦달하는 겁니다. 그때 우리 가게에 직원도 한 사람 밖에 없었는데 자꾸 시켜도 이상하게 나는 오기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끝까지 맞춰드렸죠. 당시는 건설현장에서 어음으로 물품대금을 지불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꽤 큰 금액의 물품 대금을 현금으로 바로 바로 주더라고요. 그분이 현금을 바로 주시니까 나는 더 신이 나서 열심히 했죠. 그분도 신용 있는 거래처가 필요하니까 몇 개월 정도 테스트를 해본 것 같아요. 그러다 사석에서도 친해지고 IMF 때 금리가 연 17%였어요. 은행에 가만히 두어도 17% 이자를 받던 때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한테 돈을 저금리로 맡기시더라고요.” 
안전한 은행에만 돈을 넣어 두어도 연 17%의 이자를 주던 시절, 망할 수도 있는 장사꾼이 몇 천 만원의 큰돈을 맡게 되었다. 당시 황민식 대표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70만원 가게를 운영 할 때였다. 
“처음에는 부담 가서 싫다고 했죠. 거절하는데도 맡기시더라고요. 그분은 이 돈이 없어도 자신의 인생에 큰 무리가 없다고. 그러면서 그분이 나는 처음보고 듣지도 못했던 2,000만원 가격의 기계를 주문하셨어요. 그리고 하는 말씀이 다른 가게는 내가 이 기계를 구입하면 2,000만원 달라고 한다. 나도 너한테서 이 기계를 2,000만원 주고 사마. 내가 전에 빌려 준 돈으로 네가 이 기계를 1,000만원에 사던 1,500만원에 사던 네가 알아서 사서 내게 줘라. 그때 그분 도움으로 가게를 키울 수 있었죠. 마치 팀을 이룬 것 같았어요.”
황민식 대표의 특별한 인연인 서재명 대표는 그가 은퇴 할 때 까지 운영하던 회사에서 필요로 한 건설 자재, 공구를 오직 해천이엔씨를 통해서만 구매 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오직 해천이앤씨의 물건을 사준 것. 황민식 대표의 장사는 그런 것이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모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건설업과 관공서 납품 많이 해
 
건설업에 납품을 하면서 주의 할 점은 수금이다. 건설업을 하는 거래처는 부도의 위험성이 있기에 냉정하게 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장사는 ‘정’이지만 수금은 ‘정’이 아닌 ‘비즈니스’의 영역이다. 
“현재는 영업하면서 관공서 쪽을 많이 늘려가고 있습니다. 관공서는 마진은 작아도 떼일 일은 없습니다. 근래에까지 주 납품업체로 건설회사와 많이 거래 했지요. 관공서 납품도 가격을 중요시하는 곳이 있고 서비스를 중요시 하는 곳이 있습니다. 상대가 급하게 물건을 요청할 때는 금액에 상관없이 일을 처리해 드립니다. 아무 때나 전화를 하더라도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들 불황에 몸을 사리는 이때에 과감하게 변신을 거듭하는 이유를 그에게 물어보았다. 
“요즘 경기가 좋지는 않습니다. 3, 4년 전부터 경기가 내려가는 시기인데 저는 오히려 이때가 좋아요. 원래 경기가 아주 좋을 때는 그대로 흘러가면 되지만 경기가 안 좋으면 투자를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경기 사이클이 내려갈 때 준비를 하면 올라 갈 때 흐름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손쉬우니까요. 불황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기회입니다.”
그에게도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몇 번의 어려움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용기를 잃지 않았다. 힘든 일을 만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랬더니 주위의 사람들이 도와주고 그렇기에 다시금 미래를 꿈꾸고 도전할 수 있었다. 변신을 거듭하는 해천이엔씨와 황민식 대표는 더더욱 성장할 것이다. 
 
글·사진 _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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