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내 이름은 ‘책임’ 


지난 8월초 무렵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출판인이자 잡지편집장인 최 아무개씨를 알게 됐다. 대뜸하는 말씀이 “한국의 많은 공구상을 보면 대부분 그만그만했는데 크레텍이 이정도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이 뭐냐?”는 것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지만 선뜻 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분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책임이라는 이름을 썼기 때문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 회사의 바탕이 된 책임정신, 누구도 생각 못했던 독특한 이름 파워가 이 회사에 작용했다.”
두고두고 그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1971년, 그러니까 벌써 43년전이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자전거에 공구를 싣고 버스주차장에 가서 버스 운전수와 조수들에게 공구를 팔았다. 일명 행상이었다. 당시는 거의가 적당히 가격을 올려 불러서 다시 깎아주며 거래를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비록 공구행상을 하더라도
받을 값만 받자고 생각했다. 에누리 없는 정찰제 행상을 했다. 처음에는 다 살 듯이 하던 사람들도 가격을 안 깎아준다고 원망하며 가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내겐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가격은 흥정하지 않고 받을 만큼만 받는다는 원칙, 절대 상품을 속이지 않는다는 원칙, 제품을 갖다 주기로 한 약속시간은 꼭 지킨다는 원칙이었다. 행상주제에 별 원칙이 다 있다고 생각한 고객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이 원칙을 지켜가자 정말이지 행상주제에 꽤
인기가 있었다. 그해 연말에는 점포를 얻을 정도가 됐다. 단골들에게 물었다.
 
“제가 가게를 엽니다. 간판에 가게 이름을 뭐라고 할까요?”
“당신이름이 책임보장 아니요. 다른 이름이 뭐가 필요한가.”
아마 몇몇 분의 말씀으로 기억나는데, 뵐 수는 없지만 정말 가슴깊이 감사드린다. 그렇게 ‘책임보장공구사’는 출발하게 됐다.



 

무책임공구사라고? … 책임을 붙이지 말걸

그런대로 장사는 잘되었다. 하루는 버스기사와 조수가 문짝이 떨어지도록 가게 문을 세게 밀쳤다. 얼굴은 이미 화가 나 시퍼렇게 되어 있었다. 운행 중 펑크가 났는데, 오일작기가 작동이 안 돼 그날 태우고 가던 손님들에게 다 환불해주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신 때문에 장사 망쳤어. 가게 이름이 뭐 책임? 웃기네. 이건 완전 무책임공구사구만”
그러면서 가져온 오일작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책임’이라는 상호를 안 붙인 것보다 못했다. 책임의 반대인 무책임, 이것만큼 무서운 말은 없었다. 어떻게든 무책임만은 면하고 싶었다. 고민해서 얻은 결론은 ‘내가 하는 모든 상품을 책임을 지자’였다.



가격표 다 오픈하고 책임지겠습니다

1987년에 가격표를 처음 만들어 가격을 오픈했다. 가격을 모두 나타내면 사는 사람은 편리해서 좋지만 경쟁사가 우리가격보다 더 낮추어서 팔 게 뻔했다. 직원들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오늘까지 정찰판매를 했는데, 규정을 정하고 관리를 하면 가능하다”라며 밀어붙였다. 물론 처음 만들었을 때는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매출이 푹 떨어지고 경쟁사들이 우리 가격표보다 싸게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사해보니 공구는 품목이 아주 많아서 모든 품목에서 우리를 따라오기는 힘든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잘 팔리는 품목은 가격을 내리고 반면에 다른 품목은 가격을 올리는 것이었다. 고객이 그걸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가격을 오픈한 채 ‘책임’이라는 이름을 거니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점점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고객이 나를 믿어준다. 고객이 책임기업사를 믿어준다’ 이 생각을 하면 고객이 원하는 가격과 상품을 책임지고 공급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한대로 생겨났다. 나는 지금까지 10만여 상품의 모든 것을 오픈하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것, 책임지고 끝까지

1990년 해외무역을 하기로 했다. 대만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대만제품이라 하면 한두 번 쓰고 버리는 싸구려 조잡품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직접 현지에서 보니 대만에는 두 가지 제품이 있었다. 품질 좋은 산업용 프로 공구가 있고, 하나는 가정에서 간단히 사용하는 DIY용 공구였다. 무역업자들이 모두 DIY만 들여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대만산은 싸구려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나는 비록 Made in Taiwan이지만 산업용 프로공구를 가지고 무역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일본의 프로공구보다는 가격이 많이 낮았다. 나를 믿어주는 고객에게 가격과 품질 모두에서 만족하는 제품을 ‘책임지고’ 공급하기로 했다. 처음 시작한 브랜드가 지니어스(Genius)였다. 대만제라니까 거들떠도 안보던 고객들이 책임에서 한다니 다시 한 번 제품을 돌아봤다. 나는 큰소리를 쳤다.
“한 개 부러지면 두 개 드리겠습니다. 책임보장하겠습니다!”이후로 한국에서 소켓렌치 유통에서 계속 1등을 하고 있다. 고객의 성원 덕분이고, 책임에 대한 믿음 덕분이라는 것이 더 기쁘다.



43년전 ‘책임’ 이름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고객과의 거래에서 CMS(자동이체시스템)를 실행할 때도 반대는 많았지만 결국 고객은 우리를 믿고, 우리회사는 고객을 책임지는 정신 하나로 편리한 거래제도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뭔가를 할 때는 늘 책임이 따른다. 반대가 많아용기가 나지 않을 때, 그리고 정말 해낼 수 있을지 자신 없을 때면 답답함과 고민으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보곤 했다.내겐 무엇이 있는가. 어떤 특별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영수라는 맨 몸뚱어리 하나를 보면 참 별 것이 없다 싶다. 지식도 없고 자본도 없다. 하지만 고객들이 붙여주신 ‘책임’이라는 이름 두 자로 지금까지 오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진즉에 그만뒀을 것이다. 한번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 일단 한번 책임지고 해보자는 생각만 있으면 뭐든 다 해내었던 것 같다.
오늘 비가 온다. 벌써 가을을 알리는 비다. 주마등처럼 지나간 지난 43년을 돌아본다.
“1971년 그날, 공구행상하던 저를 책임보장이라 불러주던 운전기사님, 조수님, 차장님과 차주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대한민국 산업공구계에 체계와 질서를 잡아가고 또 이렇게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400년전 허 준 선생은 우리나라 사람을 위한 동의보감을 만들었다. 비록 나는 그분의 학식과 덕망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어쨌든 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국의 산업공구계를 더욱 잘 체계화시켜 앞으로 국가산업 발전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 또한 내 인생에, 내 직원에게, 또 우리업계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_ 최영수 발행인, 크레텍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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