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털’ 이환기의 가죽공예와 공구 이야기


죽어 있던 가죽에 숨길 불어넣으며 인생 참맛
‘이털’ 이환기의 가죽공예와 공구 이야기

 

“제 별명이 ‘이털’이에요. 이유는 딱 보면 아시겠죠?”
첫인상부터가 범상치 않다. 제법 길게 기른 수염은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싹싹하게 이야기하는 말투에는 오랜 시간 사람과 소통해온 흔적이 묻어 있다. 공방에 진열된 제품들은 딱 봐도 뭔가 다르다. 이 사람 엄청 특이한데?



 

명품 카피 대신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승부

비싼 명품은 이제 그만. 나만의 디자인으로 정성들여 바느질한 수제 가죽제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동네 가죽공방에 명품족이 몰리고 있다. 강남 럭셔리 샵부터 동네 작은 공방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개성 돋보이는 공방을 찾는 사람들은 일산 호수공원 인근의 ‘테소로’를 주목한다.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시중에서 잘 만날 수 없는 특이한 디자인에 한번 반하고, 개성 있고 재미있는 주인장의 모습에 또 한번 반한다. 3년 전 그 동안 취미로 틈틈이 해오던 가죽공예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일산 호수공원 앞 MBC 인근 건물에 자리잡았다.
“가죽공방 중에는 명품 카피를 선호하는 곳도 있어요. 좋다 나쁘다 판단할 순 없지만 핸드메이드의 특징은 나만의 고유한 디자인과 정성이라고 봐요. 그래서 무엇보다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죠.”
그러다보니 까다로운 주문도 많다. 서류가방부터 자전거 거치용 가방, 공연에 쓰이는 가죽 가면까지. 수요가 다양한 만큼 디자인과 성능, 개인취향까지 맞추려면 공이 두 배는 더 들어간다.
“그게 핸드메이드의 매력이죠. 사용하는 그 한 사람을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시간과 노력, 정성을 들이는 거요.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테소로(TESORO)’라는 가게 이름도 같은 뜻이다. 이탈리아어로 ‘보물’ 즉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는 단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만드는 소중한 물건. 가죽공예를 대하는 이 대표의 평소 생각이 그대로 묻어 있다.
 

대학 때 조각 전공, 남다른 공구 사랑

이환기 대표가 가죽만큼이나 친근하게 대하는 것은 바로 각종 공구. 벽면 한 쪽은 재단칼, 커터칼, 송곳, 그라프(가죽에 구멍을 뚫는 도구) 등 가죽용 수공구가 빼곡히 들어찼다. 다른 쪽에는 이 대표가 직접 만든 공구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소형 프레스 기기는 지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공구.
“가죽에 모양을 찍어 내기 위해 프레스 기기를 사용하는데 이런 소형 프레스기는 없을뿐더러 개인이 사서 쓰기에는 값이 비싸요. 워낙 공구에 관심이 많다보니 공사장에서 벽돌 자르는 기계를 철공소에 의뢰해 약간 개조했어요. 가죽공예를 하는 지인들이 서로 만들어달라고 난리죠.”
그가 공구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대학을 조소과로 가면서부터다. 석조를 전공하면서 돌을 자르고 깨고 부수고 다듬는 데 각종 공구가 사용되기 때문.
그가 조소과를 간 과정도 특이하다. 선천적으로 색약(색깔을 구분하는 정도가 약한 시각 증상)이라 서양화과에 합격하고도 신체검사에서 떨어졌기 때문. 열악한 집안 형편을 무릅쓰고 전공을 조소로 바꾸어 재수한 결과 이듬해 중앙대 조소과에 합격했다.
“색약이 조각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재수를 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단지 안타까운 건 통가죽에 곧바로 디자인을 잡아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고 자신도 있는데, 염색을 해야 하는 단계가 있어서 아직은 망설이고 있어요.”
가끔 바느질을 할 때 실색의 미묘한 차이를 몰라 엉뚱한 실을 깁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미묘함을 더 좋아하는 소비자도 있다.



 

버는 족족 공구, 그러나 담뱃값 없어 휴지통 꽁초를  

이환기 대표는 졸업 후 조각가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졸업하고 나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입시미술학원에서 강사를 했어요. 그 와중에 조각을 계속 하고 싶어서 돈을 버는 족족 공구를 사 모았죠. 끌이랑 정은 라면상자로 한 박스씩 기본이고요, 각종 드릴, 절단기, 콤프레샤, 산소용접기, 전기용접기 등등 필요하다 싶은 건 무조건 사 모았죠.”
경제적 기반을 다진 후 조각을 하고 싶다던 꿈은 얼마가지 못했다. 믿었던 친구 때문에 전 재산이 날아간 거다.
“다 털렸어요. 털릴 수 있는 한도까지 전부 다. 중학교 때부터 재수할 때, 대학교까지 내내 함께 그림 그리면서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된 거죠. 당시 솔담배가 200원이었는데 그거 살 돈이 없어서 쓰레기 통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 다짐했죠. 모으는 건 의미 없다. 앞으로는 버는 족족 나를 위해 쓰자.”
입시미술 강사로 올인하며 이름도 날렸고 수입도 상당했다. 그리고 다짐대로 무조건 자신에게 투자했다. 좋아하는 바이크도 사고, 튜닝은 기본이요, 차도 심심하면 바꿨다. 조각의 꿈도 모두 접고 거금 들여 사모았던 공구는 지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그렇게 분풀이 아닌 분풀이를 하며 30대를 보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결혼 적령기도 지나가버렸더라고요. 그리고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됐죠.”
 

