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양의 해, 대관령 양떼목장을 가다


2015 양의 해
대관령 양떼목장을 가다


양은 개 다음으로 인류의 가축이 된 동물이라고 한다. 그 특유의 생김새와 고마운 쓰임 덕분에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초지대를 찾아가야 방목하는 귀여운 양들을 만날 수 있다. 2015년 양의 해를 맞아 순수하고 청정한 기운을 내뿜는 대관령 양떼목장을 찾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양들의 조화

강원도 평창군 횡계리. 바람이 불 때마다 푸른 초원은 흔들리고 양들이 모여 풀을 뜯는 모습은 평화롭다. 큰 소리 없이 천천히 풀을 뜯는 양들을 보노라면 우리가 가진 근심과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2014년은 다나다난했던 한해였다. 많은 사건과 사고들로 우리의 마음은 큰 상처를 받고 아파했고 걱정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간다. 지나간 일을 잊어서는 안되나 새해가 밝았다.
‘대관령양떼목장’은 대관령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양을 만져볼 수 있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목장에 도착해 매표를 하고 완만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드넓은 초지와 더불어 양들을 볼 수 있다.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이곳에 터를 잡고 목장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제가 서른일곱 살이었던 1988년 여름이었습니다. 그 당시 개념조차 없었던 ‘관광목장’을 대한민국 최초로 만들어 보겠다고 서울에서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관령에 들어왔어요.”
‘대관령양떼목장’의 전영대 대표는 신지식인 농업인이다. 1986년 대관령에 여행을 왔다가 초지 위에 가축들이 풀어져 있는 모습에 반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초지 위에서 동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초창기 노고는 피할 수 없었다.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는 워낙 외딴 곳이라서 전기는 물론 수도 시설도 없었습니다. 매일 밤 촛불을 켜고 생활하고 개울가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정도로 열악했어요. 목장을 하려면 축사도 지어야 하고 이것저것 만들기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전혀 몰라서 틈틈이 공사판에서 일을 시작해 배웠어요. 망치질부터 벽돌 쌓는 것까지 이것저것 열심히 배우고 목장에 돌아와서는 배웠던 기술들을 활용해서 양들이 머물 축사도 짓고 ‘관광목장’이라는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었습니다.”
그렇게 15년 정도 목장을 가꾸어 나가자 목장의 아름다움이 입소문 나면서 방문하고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양 목장이 되었다. 특히 양들에게 먹이를 주는 건초주기 체험이 큰 인기다.
 

털과 고기, 젖을 주는 양

보통 축산업을 하면 소나 돼지를 키우게 된다. 그러나 전영대 대표는 특이하게도 양을 선택했다. 상대적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양을 키우는 목장이기에 사람들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양이라는 것이 귀엽잖아요. 소는 너무 크고 또 화가 나면 위험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양은 특이하고 사람들이 많이 접할 수 없고 외국에나 나가야 볼 수 있는 귀한 가축이에요. 또 순하고 화를 내지도 않고요. 이빨도 아랫니만 있어서 물려도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양이 예전부터 있었죠. 역사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에도 양이 있었거든요. 12지신에 들어가는 동물 중 하나가 양이니까요. 그러나 점차 키우는 사람이 사라지면서 개체수가 줄어든 거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양을 분양 받는 것부터가 고비였다.
“수소문을 해보니 남원에 양을 키우는 종축원이 있더군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한국과 호주가 수교협정을 맺었을 때 축산사업진흥의 일환으로 들어온 거죠. 양은 종류에 따라 고기도 먹을 수 있고 털도 쓰고 젖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나 돼지 닭에 밀려 양을 키우는 농가는 거의 없게 되었죠. 종축원은 양보다 한우를 더욱 연구하고 키우겠다고 양을 내보내게 됩니다. 덕분에 제가 종축원에서 키우던 양 200마리를 전량 구매하여 목장에 들일 수 있었죠.”
 

