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구 전산개발 이야기

한국의 공구 전산개발 이야기


전산화라는 꿈
 
985년 여름, 전산을 처음 개발할 때의 이야기다. 재고가 많아지고 품목이 다양해지면서 관리가 힘들어졌다. 이 어려움을 푸는 데는 오직 전산화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할 뿐 방법을 몰랐다.
똑똑한 직원을 골라 전산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별로 신통한 답이 안 나왔다. 아무런 기초 지식이 없는 직원을 학원에, 그것도 한 달 보내놓고 결과를 바랬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당시 공구업계에서는 전산을 사용하는 데가 없었다. 다른 데서 찾아보니 자동차부품을 하는 업체가 있어 2년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개발하는 것을 보기만 해서는 실제 내 일이 풀리지 않았다.
1987년에는 전산공무원 한 분이 야간에 시간을 내 도와주었지만 이 역시 답이 안나왔다. 1988년 당시 경리를 보던 배용호 씨(현 대구 에이스툴 사장)와 정원 시스템의 정원종 씨를 서로 연결해 전산개발에 착수했다. 상호나 상품표기를 하는데 영어나 외국어가 많아 애를 먹었다. 그러다 1989년 7월 15일에 마침내 처음으로 전산화를 성공했다. 수준이라고 해봐야 지금 봐서는 아주 낮은 급이다. 처음에는 많이 틀리기도 하고 사람 손보다 느릴 때도 있었지만 차츰 개선해나갔다. 우리회사가 전산화를 하고 난 후 1년 뒤에는 남도기공, 2년 뒤에는 경북통상(현 케이비원) 등서도 전산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산이 본격적으로 업무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993년 7월에야 IBM으로 개발해 실무적용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1월 8일에 신세계 I&C와 약 30개월에 걸쳐 완료했다. 우리업계는 물론 한국 유통분야에서도 획을 그을 만한 일이라 자부한다.

행동이 운명이다
 
만일 그때 전산화를 하지 않았다면, 또 중간에 포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30년간 무모하리만큼 전산에 매달렸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들고 그 든 만큼 성과도 내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오늘날 이만큼이나 장사를 할 수 있다 생각한다. 만약 중간에 그만두었다면, 사업 역시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곤란을 느끼지 않는 한 지혜를 내지 않는다. 공구상을 하면서 그 많은 어려움과 고민을 겪었기에 전산을 생각해내었을 것이다. 이렇듯 전산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힘은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공구상 전산화’라는 꿈을 머릿속에만 그리지 않았다. 직접 행동으로 옮겨 좋은 곳을 찾아가고 사람을 만났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실현하는 것이 힘이 된다. 잠재적인 능력이나 재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나처럼 재능이 없어도 일단 행동하고 찾아보는 것이 실제 사업을 할 땐 더 유효하다고 본다. ‘타석에 들어가지 않고는 홈런을 칠 수 없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이번 3월에 한국산업용재협회 임원들이 대구지회를 방문했다. 총 82개 업체를 돌아보며 깜짝 놀랐다. 공구상사마다 진열이 잘 되어 있고, 매장은 물론 전산관리까지 아주 멋지게 되고 있었다. 올해 초 보았던 중국의 공구상 모습과는 반대의 모습이었다. 특히 대구검단유통단지 산업용재관은 아주 경쟁력 있는 체계를 보여주었다.
 
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면 진짜 된다

대구의 공구상이 이렇듯 앞서가는 것은 전산화 때문이다. 우리회사가 제일 먼저 했기 때문에 그 여파도 있었을 것이다. 전산이 잘되는 곳이 그 업계를 끌고 간다.
시작이 반이라 했다. 된다고 생각하면 +50점이 있어 50점만 더 따면 100점이 된다. 그러나 안된다고 생각하면 -50점이 되기 때문에 150점을 더 따야 100점이 된다. 불황이다, 저성장이다하는 말들이 들려오지만 된다는 생각으로 공구상 하시는 사장님들이 실행해가시면 좋겠다.
 ‘나중에’라는 말만큼 고약한 말이 없다. 스스로 성공기회를 가로막으려고 세우는 장벽과도 같다. 불황과 호황은 엎치락뒤치락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환경만 탓하기보다 품은 계획이 있다면 바로 지금 실행하고 행동해 방법을 찾는 게 좋다. 목표를 채우는 2016년 봄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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