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다큐극장 청계천 24시

다큐극장 청계천 24시

청계천 공구상가는 현대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공간이다. 전쟁 이후 불결과 빈곤의 대명사였지만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한 시대 중심에 우뚝 서기도 했다. 청계천 복원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현재 상당 부분 쇠락해진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쇳가루 날리는 오래된 골목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그대로 묻어난다.



<오전 08:00>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도 청계천의 아침은 부지런하게 밝아온다. 대흥기기 천영민 부장의 손길이 분주하다. 밤 사이 내린 눈이 쌓였다 녹으면서 가게 앞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묵묵히 청소를 끝내고 익숙한 듯 차양 아래로 차곡차곡 물건을 쌓아 진열한다.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내고 언 손을 녹이는 천 부장. 오늘하루 해야할 일을 체크하지만 예전만큼 바쁘지는 않다. 전성기 때는 새벽녘에 시작해도 하루가 짧았지만 2014년 현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새벽 6시에도 문을 열었어요.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들이 한시라도 빨리 물건을 떼 가려고 줄 서서 기다리곤 했거든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도 그때가 참 일할 맛났죠.”
청계3가 사거리부터 세운교까지 강변을 따라 들어선 가게들과 을지로3가 지하철역 인근까지 이어지는 구역이 우리나라 대표인 청계천 공구거리다. 예전에는 골목 구석구석 공구상과 기술자들의 일이 넘쳐나 산업 역군이 모이는 지역으로 선망 받았지만 청계천 복원 이후 급격하게 상권이 무너졌다. 청계천변과 지하철역을 끼고 있는 공구상가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 골목 안쪽에는 비어 있는 상가가 대다수다.
한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대흥기기를 일궈온 김태홍(66) 대표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요즘은 잠이 잘 안 와요, 참말로. 가게 걱정 때문에... 옛날에는 이 동네가 권리금만 몇천이었어요. 그것도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 지금 권리금? 0원지. 가게 차리려는 사람이 없으니까. 임대료도 절반 가까이 내렸어요. 1만불 시대는 행복했는데 2400만불 시대에 왜 더 힘들어야 되는지, 원...”
세월 덕분에 단골이 있는 것이 가장 큰 힘이다.



<오전 10:00>

드르르륵! 양공판금 셔터문이 열린다. 기술자들이 밀집한 뒷골목은 큰 거리에 비해 문 여는 시간이 좀 더 늦다. 쇠 자르는 소리, 깎는 소리, 용접하는 소리 등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공구거리 뒷편에 위치한 기술자들의 골목에 들어선다. 어른 두 명 나란히 걷기에 비좁은 골목골목이 연결돼 있고 7,80년대풍 건물에는 시대극에 나올 법한 낡은 손간판이 붙어 있다. 영업을 중단한 건물이 드문드문 섞여 있어 어두컴컴한 미닫이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괜히 기웃하게 된다. 이 골목 사람들은 기름때 묻고 무뚝뚝하게 보여도 가벼운 목례 한번에 밝게 웃으며 응해주는 천진함을 갖고 있다. “이 동네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양공판금 사장님의 말에 인심 또한 그런 것 같다.
변한 게 있다면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청계대중탕도 변한 것 중 하나다. 목욕 사우나는 공구상과 기술자들의 유일한 여가활동이자 하루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한 때 ‘호텔’로 불렸던 청계대중탕은 입구가 막힌 채 폐가로 남아 있다.
바로 앞 구멍가게 송현선(78) 할머니는 이러한 흥망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왔다.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는다는 송 할머니.
“새벽 6시에 도착해서 저녁 7시에 문 닫어. 요즘은 사람도 별로 없어. 손님들도 담배나 사가지. 떠난 사람들? 많지.”
담배를 사러 들어온 단골손님 하나가 송 할머니께 한방차를 건네고 나간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골목을 지나가는 한방차 손수레에서 산 것이다. 청계천 일대를 돌며 한방차를 팔아온 지 꽤 됐다는 유우형(75)씨.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 스무 잔도 정도는 팔아. 고등학교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 일했는데 한방차 만들어 파는 게 돈이 되겠다 싶어서 시작했어. 근데 아직도 하고 있어. 허허.”





<정오 12:00>

건물에서 삼삼오오 나온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근처 밥집. 이 일대는 오래된 맛집이 많아 외지인도 많이 찾아온다. 대표적인 식당 중 하나가 을지면옥. 평양식 냉면과 수육, 편육이 일품이라 북녘이 고향인 어르신들이 주고객이다. 이곳 외에도 삼계탕, 곰탕, 삼겹살, 민물장어 등 종로 일대까지 구석구석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이 많다.
하지만 공구상과 기술자들의 점심은 이보다 훨씬 단출하다. 이들의 주메뉴는 백반. 찌개 종류를 바꿔가며 주문하기도 하고, 월로 대놓고 먹기도 한다. 예전에는 거래처 손님이 자주 들락거리며 고기 굽는 날도 많았지만 이제는 뜨끈한 백반 하나면 충분하다. 직원 없이 혼자 있거나 가족 한둘이 돕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가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골목 곳곳에 허름하지만 오래된 밥집들이 숨어 있어 전화 한통이면 단출한 점심상이 배달된다. 오토바이 대신 머리에 밥 쟁반을 이고 배달 가는 풍경이 익숙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랜 세월 골목 상인들의 허기짐을 채워준 밥상이다.
후식은 가게에 비치해 놓은 1회용 커피나 자판기 커피로 대신한다.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는 ‘찻집’에 전화를 걸어 500원짜리 배달커피를 주문한다. 찻집은 다방과 달리 전화로 주문을 받고 종이컵에 커피를 태워주는 방식이다. 특히 기술자들은 쇳가루 날리는 작업 공간 때문에 직접 차를 태워 마시기보다 찻집을 주로 이용한다. 다방은 점차 사라진 반면 찻집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 많다.

