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아니라 독수리입니다.


닭인 줄 알았던 독수리

어느 사냥꾼이 독수리 새끼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독수리를 닭과 오리들이 있는 우리 속에 넣고 닭 모이를 주며 키웠습니다. 몇 년 후 동물학자는 닭장 속 독수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독수리의 여러 행동들이 영 독수리 같지 않고 닭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닭을 가져간 사냥꾼은 “저 독수리는 닭으로 길러졌으니 이제 독수리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동물학자는 그 독수리에게 아직 본성이 남아 있을 것이라 믿고 나뭇가지 위에 올려도 보고 지붕 위에 올려도 보며 날개해 봤습니다.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동물학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들을 보면 분명 달라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독수리를 데리고 산꼭대기로 갔습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독수리들이 유유히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독수리는 그제야 ‘까악’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차게 날아올라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습니다.
닭장 속에 살았더라면 영원히 닭이라 알고 있을 터인데, 독수리를 보게 되자 자기 안에 있던 본성을 찾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쩜 더 위대한 DNA가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자신을 질책하는 말일지 모릅니다. 공구장사를 하지만 독수리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찾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열 평 가게 팔자, 따로 있는 게 아니야
 
1981년 대구 인교동으로 옮겨와서 열 평 정도의 가게를 운영하던 나는 점포가 비좁아 앞집 2층 창고를 세 얻어 사용키로 했습니다. 하지만 2층이라 짐을 올려두는 것을 주인이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점포자리를 다시 찾아봤는데 몇 년 째 비워둔 자동차판매전시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전시장 150평은 너무 커서 공구상을 하기엔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렇게 큰 점포에 공구상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또 공구상에 세를 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심 상당히 고심을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어렵게 협상을 하여 겨우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제일 큰 점포가 됐습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큰 점포에 들어가니 넓게 장사하는 머리가 트였고, 결국 그 건물의 부속건물까지 다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의 용기가 사업의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간의 놀던 물을 키워놓고 보니 거기에 맞춰 내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공구상이 무슨’이라고 생각하며 만날 10평짜리 가게에 있었다면 지금도 10평 가게에 있었을 것입니다.

남이 안할 때 해야 운명 바꾼다
 
1973년 1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대구매일신문에 구혼광고를 내었습니다.
“검댕이 숯구이 총각 바보 온달의 아내 될 자는 이 땅에 없는가?”
당시로서는 구혼광고가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개인이 신문에 광고를 내는 일은 생각도 못할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회갑을 맞으셨는데, 며느리 없는 회갑잔치가 뭔 소용이냐며 아예 가게에 매일 나오셔서 저를 채근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해진 사람도 없었고 조그만 버스주차장 앞에서 공구상(직원 2명)하는 형편에 좋은 맞선 자리도 들어오지 않을 때였습니다. 결국 장난인지 배짱인지 모를 그
런 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며칠간 다른 전화를 못 받을 만큼 전화가 왔습니다. 물론 그 일로 결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광고를 본 친구들의 주선으로 다시 선을 봐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러니 광고 덕분이 아니라고도 말 못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어떤 어려움에 딱 부딪힐 때면 그때 난 데 없이 신문에 광고를 냈던 용기를 떠올려 봅니다. 엉뚱하지만 해보기, 남과 다르게 해보기, 눈치 보지 말고 해보기! 그런 용기 덕분에 당시 버스주차장 앞 공구상에서 그래도 오늘날 이만하게 성장했나 봅니다.

배의 목적은 항구가 아니라 파도를 넘는 것
 
공구상 하시는 많은 사장님 중에서 종종 틀에서 벗어나시는 분들을 봅니다. 공구 제조를 하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사업 활동의 넓이를 바꾸어 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는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크게 보면 더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조금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도 참고 이겨가야 합니다. 18세기 영국 사람들은 호주로 여덟 달 반 배를 타고 가서 결국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습니다. 미래는 꿈을 꾸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갑니다. 배를 만든 목적은 편안한 항구에 두기 위한 게 아니라 거친 파도 치는 바다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껏 잘 몰랐던 나 자신은 어쩜 훨씬 더 험하고 거친 파도를 넘을 수 있는 성능 좋은 배일지 모릅니다. 조그마한 닭장 속 닭이 아니라 훨훨 온 세상을 넘나드는 독수리일지도 모른다 말입니다. 자기 속에 감춰진 보배 같은 재능을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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