결혼 후 시작한 가죽공방, 조각의 꿈 연장선

사실 오랫동안 마음에 둔 여인이 있었지만 결혼은 꿈꾸지 않았다. 그러나 인연이 되려니 25년 동안 연결돼 오던 끈이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아내의 반대로 불규칙하게 생활하던 23년 입시강사 일을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면서도 나이가 들어도 오래할 수 있는 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갖고 있던 가죽가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르고 깁고 하다 보니 저절로 가죽을 만지게 됐어요. 송곳 달궈서 구멍 뚫고 집에 있는 바늘로 깁고. 혼자 난리였죠.”
그렇게 시작한 가죽과의 만남이 지금은 새로운 인생 방향이 됐다.
“수입요? 예전보다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도 아내가 원하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조소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가죽공예로 그 꿈을 이어가고 있어요. 오히려 더 잘됐죠. 돌가루 대신 가죽냄새가 건강에도 더 좋거든요. 하하.”
이환기 대표가 생각하는 가죽공예의 매력은 뭘까.
“가장 큰 매력은 도구와 장소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거예요. 목공용 테이블 쏘처럼 큰 공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도자기공예처럼 가마가 있는 장소에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요. 단지 집에 흔히 있는 칼, 바늘, 송곳 정도만 있으면 식탁에서 뚝딱 만들 수 있거든요. 또 하나의 장점은 죽은 것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고 해야 할까. 원래는 죽어 있던 가죽을 만지고 다듬어서 소중한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참 의미가 있다고 봐요.”
남다른 역경을 딛고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이환기 대표. 세월이 더할수록 빛을 발하는 가죽처럼 테소로 또한 세월을 거듭해 명품 브랜드로 한발 나아갈 일만 남았다.

 


 

이환기 대표가 말하는
가죽공예에 대한
이해와 오해

Q. 가죽으로 만들면 비싸다?
A. 결론부터 말하면 NO. 가죽제품이 비싸지 가죽은 비싸지 않다. 가죽 제품이 브랜드를 달 때 비싸지는 거다. 직접 가죽을 사서 만들어 보라.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멋진 제품을 내 손에 들 수 있다. 퀼트가 취미인 주부 회원 중에 한명은 가방 하나 만드는 데 퀼트보다 싸게 든다고 한다. 그러면 말 다했다.

Q. 가죽공예는 어렵다?
A. 이것도 NO. 모든 핸드메이드가 그러하듯 시간 싸움이다. 천천히 잘 자르면 되고, 차분히 세월을 낚으며 바느질하고, 수시로 마르는 정도를 파악해 마감재를 바르면 된다. 첫째도 둘째도 ‘차분히’다. 1년 정도만 꾸준히 배우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 앞서 말하지 않았나. 가죽공예는 집에서 흔히 보이는 최소도구로도 가능하다고.

Q. 여성과 젊은 층이 주로 선호한다?
A. 또 한번 NO. 물론 여성의 비중이 더 높긴 하지만 남성들도 많이 찾는다. 우리 공방만 해도 일식집 사장님, 금융권 회사원 등 평범한 사람도 있고 인테리어 업체 운영자처럼 사업을 위해 수강하는 사람도 있다. 연령층도 다양하다. 고등학생부터 환갑 넘은 분까지 온다. 성별, 나이 고민하지 말고 관심 있으면 도전해라.

Q. 명품과 일반제품은 차이가 난다?
A. 이건 YES. 분명 차이가 난다. 핵심은 디자인이다. 명품백이 심플한 이유는 통가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잘라서 버리는 것에 구애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재단할 수 있어 디자인이 깔끔하게 나온다. 반면 가격이 낮아질수록 재료를 아끼기 위해 자투리를 활용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산만해진다.

Q. 그렇다면 좋은 가죽제품이란?
A. 가죽 제품은 당연히 가죽이 좋아야 된다. 무늬나 염색, 디자인이 아니라 소재 자체가 우월한 것이 있다. 즉, 염색이나 무늬가 덜한 것이 좋은 가죽이다. 가죽이 긁히거나 흉터, 피부병이 났을 경우 염색이나 무늬가 들어간다. 깨끗한 가죽일수록 그대로 살리기 위해 가공이 덜 된다. 이것저것 따지는 것도 좋지만 의미 있는 제품이 최고다. 가죽과 함께 의미도 오~래 가니까.

글 _ 배선희 · 사진 _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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