버리게 되는 양털 안타까워

어렵게 양 목장을 시작했지만 유지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정부의 아무런 지원정책 없이 홀로 목장을 운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양 목장은 소나 돼지를 키우는 축산농가와는 달리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빠져 있다. 그러다보니 축사 하나를 짓더라도 많은 비용이 든다. 그에 비해 양을 키워서 얻게 되는 이익은 크지 않았다고.
“관광농업을 꿈꾸었기에 양을 팔아서 얻는 이익은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1년에 한번 양의 털을 깎는데 상당한 양을 그냥 버리기도 하거든요. 우리나라에는 양털을 깨끗하게 세탁을 하고 가공하는 공장이나 설비가 없어요. 예전에는 한 섬유회사에서 털을 수거해서 가공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설비도 없어지고 해서 폐기를 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업자에게 드리기도 해요.”
본래 양털은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 고급원단의 재료로 손꼽힌다. 양모로 만든 정장은 고급정장에 쓰이는 재질로 통기성과 착용성이 좋은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양모 원단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만큼 양 축산업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대관령양떼목장’도 양을 키우다가 이따금 양고기를 필요로 하는 손님에게 한 마리씩 판매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근래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리자 ‘대관령양떼목장’과 비슷하게 양 목장을 운영하겠다며 양을 대량으로 사가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데이트 장소, 먹이주기 체험 Good!

26년간 가꾸어 나간 ‘대관령양떼목장’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각광 받고 있다. 관광소득이 발생한 것은 2002년부터다. 슬로우나 웰빙 등 가치관이 바뀌면서 ‘대관령양떼목장’의 평화로운 시골풍경이 인기를 끈 것이다. 예쁜 유럽 산골의 목장 느낌을 주는 풍경은 사람들을 매혹했다.
“2002년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웨딩사진 촬영지로 이용되는 정도였죠. 계절적으로는 아무래도 봄이나 여름에 사람들이 더욱 좋아합니다. 풀이 자라고 양들이 그 풀을 뜯어먹을 수 있게 방목을 하거든요. 그때는 많은 아기양들이 자라납니다. 보통 2월, 3월에 아기 양들이 태어나서 자라죠. 추운 겨울에 아기 양들이 태어나면 발육이 더디기 때문에 평소에는 암수로 구분을 시키다가 가을에 합방을 시켜 겨울을 축사에서 보내고 2월, 3월에 출산을 해요. 그래서 따뜻한 봄에 어린 아기 양들이 뛰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나 돼지처럼 우리에 가두어 놓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방목을 하기에 냄새도 많이 안 나고 양들도 건강합니다. 사람의 손길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고요. 그래서 봄이 목장에서 제일 바쁜 계절입니다. 각종 공구를 활용해서 축사나 우리도 손을 보고 양털도 깎고요.”
많을 때는 한번에 100마리의 양이 태어나기도 한다. 어린 양이 성체가 되기까지는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어른 모습만 갖추는 것은 1년이면 충분하다.
털과 고기 그리고 젖을 주는 다재다능한 양들. 봄이 오면 마음껏 뛰어놀 모습을 상상하며 무럭무럭 커가길 빌어 본다. 그리고 초원을 자유롭게 누비는 양처럼 우리 공구인들도 올 한해 푸른 양의 기운을 받아 자유자재 승승장구하길 기도해 본다.
글, 사진 _ 한상훈

 



을미년 양이야기

이성계는 양꿈 꾸고 왕이 되었다



양띠 해, 며느리가 딸 낳아도 구박 안 해

양은 순박하고, 순종적이고 부드러운 존재다. ‘양은 온화하고 온순하여 이 해에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양하면 곧 평화를 연상하듯 성격이 순박하고 온화하다. 양은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동료 간의 우위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갖지 않는다.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 좀체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이기도 하다.
상형문자인 양(羊)은 맛있음(味),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좋음 등으로 이어진다. 즉, 큰 양이란 ‘大羊’ 두 글자가 붙어서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 아(我)의 좋은 점(羊)이 옳을 의(義)자가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양의 습성과 특징에서 착하고(善), 의롭고(義), 아름다움(美)을 상징하는 동물로 양을 인식했다.
 