<오후 14:00>

점심과 후식 시간이 지나간 오후 2시. 장사기계공구상가 안쪽에 위치한 원찻집을 찾았다. 전남 순천이 고향이라는 운영자 서갑남(50) 씨는 20년 전 이 골목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의 가장 인기 메뉴는 500원짜리 배달커피. 와서 마시면 부대비용으로 1000원을 받기 때문에 와서 마시는 경우는 잘 없다. 예전에는 라면도 해장 메뉴로 인기였지만 경기 탓에 간식거리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
“토요일까지 장사를 하는데 지금은 가게세랑 집세 빼면 백만원도 안 남아요. 잘 될 때는 종업원도 두세 명씩 쓰곤 했는데... 청계천 복원 후에 공구상가 경기가 죽어서 관련된 사람들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해요.”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서씨에게도 청계천은 제2의 고향이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이를 업고 커피배달을 가면, 배달간 곳에서 아이를 맡아주기도 하고 안전하게 놀도록 지켜봐주기도 했다. 이웃들이 같이 키운 이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으로 자라 대입을 앞두고 있다.
“태권도에 소질 있어서 전국체전에서 은메달도 따고 금메달도 따고 했어요. 근데 형편상 계속하기 힘들더라고요. 대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수능치고 지금 대학 입학 앞두고 있어요.”
당장 등록금도 생계도 걱정이지만 넉넉한 웃음만은 잃지 않으려고 한다.


<오후 16:00>

대흥기기 천 부장이 전화 업무로 분주하다.
“이제는 찾아와서 물건 사가는 사람보다 전화로 주문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가까운 곳은 직접 배달하고 먼 곳은 퀵을 보냅니다. 이렇게 되니까 손님대신 오토바이만 많아졌어요. 이렇게라도 주문 안 끊기면 다행인 거죠.”
뒷골목은 오후가 돼서도 여전히 한산하다. 기술자들은 일손을 쉬는 때가 더 많다. 신화공업사 한진열(59) 사장은 특수알곤용접 3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85년에 청계천으로 들어와서 한달에 몇 원 받으며 일을 배웠다. 독립하고 이제 목돈을 만지나 싶을 때 경기가 나빠졌다.
“우리가 중간에 어중간하게 시작해서 운이 나쁘죠. 초반에 시작한 사람들은 전성기를 누렸는데 우리 때 시작한 사람들은 그러질 못했어요.”
대진정밀 김형구(58) 사장도 마찬가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밀링 등 제조기술을 택했다. 당시는 좋은 직장 그만두고 청계전으로 올 만큼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가 세 종류나 되는데 전부 멈춘 상태예요. 일거리가 없어서...”
운송업자 김상남(52) 씨도 오늘은 양평과 연천 두 군데만 가고 일찍 마감할 계획이다. 그는 83년부터 제조공구품 운송업으로 전국을 다녔다.
“예전 같으면 하루 세 번은 한차 가득 싣고 드나들었는데 지금은 종일을 기다려 한두 군데 운송해요. 20년 동안 이 놈(트럭)이랑 한몸같이 다녔는데 앞으로는 어찌될지...”




<저녁 18:00>

어둠이 내려앉고 복원된 청계천을 따라 불빛이 켜진다. 낭만적인 풍경에 아랑곳없이 공구상가들은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하얀 입김을 내며 서두른다.
해질녘 찾아간 효성기기상사 이효용 대표. 산업용재협회 서울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청계천 공구상가와 업계의 문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청계천 복원하면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 등 10여개 차선이 4개로 줄었어요. 끝 차선은 하역에 사용되니까 실제로는 2개 차선이라고 봐야죠. 가든파이브도 실패작이고... 물이 흐르면서 생계가 끊겼어요. 거대 제조사와 유통사도 자기이득만 차려서 과잉경쟁하고 있죠. 업계 리더들이 겨울 까치가 먹도록 감나무에 마지막 감을 남겨 놓는 지혜를 잃어버린 거예요.”
청계천 인근 상가마저 셔터를 내리고 나면 이른 시간인데도 이 일대는 섬처럼 고요하게 변한다. 상인들은 “해가 지면 이 골목에 어슬렁거리다가 범죄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며 조심할 것을 단단히 이른다.
반면 해가 지면 더욱 환해지는 곳이 있다. 을지로3가 지하철역 인근의 노가리골목이다. 호프골목이라고도 부른다. 싱싱하고 큼직한 노가리가 1마리 1000원. 맥주 한잔 2500~3000원. 매우 저렴하게 회포를 풀 수 있는 장소라서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땅콩, 과일, 군고구마 등 서비스 안주는 공짜. 겨울에는 덜하지만 여름에는 야외 간이의자까지 사람들이 운집해 불야성을 이룬다고. 공구상을 포함한 인근 근로자들은 이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귀가한다.


글, 사진 _ 배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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