위기에 당황하지 않고, 순하고 정의로운 양띠

양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며,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낙랑, 삼국,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출토유물, 조각, 그림 등에서 만나는 양의 모습은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은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와 순종, 정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조선시대 양 그림 가운데 황초평과 관련된 「금화편양도(金華鞭羊圖)」가 눈에 띤다.
‘황초평은 단계(丹溪) 사람인데 15세 때 집에서 양을 치라고 내보냈더니 신선이 어질고 착한 것을 보고 데리고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가서 신선도를 닦게 하니 40여 년 간 집을 잊고 살았다. 그 형이 시중에서 한 도사를 만나 아우의 행방을 물었더니 금화산 중에 황초평이라는 양치기 소년이 하나 있다고 가르쳐 준다. 도사를 따라가서 아우를 만나보니 아직도 15세 때 모습 그대로이다. 양을 친다더니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산 동쪽에 있다고 한다. 가서 확인하자 양은 없고 흰 돌만 산에 가득한지라 형은 어리둥절했다. 이때 황초평이 ‘양들아 일어나라’하니 수만 개의 흰 돌이 변해서 양이 되어 일어나는데 수만 마리가 되었다.’
이 「황초평전」 설화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이 「금화편양」이다. 채찍을 들고 있는 소년이 황초평이고 그 뒤에 흰 양들이 따르고 있다.
이 외에도, 초원 위에 흰 구름의 형상을 수놓으며 몰려가는 양떼의 기독교적 성화(聖畵)의 풍경은 가장 서양적인 전원의 목가를 낳았고, 서구의 기독교문명을 받쳐온 성경에서 양 이야기는 무려 500번 이상이나 인용된다.
 

양꿈은 임금될 꿈?

천성이 약하고 착한 탓에 해로움을 끼칠 줄도 모르면서 오직 쫓기고 희생되어야 하는 양은 설화, 꿈, 속담 등에서도 언제나 유순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통한다. 그래서 ‘아무리 못된 시어미라도 양띠 해 손녀를 낳으면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에 양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양을 잡으러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놀라 꿈을 깨었다. 이 꿈 이야기를 무학대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하리라는 해몽을 했다. 즉 한자의 ‘羊’에서 양의 뿔에 해당하는 획과 양의 꼬리에 해당하는 획을 떼고 나면 ‘王’자만 남게 되어 곧 임금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 이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며 양꿈은 길몽으로 해석되었다. 지금까지도 양꿈에 대한 해몽은 희생, 재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으로 해석한다. 이런 연유는 목축민족에게는 양이 재산의 척도가 되고, 제단에 바치는 희생물이었고 양의 성품이 티없이 온순해 착한 사람으로 의미하게 되고, 기독교문화에서 성서에 나오는 양과 관련되어 종교인의 상징이 된다.
 

고지식하고 순박… 잠 안올 때 세는 양은 안락함의 상징

양은 언제나 희생의 상징이었다. 양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속죄양일 것이다. 동양에서 양은 일찍부터 영험스러운 동물로 알려졌다. 소, 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여 왔고 고기의 맛이나 질도 그만큼 좋은 상위권의 동물이었다. 고대 동양에서는 소는 소의 솥, 돼지는 돼지의 솥, 양은 양의 솥에 각각 삶아서 제물로 썼으며, 각 솥은 독특한 장식이 있었다. 특히,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노후를 봉양하는 양의 모습에서 효도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효의 상징이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우리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양띠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서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보통 잠이 오지 않을 때 양을 센다. 영어의 sheep과 sleep의 연상이기도 하지만 양 떼에서 연상되는 안온한 분위기와 이미지가 스르륵 잠들게 할 것 같다. 을미년 새해에는 수호동물인 양처럼 평화롭고, 모든 일이 순종되는 한 해가 되리라 기대한다.

글 _ 천진기(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문학박사) · 진행 _ 장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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